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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윤선 Oct 02. 2019

가고 싶은 게 아닌, 합격한
항공사가 내 인연이다.

Let's keep discovering


    

“엄마, 나 공항 업무 그만두고 중국으로 어학연수 갈래요. 이제는 중국어가 필수래요.”

“영어를 더 제대로 해야지, 또 무슨 중국어니?”     


난 이미 청도로 중국어 어학연수를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공항에서 근무하다 만난 한비야 작가님과 대화를 하면서 앞으로 국제적인 인재가 되려면 외국어가 더욱 중요해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곧바로 실천하기로 했다.

비행기 표를 끊어놓고 이제 출국만을 앞둔 하루 전날, 엄마는 지금이라도 마음을 고쳐먹고 중국으로 가는 것을 포기하기를 바라셨다. 아침 8시 비행기라서 6시까지는 가야 하는데, 난 한숨도 자지 못하고 정말 가지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다. 그래도 왠지 가야 할 것 같았다. 밤새 뒤척이다 퉁퉁 부은 눈으로 아침 일찍 공항으로 향했다.

늘 내가 하려는 모든 새로운 것에 지지와 응원을 해주던 엄마가 극구 만류하는 걸 뿌리치고 먼 길을 떠나게 되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중국어가 아직은 대중화되지 않고 영어가 더욱 강조되던 시기여서 더욱 그랬다. 나는 그래도 남들보다 한 발이라도 앞서 미래를 준비하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중국 청도 대학교에 도착해서 1학기 등록을 했는데, 중국어 1, 2, 3, 4를 겨우 알고 와서 기초반부터 시작해도 어려웠다. 기초도 없이 바로 중국어 어학연수를 가니 중국인 선생님이 말하는 것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수업 초기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워낙 적응을 잘하는 스타일이라 즐겁게 배우려고 중국 학생들과 어울리며 중국어에만 집중했다.

나는 외국인 유학생 기숙사를 나와서 현지 중국 학생들의 기숙사로 이사를 갔다. 그리고 청도 대학교의 영문과 수업을 들으며 중국 학생들과 즐거운 학교생활을 이어나갔다.

‘언젠가 나의 중국어를 멋지게 써먹을 일이 있겠지.’

그렇게 나는 중국어를 할 줄 알게 되었다. 한 학기를 마칠 무렵, 중국 한인 교회에서 만난 선교사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은 나는 호주로 유학을 가기로 결심했고, 몇 년 후에 내가 배운 모든 것을 써먹을 수 있는 천직을 드디어 만났다. 늘 제자리에만 머물러 있는 듯한 답답한 내 현실을 바꿔 줄 나의 천직, 그것이 내겐 해외 항공사 승무원이었다.     



나의 첫사랑, 에미레이트 항공 입사     

처음 두바이에 도착했을 때 뜨거운 태양이 가장 먼저 나를 반겨 주었다.

중동이라는 곳은 너무나도 이국적인 신세계였다. 누군가 그랬다. 인생을 바꾸려면 가장 먼저 장소부터 변해야 한다고. 나는 내 인생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에미레이트 본사와 트레이닝 컬리지(Training College)를 방문하고 나서야 에미레이트 항공사가 얼마나 크고 대단한 회사인지를 실감했다.


120여 개 국의 다른 나라 직원들과 함께 6주간의 비행 교육을 받으며 비행할 준비를 마쳤다.

얼마 후, 중국 상하이 노선 취항이 시작되었고, 그동안 갈고닦은 나의 중국어 실력을 뽐낼 기회가 마침내 다가왔다. 중동의 건설 현장에서 근무하는 중국인 노동자들이 비행기에 단체로 탑승했고, 중국어를 쓰는 승객들과 영어를 쓰는 승무원들 사이에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내가 나섰다. 내가 중국어로 업무를 할 수 있게 되다니. 놀랍게도 중국어가 들린다. 나는 아픈 승객에게는 간호사가 되었고, 입국 서류 작성 시에는 친절한 선생님이며, 서비스를 제대로 하는 인기 스타가 되었다.

나는 동료들이 승객들과 효과적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기내 중국어 회화 메모를 적어 주었다. 그들은 비행기 갤리마다 메모지를 붙여놓고 업무에 적용했다. 기내식 서비스를 하려는데 승객들이 비행기 복도에 서 있는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식사를 권해도 괜찮다고 한다. 이유를 알고 보니 기내 음식은 사 먹는 것이라고 알고 있어서 돈을 아끼기 위해 서비스를 거부한 것이다.

기내 식사는 모두 비행기 표 값에 포함되었으니 식사를 하시라고 나는 트레이를 건넨다. 비행기에서 주는 음식과 식기들을 가족들에게 주고 싶다며 챙겨가는 승객도 있었다. 트레이를 꺼내려고 얼굴을 카트 안에 넣는데 눈물이 난다.

‘나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구나. 이와 같은 순간을 위해서 내가 그토록 힘들게 중국어를 배웠구나.’

사람들과 교감하고 소통하는 일이 내게 큰 의미와 보람을 주었다.

타국에서의 고된 노동을 잠시 내려놓고 오랜만에 고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는 승객들의 지친 몸과 설레는 마음이 공존하고 있었다. 동양인인데 중국인은 아닌 것 같고, 어느 나라 사람인지를 가늠하느라 승객들이 나를 빤히 바라본다. 같은 동양인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외국에서 근무하는 그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사람들에게 동기 부여를 하고 영감을 주고받으며 내 내면이 날로 새로워져 갔다. 세상 사람들을 통해서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인생의 의미를 알아간다.

비행을 다녀와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중국에 가야 할지 고민하던 그날 밤을 떠올리며 중국 비행 이야기를 해드렸다. 엄마는 나를 무척 자랑스러워하셨다. 무엇이든 배워 두면 정말 언젠가는 사용할 날이 있다. 

언어와 국적을 떠나 마음까지 헤아리는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이 무엇인지 나는 상하이 노선을 통해 알게 되었다.   


중국어, 진작 배워 두길 잘했다.


  



Let's keep discovering the world in my life!        

       

강윤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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