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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그니 Sep 22. 2016

남자, 꽃다발을 만들다

아이러니한 서글픔 속에, 우리는 사랑을 한다

예전에 프랑스에서 거리 화가로 살았던 남자가 쓴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에는 이런 친구가 나온다. 아침에 거리로 나서면 처음 보이는 꽃을 꺾어, 그 꽃을 처음 보는 여성에게 선물하는. 그 남자는 아마,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그렇게 우연히 선물 받은 꽃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될 그 사람은, 하루 종일 행복하지 않겠냐고. 
  
음... 일단 그 남자가 미청년이니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라고 해두자. 내가 아무에게나 꽃을 내밀었다간 치한이나 스토커 취급당할지도 모르니까. 아무튼 그때, 나는 그냥 그랬다. 낭만적인 것은 사랑하지만,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꼭 꽃을 꺾어야만 할까 싶어서. 

그건 어떤 능글맞음과 로맨틱함에 대한 질투이기도 하다. 나라면 그런 일, 할 수 없으니까. 한편으론 거부감이기도 했다. 무엇인가를 희생해서 다른 이에게 주는 행복을, 그때의 나는 인정하기 어려웠다.

   
두 번째 꽃을 배우러 찾아가면서도, 머릿속엔 그런 작은 의문이 여전히 맴돌았다. 일주일 전에 만든 꽃바구니는 여전히 예뻤지만, 생기를 잃고 고개를 숙이는 꽃들도 많았다. 조금 속상했다. 예쁘게 그냥 계속 남아줄 수는 없을까. 대답은 찾아지지 않았고, 일단은 그냥 배우는 수밖에.
  
이번에 만든 것은 우리가 누구나 알고 있는 가장 익숙한 꽃의 형태, 꽃다발이다. 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태어나 한 번쯤은 받아봤을, 그런 모습. 사람에게 사람의 마음을 전하는 가장 흔한 방법 중의 하나. 사실 입학/졸업 시즌도 아닌데 왜 지금 꽃다발입니까!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최원창 선생님이 째려보실 것 같아서 그만뒀다. 

플로리아트는 오늘도 평온합니다...

   
우리 선생님, 곱게 생기셨어도 공수 부대 출신이다. 근력도 좋고 체격도 좋다. 분명히 꽃을 만드는 남자인데, 가만 보고 있으면 운동 좋아하는 남자들 특유의 태도가 여전히 묻어 있다. 상냥하면서도 무뚝뚝하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래서 그냥, 열심히 꽃다발... 을 배웠을 리가 없잖습니까. 제가 언제 꽃다발을 만들어 봤다고요! 힘들었어!!
  
우리 강습은 언제나 이렇다. 꽃을 놓고, 이번엔 이거 만듭시다-하고, 만든다. 끝. 

... 하아- 나중에 나이 들면, 나도 밥 로스 아저씨처럼 꽃 만드는 영상 꼭 찍을 거다. 10분 만에 이것저것 쓱쓱 만들어 놓고, 참 쉽죠? 하고 말하면서... 음, 이번이 두 번째 강습이란 것은 잠깐만 잊기로 하자.
  
아무튼 이번 꽃다발에 함께해준 꽃들의 명단은 아래와 같다. 

미니 장미 6줄기 / 작약 3대/ 브로싱 브라이드 2대/ 리시안셔스 10대/ 옥시(블루스타) 5대/ 유칼립투스 5대/ 루스커스 5줄기



꽃다발 만들기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먼저 꽃의 줄기를 적당히 다듬고, 손가락에 끼운다. 돌려 가면서 끼운 다음 철사 끈으로 묶어주면 끝. ...  훗훗. 참- 쉽죠?

꽃을 준비한 다음

둘려면서 모양을 만들어 준다

그러면 이렇게 꽃다발 모양이 나온다


   
다시 천천히 설명하면 이렇게 된다. 언제나처럼, 꽃은 꽃이 있을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번에 꽃이 있을 자리는 내 손.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둥그런 원을 만들고, 그 원 안에 꽃을 꽃아 주면 된다. 

요런 느낌입니다. 실제로 이렇지는 않습니다.


세로로 꽂는 것은 아니다. 꽃 바구니와 마찬가지로 가운데에 중심이 있다고 생각하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느낌으로, 비스듬히 손 안의 원으로 꽃아 준다. 

