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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걸음 Jun 12. 2023

임경선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결혼 10년 만에 다시 내 이름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결혼을 일주일 앞두고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한 뒤로 월급이라고 부를 수 있는 돈이 처음으로 통장으로 입금되었다. 가정주부로 살아온 10년, 밥하고 살림하고 아이를 키우는 경력은 돈이 되지 않았다. 노동의 가치조차 인정받기 쉽지 않았다.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 삶이었지만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이름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주변에는 가정과 일, 육아도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열정적으로 해내는 사람이 많았다. 나는 그 어느 것도 잘 해내지 못해서 안절부절못하면서도 내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못한다는 생각에 우울했다. 팔자 좋은 소리하고 있다고.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편하게 살아가고 있지 않냐고. 내 안의 목소리들이 내 자존감을 조금씩 갉아먹었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하루하루 커가는 모습도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세상에 태어난 아이의 존재 자체는 너무나 아름다웠지만 그 아름다움의 성장을 위해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는 내 노동은 행복하지 않았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왜 하기 싫은 일을 매일 반복하며 의미 없이 살아가고 있는지 괴로웠다. 그러다 말이 통하지 않는 아이가 울고불고 떼를 쓰며 바닥을 구를 때면 창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엄마로서 이런 마음을 가진 것이 부끄럽고 죄책감이 들어 더 슬퍼졌고 나는 그 무엇보다 나를 지켜야겠다, 나를 되찾아야겠다 마음먹었다. 


내가 싫어하는 것들을 현재의 상황에서 하지 않을 수 없다면 좋아하는 것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절대적으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라 하루에 딱 한 시간이라도 혼자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먹는 것도 자는 것도 내 뜻대로 할 수 없었던 아이가 어릴 때라 자다가도 새벽이면 번뜩 눈이 떠졌다. 의미 없는 것들을 보고 깔깔 거리고 웃는 것만으로도 나는 나의 시간을 되찾는 것 같았고 아이가 잠들면 그제야 엉엉 울던 나도 잠든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웃음을 되찾을 수 있었다. 


결혼 전에 내가 가장 좋아하던 일이 무엇이었나 생각해 보니 책을 읽는 일이었다. 책을 읽지 않아도 책이 있는 공간에 가면 늘 마음이 편해지고 나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었기에 도서관에 갔다. 호흡이 긴 책들을 읽을 여유와 시간이 없어서 아이 그림책을 읽었다. 아이에게 읽어줄 그림책 하나, 나에게 읽어줄 그림책을 하나하나 고르다 보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림책 작가가 건네는 이야기는 아이가 아니라 내게 하는 말 같았고 그 무엇보다 지금 이대로, 당신의 모습 그대로 괜찮다 이야기해 주는 작품들이 나에게 큰 위로를 주었다. 그때 내가 그림책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아마 더 힘겨운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림책은 나에게 괜찮다 괜찮아질 거다 이야기해 주었고, 아이를 다시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게 도와줬다.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는 시간 동안 나도 성장하고 있었다. 부모로, 어른으로, 한 인간으로.


아이가 혼자 책을 읽기 시작할 무렵부터 나도 내 책을 찾아 읽었다. 책장이 미어터지도록 책을 사기 시작해서 신발장까지 책이 차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 시간은 곧 나를 읽는 시간이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나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내가 그토록 바라던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깨달아 갔다. 내가 내 이름을 찾고 싶었던 것은, 내 이름으로 돈을 벌고 싶었던 것은 나의 커리어나 성공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아내나 엄마의 역할에서 벗어나 나로서 살아가는 삶이었다. 좋아하는 일들을 찾아서 몇 년간 많은 일들을 했다. 대부분은 봉사활동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림책 서점에서 일을 하고 도서관에서 아이들과 책 모임을 하고 누군가에게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했다. 그래도 나라는 사람이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거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었다. 그리고 올해 여러 기관에서 온라인 기자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지역에서 일어나는 행사나 관광장소를 다녀와 사진을 정리하고 간단한 글을 적는 일이었지만 내 이름이 박힌 명함과 기자증이 5개가 생겼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드디어 내가 하는 노동으로 매달 통장에 월급을 받게 되었다. 매일 출근하는 직장인도 아니고, 회사에 소속된 것도 아니지만 1년의 비정규직 노동자라도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돈이라는 속성으로 인정받는 것 같아 내가 하는 일이 큰 보람과 행복을 느끼고 있다. 10년 동안 고군분투하며 나를 찾아가던 시간이 드디어 나에게서도 벗어나 타인을, 세상을 향해 가고 있음을 느끼는 시간이 찾아왔다. 


나는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나만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선택과 결정 앞에서도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은 나만을 위한 것은 맞다. 그러나 그 시간을 충분히 보내고 나면 나는 다시 내가 해내할 아내와 엄마의 자리로 행복하게 돌아올 수 있다. 아침밥을 차리고 달리러 나가는 주말 아침에도,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들린 카페에서 책을 읽는 시간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서울 여행에서도. 나는 내 삶을, 내 시간을 나로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시간의 끝에 나는 오늘을, 내일을 더 잘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나만을 위해서 사는 삶이 아니라 내 가족을 위해, 내 이웃을 위해, 내가 살고 있는 사회를 위해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역할들을 더 잘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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