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망 깨기
로망은 깨라고 있는 것이다.
깨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로 남을 수 있다. 후회로 남기 전에 현실로 이루던지. 내가 태어난 70년대는 아메리칸드림이 있어서 미국으로 가는 것이 최고였다. 당시 미국 교포는 동경의 대상이었고, 미국 유학이 학생들에겐 로망이었다.
꿈 많던 20대부터 40살이 넘어서도 미국으로 유학 가기는 내 주제가가 되었다.
23살, 나에겐 승무원이 성공의 발판이 되어줄 것만 같았다. 항공 승무원이란 직업은 한국을 벗어나게 해 줄 구원 열차의 티켓 같은 한 가닥의 희망이었다. 그게 안 되면 미국에 있는 이모에게 가겠다고 했더니 정말 오고 싶으면 각오를 하란다.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니 미국에 무작정 와서 불법체류로 불안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며, 다시 한국으로 못 돌아갈 수도 있다는 말에 허황된 거품이 빠진 나는 정신을 차리고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승무원 채용 조건에는 ‘해외여행에 결격 사유가 없는 자’라고 나와 있다. 전 세계 여러 나라의 공항과 해당 국가에 머물러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그런 상황이 되어서는 꿈을 이룰 수 없다.
나는 승무원이 되어 10년 동안 59개국 159개 도시를 자유롭게 다녔고, 10년짜리 미국 관광비자도 3번이나 받아 미국을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이렇듯 자기 자신의 가능성과 타협을 하고 제한하면 안 된다. 사회 경험이 없던 나는 세상을 무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외국 항공사로 가는 길을 알기 전까지는.
나는 에미레이트 항공사에 입사를 하자마자 두바이에서 바이올린을 배웠다. 나의 다른 로망은 바이올린이다. 다시 태어나면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검정 정장을 입고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어 바이올린을 어깨에 메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진짜 귀족처럼 보인다.
두바이의 낮 온도는 50도까지 올라간다. 지글지글 뜨거운 한낮에 나는 바이올린 레슨을 받고 나와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혼자 거리의 악사가 되어 본다. 길에서 오늘 배운 시노자키를 연습하고 있을 때, 멀리서 누군가 나를 향해 ‘Are you Korean?’ 하고 묻는다. 그는 바이올린 소리를 따라왔단다. 자신은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 중에 있는데, 지금은 두바이로 출장을 왔다고 소개했다. 내 주변에 유난히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다는 사람들이 많고, 나도 언젠가 상황이 되면 유학의 꿈이 있던 터라 잠시 미뤄두었던 로망이 꿈틀거렸다.
두바이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묻기에 도예를 전공했지만 지금은 승무원이라고 했다. 그는 나를 신기해하면서도 아쉬운 표정이다. 나에게 이 직업은 신분 상승처럼 느껴졌는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예술 전공을 못 살리고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게 안타깝게 여겨지나 보다.
과연 난 정말 미국으로 유학을 갈 수 있을까? 항공사에서 오래 일하면서도 그 생각이 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미련일까 미션일까 점검하고 싶었다.
휴가를 내어 미국 LA에 있는 UCLA로 학교 탐방을 가기로 했다. 관련 학과 교수를 만나 입학 상담을 할지도 모르니 나의 작품 포트폴리오와 각종 서류를 준비했다. LA의 날씨와 야자수는 두바이와 비슷했지만 낡고 황량한 느낌이 들었다. 어디든 멀고, 뭐든 크고, 내게 만만한 동네가 아니었다. 나 혼자 또 어떻게 긴 외국 유학 생활을 할지 외로움에 막막해졌다. 미국 유학은 생각만큼 낭만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 로망이 깨지고 말았다.