   
당연히 한 방향으로만 꽂아주는 것은 아니다. 같은 방향으로 돌려주면서, 한 군데에 뭉치지 않게 곱게 꽂아주면 된다. 잘 모르겠으면 이것을 상상하시라. 
  

나. 선. 환.


먼저 꽂을 것은 유칼립투스. 일단 유칼립투스로 배경을 그려주고, 큰 꽃과 작은 꽃들을 골고루 꽂아주면 된다. 다만 자연스럽게, 딱딱하지 않게. 언제나처럼(... 지난번에 딱 한번 배우고 언제나처럼 이란 말을 자주 쓰고 있다) 자연에는 높낮이가 있고, 서로 다른 것들이 어울려 지내니까. 조금 모자란 부분이 있으면 살짝 꽃다발을 잡은 손을 풀어주면서, 새로운 꽃을 넣어줘도 된다. 물론 이때도 바이올린을 켜는 느낌으로. 

  
여기까지는 금방 끝났다. 내가 알고 보니 꽃 집 아들이었나- 싶었을 정도로. 쓱쓱 만들었다. 아아, 그래 내게 숨겨진 재능이 있을지도 몰라! 하는 따위의 생각이 막막 치고 올라왔다. 
  
의외로 어려웠던 것은 꽃다발을 만든 다음 줄기를 곱게 자르는 작업. 사선으로 꽃줄기를 잘라주면서, 그냥 접시 위에 세워도 꽃다발이 쓰러지지 않게 형태를 잡아줘야 한다. 가운데가 좀 짧고, 주변의 꽃줄기들이 수평이 맞아야 한다. 그런데 자르다 보면... 이상하게 가운데가 로켓 불꽃처럼 자꾸 솟아난다. 하늘로 도망치고 싶은 것도 아닐 텐데. 
  
... 것 봐요. 나한테 재능 없다니까요.

제가 만들었습니다. 훗 훗 훗.

 
결국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서, 어찌어찌 다 만들었다. 다 만들어 놓으니 예뻐서, 또 입꼬리가 헤벌쭉 위로 올라간다. 좋아 좋아하면서 있는데, 최원창 선생님이 갑자기, 특유의 ‘진지한 것인지, ’심드렁한 것인지‘ 모를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사람들이 꽃다발을 서로서로 많이 선물해 주면 좋겠어요.


이 분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란 표정으로 동그랗게 눈을 뜨고 있는데, 선생님이 다시 말을 잇는다.
  

꽃다발은 지금, 이 순간만 볼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 아름다움 느낄 수 있는 마음을, 사람들이 가지고 있으면 좋겠어요.


꽃다발이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꽃다발을 선물 받았다면, 작은 화병에 꽂아두면 좋다. 일주일 정도는 예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가 지나면 생기를 잃는 것은 운명이라, 그때부터는 말린 꽃으로 보관하면 또 좋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흠흠. (말린 꽃을 그냥 보관하는 것은 사실 살짝 귀찮다. 꽃 보푸라기가 매일매일 떨어진다.) 
  
하지만 꽃다발이 가장 예쁜 순간은, 누군가가 품에 안았을 때인 것만 같다. 누군가의 마음이 꽃다발로 전해졌을 때, 신현림의 '키스, 키스, 키스'란 시에서 '삶이 꽃다발처럼 환한 시작이야'라고 말하는 그 순간. 아름다운 것들. 머물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기에 더욱, 아름다운 순간들.

 
아무튼 나는 이제, 꽃을 꺾어 그날 처음 보는 여인에게 선물을 했던 그 남자의 마음을 알겠다. 그건 아마,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가지는 즐거움이다. 꽃에게는 미안하지만, 우리들 삶이란 원래, 그런 서글픔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 서글픔 속에 내 마음을 전하고, 당신의 마음을 받는다. 
  
꽃 한 송이로 만들어지는, 아이러니한 순간의 따뜻함. 
 
그렇게 오늘, 꽃다발을 만들었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전할 순간이 생기면, 그때 내가 만들어 전할 수 있게 됐다. 누가 안 도와주면 잘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는 하지만, 뭐,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보기로 하고. 
  

꽃 사진 찍으러 풀밭에 들어갔다가 10분 만에 모기떼에 처참하게 물어뜯긴 것은 안 자랑...


그나저나 생각해보니, 꽃다발을 선물했던 기억이 10이라면 선물 받은 기억은 1이다. 사랑을 받기보단 주는 편인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이거 격차가 너무 심하잖아... ㅜ_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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