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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윤선 Aug 13. 2018

Hello Tomorrow

34살에 다시  외국 항공사 승무원이 되다.

       

비행기를 타면 높은 고도에서 압력을 받아 손과 발, 장기까지 부푼다.

나는 부작용으로 간이 부었는지 꿈도 같이 부풀어 터질 지경이 되었다. 인생의 다음 목적지를 준비하기 위해 이제 비행기에서 내려오려고 소프트 랜딩을 시도했다. 무엇보다 자기 계발의 시간이 필요했다.


2006년에 항공사를 퇴사한 후, 전공인 도예 공부를 더 하기 위해 도자 디자인 과목으로 대학원에 입학했다. 직장생활을 오래 하다가 학생이 되니 몸은 편했지만, 학비를 벌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시립 미술관의 외국인 도예 수업 강사로 일했다. 외국인들에게 영어로 도예를 가르치고 있노라면 두바이에서 비행 없는 날마다 도자기를 만들던 세라믹 카페가 떠오르곤 했다.

한국에서 새롭게 자리를 잡기 위해 나의 무대를 마련해야 했다. 승무원 이후의 일상은 고단했다. 인맥도 실력도 없었고, 도움의 손을 내밀어도 탈출구를 찾기 어려웠다. 하루가 멀다 하고 비행기를 타고 돌아다니던 내가 서울에만 있으려니 답답해서 숨이 막혔다. 도전한 버킷 리스트를 대부분 이루어서 더 이상 미련이 없을 줄 알았으나 자꾸만 비행이 그리워졌다. 그동안 열사의 나라에서 햇빛을 비축하여 두었으니 어두운 시간이 올 때마다 꿀단지에서 추억을 하나씩 꺼내 먹으며 버티기로 했다.

주변 사람들은 한국으로 돌아온 나에게 축하한다며 인사를 건넨다. 나도 몇 달간은 좋다가 다시 비행이 그리워졌다. 마음이 시큰거렸다. 전직 승무원들, 고향을 떠나본 사람들, 이 세상의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심정이 무엇인지 헤아리게 되었다. 국제적인 삶을 내려놓고 철저하게 현실을 맞닥뜨리고 적응해야 하는 것이 안정일까? 과연 전진일까?


‘승무원 중독자’가 있다더니 그게 바로 나다. 석사 학위를 마치고 대학원을 졸업을 할 때쯤, 첫 직장이었던 에미레이트(Emirates Airlines)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마치 옛 연인에게 다시 기회를 달라고 하듯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잘못된 장면을 바꾸고 싶었다.

5년 전 퇴사했을 때, 인사차 받아 두었던 매니저의 명함을 꺼내 5년 만에 다시 재입사 요청 이메일을 보냈다. NO.289000, 예전 사원번호를 자연스럽게 쓴다.

‘너는 평생 스태프 넘버(Staff Number)를 절대 잊지 못할 거야.’, 전 직장 상사의 말이 떠올랐다. 오랜 고민 끝에 이메일을 보냈으나 한 달 넘게 답장이 없었다. 좌절감과 기대감이 교차했다.


어느 날 새 메일 1통이 도착했다. ‘Hello from Emirates’, 에미레이트 인사과에서 보낸 것이었다.

이게 정말일까? 내 SOS에 답이 왔다니. 떨리는 손으로 정성스럽게 마우스를 천천히 내리며 한 글자 한 글자 집중해서 읽고 또 읽었다.

재입사 지원서 양식과 함께 그만둔 이유, 퇴사 후 한 일, 다시 오려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지원서를 작성하라고 했다. 퇴사한 지가 오래되어 지원서와 서류 검토 후 신입과 같은 절차를 통해 다시 면접을 본단다. 그런데 언제, 어디서 면접을 본다는 다음 일정이 없다.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중동에 있을 때부터 안일함과 천하태평의 ‘인샬라’ 마인드 때문에 일처리가 예정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걸 안다. 기다려야 풀리는 일이 많은 나라다. 애가 탄다.


지원서를 몇 날 며칠 꼼꼼하게 작성하고, 에세이도 고심하며 썼다. 영어로 써야 해서 객관적으로 점검을 받고 싶었다. 걸을 때도, 버스를 탈 때도 완벽하게 잘 써서 제출하고 싶은 마음에 지혜를 짜냈다. 발을 동동 구르며 누가 제발 도와주기를 기도하며 서류를 들고 시립 미술관의 도예 교실로 갔다. 

미술관 안에는 카페가 있었다. 주문과 대화에 모두 영어를 사용해야 하는 카페다. 수업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커피를 마시려고 들어갔는데, 외국인 혼자 앉아 있기에 말을 걸었다.     


“Hello, How are you doing? My name is Sarah, nice to meet you. What are you doing here alone?”

“I am doing great. what about you? My name is John from Australia, I am English teacher in this Cafe from today.”

