관계의 경계 다시 그리기

by 들송날송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편하게 생각한다. 말 걸기 쉬운 사람, 잘 들어주는 사람, 불편함이 없는 사람. 겉으로 보기에 나는 늘 ‘편안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정작 나는, 내가 맺은 거의 모든 관계에서 편안했던 적이 없었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면 그 사람이 어떻게 느낄지 먼저 계산했고, 내 감정보다 상대의 기분을 우선순위에 두었다.


사람들은 나를 편히 대했지만 나는 어떤 관계에서도 충분히 쉴 수 없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소진된 에너지를 집에 돌아와 침대에 빨래처럼 축 늘어져 보내며 회복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관계의 마지막은 늘 비슷했다.

참고, 또 참고, 또 참다가 참을성 게이지가 폭발하면 조용히 차단하고 관계를 끝냈다.

내 인간관계는 언제나 유통기한이 명확한 것처럼 느껴졌다.


한참을 모르고 살았다. 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은 내향적인 성향(I)이어서가 아니라 ‘경계 없이 주는 습관’ 때문이라는 걸. 그래서 이제는 관계의 ‘경계’를 다시 그려보기로 했다. 누구에게나 다정한 사람 대신, 누구에게나 솔직한 사람이 되어보기로.


요즘 나는 불편한 감정이 생기면 아주 조금이라도 바로 표현하려고 한다. 아직 능숙하진 않다. 말 한마디 꺼내기 전에 머릿속에서 수십 번 리허설을 한다.

‘이 말을 하면 나를 싫어할까?’
‘기분 나빠하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 때문에 예전의 나는 결국 아무 말도 못 하고 삼켰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잘 살 수 있는 환경을 내가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주 작은 문장들이지만 용기를 낸다.

“말과 행동이 달라 보여 좀 생각이 많아졌어.”
“지금은 다른 일이 쌓여 있어서 당장 도와주기 어려워.”
“그 말은 나한테 조금 상처였어.”

이 짧은 말들이 나에게는 경계선을 다시 긋는 첫 시도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내 감정을 바로 표현하기 시작하니 관계가 끊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편안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상대가 예상보다 성숙하게 받아들이기도 했고, 내 마음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삶이 조금 덜 피곤해졌다. 경계는 벽이 아니라 안전선이라는 걸 이제는 조금씩 배우는 중이다.

이제는 사람들 사이에서 ‘편한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도 편안한 내가 되고 싶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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