그런데 반가운 소식은 샌프란시스코는 LA라는 도시와는 다르게 학교 분위기가 활기차고 아담하며 볼 것도 많아 오히려 잘 맞을 것 같다는 유학원의 이야기다. 몇 달 후, 드디어 샌프란시스코에 마지막 로망 점검을 하러 갔다. 삶에서 꿈의 점검은 다음 목표를 위해 중요하기에 백번 점검해도 옳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걸려도 확신을 가져야 움직임이 확실하다.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이 노래가 나를 부르는 거 같았다. 거기서 왠지 좋은 인연을 만날 것만 같은 희망적인 에너지가 느껴진다. 사실은 무엇보다 버클리대학교(UC Berkely)와 스탠퍼드 대학교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첫날에 스탠퍼드 대학교를 방문했다. 신입생 학교 투어를 신청하고 그 틈에 껴서 학교를 둘러보았다. 캠퍼스가 지적이고 고급스러웠다. 여기에 입학만 하게 된다면 낭만적인 인생의 반전이 있을 것만 같았다. 캠퍼스를 거닐며 복잡한 감정들에 휩싸여 여우의 신포도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었다. 나는 시큰둥한 여우가 되어 부럽지만 안 그런 척했다.
대학교 기념품 가게에 가서 학교 로고가 담긴 후드티와 잔 스포츠(Jan Sport) 백팩을 샀다. 마치 그 학교 학생이 된 것처럼 그 날 하루는 온전히 이곳 학생처럼 누려보기로 했다.
난 그래도 된다. 오래전부터 간절히 이곳에 직접 와보고 싶었지만 이제야 와 봤으니. 비록 4시간 정도 이곳에 있었지만, 나는 4년 동안 스탠퍼드 대학교를 다닌 걸로 쳤다. 그걸로 학벌에 대한 로망을 깨기로 했다. 학생 식당에서 음식도 먹어보고, 캠퍼스 잔디에서 음료를 마시며 대학생들을 바라보며 깨달았다. 난 공부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학교 타이틀과 스탠퍼드 학교에 다닌다는 그 말이 하고 싶었던 거였다.
다음날은 버클리 대학교를 방문했다. 학교 투어 중에 어떤 외국 학생이 영어로 ‘저리 가라 스탠퍼드!’라고 했다. 나를 향한 소리였다. 아 그렇지! 내가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구입한 후드티를 입고 그 학교 책가방을 메고 남의 학교에 왔던 것이다.
여기도 한국의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처럼 스탠퍼드 대학교와 버클리 대학교가 서로 경쟁하고 있음을 몸소 체험했다. 그런데 내가 스탠퍼드 대학생인 줄 알고 누군가가 퍼붓는 야유를 듣는 기분도 괜찮았다. 그리고 버클리 대학교 투어에 참여한 엄마와 아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나에게 스탠퍼드 대학교는 어떤지 물어보았다. 나의 탁월한 학교 기념품 쇼핑 덕에 기분 좋은 오해는 이벤트로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다. 과거에 이루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남아 언젠가 하려고 하면 할 수 없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되지 않는 것에 계속 미련을 품으면 철이 없는 사람이 된다. 잠깐이지만 나는 그 학교 학생이 되어 보았다. 버클리 대학교 교정을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디며 내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 너 정말 괜찮은 거냐고.
나는 A클래스 라이프를 살고 싶었다. B클래스쯤은 되는 것 같아서 노력하면 드라마틱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내가 돌아본 세상은 넓고 멋졌다. 매일매일이 여행의 첫날처럼 늘 나를 설레게 했지만 다 가질 수는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세상을 둘러볼수록 인생에는 다양한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견문이 넓어졌다. 현실에 비해 큰 이상을 꿈꾸며 살아온 덕분에 긍정적인 성향이 되었고, 힘든 순간도 견딜 수 있었다.
로망은 깨야 없어진다. 승무원의 로망을 깨고 보니 내가 해야만 했던 운명 같은 일이었고, LA와 샌프란시스코의 학교 방문은 내가 오랫동안 아껴둔 삶의 이벤트로 나를 항상 설레게 했다. 공주가 마법에서 풀려나듯 나는 현재를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당신의 로망은 무엇인가요? 로망은 깨야 없어집니다.
나에게 남은 로망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하루로 채워볼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