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요즘 작은 일에도 쉽게 짜증이 나?”
아이가 물었다. 설거지를 하던 손을 멈추고 정신이 멍해졌다. 내가 무슨 말을 했더라. 어떤 행동을 했더라. 아이에게 잘못한 일을 찾아내러 정신이 분주해졌다. 조심스럽게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왜? 엄마가 뭐 잘못한 일 있어?”
“아니, 엄마 생리 시작한 거 같아서. 생리하면 작은 일에도 쉽게 짜증이 난다던데?”
그제야 안도했다. 책에서 생리에 대해 읽고 말하는 거구나. 엄마가 웃지만 않아도 엄마의 감정을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다가오는 아이에게 별달리 해줄 말은 찾지 못했다. 그저 엄마가 생리 중이니 뽀미가 엄마를 잘 도와주면 좋겠다고 말하고 다시 설거지를 할 뿐이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방으로 돌아가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호르몬의 노예인 여성은 생리 기간에 감정이 널뛰기를 한다. 내 경우에는 월경이 시작되기 전에 겪는 여러 가지 월경 증후군이 있는데 첫 번째는 잠을 자지 못한다는 것이다. 커피나 술을 마시지 않아도 생리 전이면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아이가 자는 동안 얼굴을 만져서, 남편이 코를 골아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지만 그저 생리가 곧 시작하겠구나 하고 몸으로 먼저 알아차릴 뿐이다. 또 하나는 엄청난 군것질이다. 생리가 시작되면 초콜릿, 캐러멜, 젤리 같은 달고 진한 과자들을 달고 산다. 평소에 잘 먹지 않던 음식들도 과식과 식탐으로 몸 안으로 욱여넣다 보면 당연하게도 몸이 견디지 못한다. 결국은 다 쏟아내고 며칠간 죽만 겨우 먹고 살 정도가 되어도 매달 반복된다. 그러나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무기력과 우울이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혼자 있고 싶고, 심지어 말을 하기도 싫다. 그럴 때 아이가 “엄마, 엄마” 하고 부르기 시작하면 짜증과 분노의 칼이 아이에게 향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기간에는 아이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으려고 묵언수행에 가까운 일상을 살아낸다. 되도록 사람을 만나는 약속도 잡지 않고 조용한 음악을 틀어놓고 한없이 우울해지는 글을 읽다가 한숨이 깊어지면 잠시 산책을 나간다. 가까운 산책로도 좋고, 병원으로 가는 길도 좋고, 멍하니 카페 앉아 있어도 좋다. 그렇게 고요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시간을 통과하면 생리의 끝이, 감정의 끝이 보인다. 매달 반복되는 일. 또 찾아왔구나 알아차리는 일. 받아들이는 일. 기다리는 일.
오늘 아침 아이의 등교를 도우며 아이를 부르고 사랑한다 말해주었다. 며칠 엄마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느라 엄마의 품이 그리웠을 아이를 안아주고 이 세상에서 너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엄마다 이야기해 주었다. 바람이 자주 아이 마음에 불어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를 키워줄 수 있는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나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