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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걸음 Jul 21. 2022

내가 그라운드를 뛰어다니며 배운 것


지난 주말 접촉사고가 났다. 나는 걸어가고 있던 중이었고 좌회전을 하던 차가 나를 보지 못하고 그대로 받아버렸다. 달려오던 차에 비해 세게 부딪치지 않아 다행이다 싶었는데 그날 저녁부터 팔과 허벅지 그리고 발목에 통증이 있어 다음날 바로 한의원으로 찾았다. 사고의 경위와 아픈 부위를 한의사 선생님께 설명하고 나는 덧붙였다. “선생님 그런데 저 운동해도 되나요?” 나는 통증과 치료보다 운동을 하지 못할까봐 더 걱정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어떤 운동을 하냐고 물었고 나는 머뭇거리다 대답을 했다. “저 달리기하고요. 푸...풋살을 시작했는데요.” “풋살이요? 아 아이랑 운동하세요?” “아니요. 저 혼자 하는데요.” 선생님의 당황한 얼굴이 역력했다. “아......일반적이시지는 않네요. 오른발잡이세요?” 


여성이 축구를 하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다. 내 주변 지인들을 보더라도 달리기는 좀 하는 편이지만 대부분 요가, 필라테스, 수영정도가 즐겨하는 운동이다. 축구나 농구 그리고 야구를 취미로 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다. 그렇다고 여자들이 축구, 농구, 야구를 싫어하느냐 스포츠 중계화면을 보면 경기를 직관 하는 여성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운동을 하는 것보다 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나처럼 유난을 떨지 않고 적당히 몸을 살피며 운동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내 손으로 공을 만지고 차고 그물이 출렁이는 감각을 느껴보고 싶었다. 


나는 책을 읽을 때도 모두가 찾는 베스트셀러보다는 구석에 먼지 쌓인 고전을 먼저 꺼내어드는 편이고, 사진도 디지털보다는 필름 사진을 좋아하고 요즘은 옷도 새 옷을 사지 않고 빈티지샵에서 주로 구매한다. 독특한 나의 개성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그냥 남들과 다른 것에 묘한 희열감을 느낀다. 그렇다. 돌아이 기질이 DNA에 좀 있다. 어린 시절에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더 마음을 쓰며 적당히 괜찮은 척 했지만 나이가 40이 넘어가니 남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편한 대로 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 하고 싶은 운동을 한다. 


매일 아침 한의원에 출근도장을 찍으며 치료를 받았다. 빨리 나을 수 있는 거라면 쓴 한약도 꿀꺽꿀꺽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냉장고에 가득 채웠다. 그래도 여전히 우산을 들거나 장바구니를 들면 팔이 아파왔고 오래 걷기라도 하면 발목이 시큰거렸다. 달리기는 잠시 쉬어도 좋을 텐데 지난주부터 등록해온 풋살모임은 어쩌나 고민이 깊어졌다. 부상의 정도가 심하지 않고 한의사 선생님도 운동을 괜찮다고 해서 수요일 저녁 긴장되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한낮의 더위가 사그라져가는 경기장에는 오늘도 환한 LED 조명이 팟하고 켜졌다. 나는 서울에서 고이 모셔온 풋살화를 신고 양말을 끌어올리며 걱정하고 염려했던 내 마음도 쫀쫀하게 다잡았다. 그런데 걸을 때는 느껴지지 않던 통증이 몸 풀기를 시작하자 아파오기 시작했다. 허벅지가 당기고 힘이 들어가지 않아 몸을 푸는 것도 불편하고 아팠다. 오늘 처음 친선경기가 있는데 아무래도 뛰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하다 많이 뛰지 않고도 경기에 계속 참여할 수 있는 묘책이 생각났다. 바로 골키퍼를 맡는 것이다. 


골키퍼라 함은 골을 넣는 것만큼 중요한 포지션이다. 골키퍼가 한골을 막는 것이 골을 한 골 넣는 것과 같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날아오는 공이라면 유년시절 피구로 단련된 몸이니 막아낼 자신이 있었다. 골키퍼 장갑을 받아들고 나는 두 손에 장갑을 끼었다. 스트랩으로 손목을 단단히 조이고 구호를 외쳤다. ‘다다른 다다른 화이팅!’ 나는 어쩐지 이 구호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는 말, 그렇지만 이렇게 하나로 모일 수 있다는 것. 나는 아직 같은 팀원의 이름도 나이도 모르지만 그냥 한 팀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전히 허벅지는 욱신거리고 뛰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공이 날아올 때마다 손으로, 발로 막았다. 공을 차는 대신 멀리멀리 던졌고 그것 맛으로도 충분했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나는 첫 경기를 마쳤다. 물론 골키퍼로서 골을 먹고 경기에 진 것은 아쉬웠지만 내가 골을 먹어도 ‘괜찮다. 잘했다.’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풋살은 내게 해방감을 준다. 한 여름 시원하게 내리는 비처럼 마음의 갈증을 한 번에 해소해준다. 멀리서 날아오는 공을 트래핑 할 때, 공을 드리블하며 수비수 한 명을 제칠 때, 골망을 출렁이며 굴러들어가는 공을 바라볼 때 희열을 느낀다. 대부분의 순간은 공을 뺏기고, 공격을 막기 위해 골대로 달려가고, 엉뚱한 곳으로 헛발질을 하지만 수많은 실패 속에서 단 한 번의 성공을 알아버린 나는 인생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것, 경기가 종료되는 휘슬이 울릴 때까지 달려가는 것. 힘이 들고 지치면 손을 들어 나를 도와줄 친구를 찾는 것, 모두에게 박수를 쳐줄 사람이 될 수 있는 것. 그것이 내가 그라운드를 뛰어다니며 배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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