호주에서 온 존은 오늘부터 영어 카페의 강사가 되었단다. 이게 타이밍이구나. 기분이 좋아 보인다.

“Oh ~I have been studied in Sydney. Do you mind if you have a time, can you help me? I need to complete this application form so I was looking for help.”

내가 그의 나라에서 공부했다는 말에 공감대가 생겼다. 용기를 내어 영어로 쓴 지원서를 들이밀며 도움을 요청했다.

“Sure, of course!”

존은 벌써 손에 연필을 든다. 쿨하게 바로 지원서를 보자고 한다.

“You are my angel.” 그는 오늘의 천사다.     

내가 쓴 글을 같이 보면서 퇴사 후 어떻게 자기 계발을 하며 지냈는지를 중심으로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회사의 입장에서 나의 재입사를 받아 주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임팩트 있게 작성했다. 호주에서 온 천사의 첨삭으로 지원서가 완성되었다.


얼마 후, 면접 수업 중에 한 학생이 에미레이트 오픈데이(Openday) 면접에 간다고 한다. 한국에서 몇 년 만에 채용 공고가 났다며 나에게 신이 나서 이것저것 묻는다.

‘그럼 두바이에서 현지 면접관들이 오겠구나!’ 

무조건 그 면접에 가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직 리조인(Rejoin) 일정에 관한 이메일을 기다리는 중이라 초대 메일(Invitation letter)을 받지 않았다. 가도 되는 건지 망설여졌다. 그래서 재입사 지원서와 그동안 주고받은 이메일을 가지고 가기로 했다. 면접 당일 새벽부터 벌떡 일어나 꽃단장을 하고 면접장으로 향했다.

코엑스에 수천 명의 지원자들이 긴장된 모습으로 줄을 서 있다. 어디에 줄을 서야 하나 망설이는데, 신기하게도 승무원 학원 원장님이 눈에 띄어 달려갔다. 원장님은 내 상황 이야기를 듣자마자 목에 걸고 있던 면접장 패스를 주면서 “어머 선생님, 좋은 기회예요. 얼른 들어가 보세요.’ 하셨다. 일이 되려니 모든 것이 합력하여 나를 도왔다.


면접 진행자들에게 재입사 지원자라고 말한 후 내 서류를 주었다. 이름을 바로 불렀다. 나만 특별하게 지원자들을 뚫고 면접장에 들어갔다. 면접관들이 보였다.

“Welcome back to Emirates! today is your interview day!”

집에 돌아온 것을 환영하듯이 다정한 말에 감동이 밀려왔다.

본격적인 면접이 모두 영어로 진행되었다.

“오늘 입은 정장 잘 어울리네요.”

여자들의 관심 주제는 패션과 쇼핑이다.

“감사합니다. 이 옷을 입을 때마다 좋은 일이 있었어요. 2004년도에 처음 에미레이트에 합격할 때 입었던 옷인데, 이번에도 붙길 바라며 또 입고 왔어요.”

“See you soon.”

‘다음에 또 만나자고?’


1차 면접이 합격임을 느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1차 합격 통보를 받고 외국으로 탈출한다는 희망에 가득 찼다. 그 에너지로 2차에서도 여유 있게 합격했고, 재입사에 성공했다.

입사를 위해 출국을 앞두고 꿈을 꾸었다. 나는 큰 갈색 나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전에 두바이에서 같이 살았던 한국 룸메이트 언니가 은쟁반에 카레라이스를 담아 대접해준다. 한국식 3분 카레다.

꿈에서 본 곳은 2006년 퇴사할 당시 살았던 알가후드 ‘G block’이었다. 재입사를 결정하면서 마음이 설레고 불안했다. 경험상 숙소의 위치가 생활방식을 좌우하므로 내겐 중요한 문제였다.


다음날 숙소가 발표됐다. 꿈에서 선명해서 이미 내가 살게 될 곳을 아는 것처럼 차분하게 emirates.com에 로그인을 했다. 채용 프로세스에 다음 단계의 새로운 소식이 도착했다. 숙소 배정이었다.

‘알가후드 G블락 226호.’ 

이게 웬일인가. 꿈에서 본 곳이다! 두바이 알가후드 지역에 승무원 숙소가 A부터 G까지 있는데 그중에서도 G라니 신기했다. 이렇게 나는 다시 에미레이트의 식구가 되었다. 

34살의 나이에 외국 항공사 승무원이 된다는 것. 당분간 또는 오래 한국을 떠나겠다는 결심이다. 인생은 용기의 양에 따라 줄어들거나 늘어난다고 했던 미국의 여류 소설가인 아니이스 닌의 말이 떠올랐다.

길이 끝난 곳에서 길이 다시 시작되듯 떠나온 곳으로 나는 돌아왔다. 두바이에 도착하여 보니 어제처럼 익숙하다.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 시간차가 느껴지지 않았다.

나의 내일에게 인사를 해본다.     

‘Hello Tomor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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