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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윤선 Oct 02. 2019

그녀가 37번이나 코펜하겐을 간 이유

승무원의 눈으로 본 세계 일주기  

   

코펜하겐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파란 그림 도자기의 로얄 코펜하겐? 칼스버그 맥주? 바이킹?   

로얄코펜하겐 이미지출처

나는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을 37번 다녀왔다. ‘내가 사랑하는 CPH(Copenhagen의 공항, 3 Letter Code)’ 레이오버(Lay Over: 비행 중에 현지에 체류하는 시간)다. 주어진 시간은 24시간뿐. 그래서 내가 이 도시를 사랑하는 방법은 자주 보고, 또 보고, 다시 찾아가는 것이다. 누구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데 만남의 횟수를 세는 일이 소용없듯이.

놀랍고 멋진 것으로 가득 찬 세상을 볼 수 있었던 건 승무원이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아무리 같은 나라를 여러 번 가도 그곳은 다시 돌아올 나를 기다렸다는 듯 늘 사랑스럽고 설레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계속 보고 싶다는 것은 사랑이다.

북유럽의 4계절을 다 보았는데 지난번 겨울에 왔을 때는 성숙한 흰빛의 회색 풍경이었고, 봄에 다시 와보니 공기가 차가우면서도 시원했다. 승무원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계절의 변화를 통해 좋아하는 나라에서 풍성한 감성을 배웠다.


중앙역에서 30분 정도 기차를 타고 코펜하겐 북쪽에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의 루이지애나 미술관으로 간다. 코펜하겐에 오면 꼭 하게 되는 의식과도 같은 것이다. 루이지애나 미술관은 세계적인 수준의 현대미술 컬렉션과, 전시와, 헨리 무어의 작품이 있는 넓은 정원이 예술이다. 이곳에 오면 무엇이든 잘 될 것 같은 희망에 부푼 에너지를 받고 돌아간다.     

승무원이 된 후 외국의 미술관을 마음껏 드나들 수 있었다.

처음엔 미술 전공자답게 지적인 보람과 만족감으로 의무처럼 찾았다. 작품 설명을 듣고 작가에 대해 알아갈수록 나의 삶을 미술관의 예술가들과 공유하며 나를 인정해 갔다. 비행이 아무리 힘들어도 멋진 그림들을 미술관에 맡겨두고 보러 가는 재미가 있었다. 한 달에 5개 이상의 유럽 미술관을 볼 수 있으니 나에겐 아주 큰 기쁨이었다. 지구 몇 바퀴를 돌아도 지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다.

내가 미술관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림을 통한 예술가들의 인생 스토리를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서 나 자신을 비추어보며 본질적인 나를 찾고 싶었다. 작가의 연대기는 마치 소설 같다. 그들의 독특하고 평범하지 않은 인생에서 느껴지는 동질감, 그들의 이야기에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한 위안을 받는다. 중세 미술을 보면 마치 그 시대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일상에서도 여행을 하고, 꿈에서는 비행을 하는 것 같았다.

꿈과 함께 탑승한 비행기는 나를 미술관으로 데려다주었다. 그곳에서 수백 년 동안 사랑받은 작품을 통해 클래식한 품위와 가치를 배울 수 있었다. 살아있는 세계 미술사 공부였다. 언젠가 항공사를 퇴사하면 도예가가 되어 원하는 작품 세계를 펼치며 작가로 살고 싶었다. 비행 승무원이라는 직업 덕분에 도예 작업을 할 때 많은 영감을 받았다. 세계관도 넓어져서 내 삶 곳곳 어디엔가 녹아 지금도 날 지켜주고 있다.              



레이오버(Lay Over)는 이 직업의 최고 장점이다. 도착지에서 하루 이틀 체류하면서 돈을 받으면서 하는 여행이다. 현지 체류비도 준다. 호텔도 제공된다. 승객들을 안전하고 친절하게 데려다준 선물이다. 값을 매길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을 주는 직장을 통해 몇십 배의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도착한 나라마다 밤과 낮이 다르므로 생채 리듬과 상관없이 어두워지면 자는 시간이다. 아침이 오면 호텔에서 제공하는 뷔페를 챙겨 먹고, 미술관이 오픈하는 시간에 맞춰서 호텔을 나온다. 미술관 가는 길에 우연히 만나는 카페와 관광지들과 기념품 쇼핑은 비행 여정을 더욱 짜릿하고 기대감에 팔짝 뛰게 했다.

낯선 외국에 적응할 때 긴장감을 놓을 수는 없다. 주어진 시간이 짧고 소중하기에 시계를 보며 초를 다툰다. 다리에 모터를 단 것처럼 걸음이 빨라진다. 현지에서의 즐거웠던 시간을 뒤로하고 신데렐라는 곧 숙소로 돌아와야 한다. 눈과 기억으로도 모자라 수백 장의 사진을 가득 찍고 간다.

두바이로 돌아갈 시간이 다 되어 간다.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려 다시 빠른 걸음으로 관광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에 도자기를 파는 가게에 나란히 진열된 예쁜 색깔의 도자기를 발견하면 사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몸은 가게를 나오지만, 내 마음은 그곳을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가게에 머무른다. 나는 데려오지 못한 예쁜 도자기들을 다음에 찾으러 오겠다는 이유를 코펜하겐에 남긴다.     

비행 2~3시간 전에 웨이크 업 콜이 호텔방에 울린다. 그 전화는 반드시 받아야 한다. 전화는 2번이 오는데 그중 한 번은 꼭 받아야 비행 출석이 된다. 못 받으면 비행을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간주된다. 웨이크 업 콜은 비행 준비가 되었냐는 확인 전화다. 아쉬움과 그리움의 감정들이 복잡하게 교차되는 가운데 빨간 립스틱과 진한 화장 뒤에 감정을 감춘다.

머리를 프렌치 업스타일로 싸악 틀어 올리면 군기가 바짝 든다. 유니폼을 입고 구두를 신는 순간 나는 베테랑 승무원으로 변신한다. 호텔 방문을 나올 때 내가 머물렀던 방의 사진을 찍고 마지막으로 핸드백을 든다. 그리고 도자기 그릇과 식료품 쇼핑으로 무거운 돌돌이 가방과 캐리어(suit case)를 질질 끌고 나온다. 호텔 체크아웃 후, 흩어졌던 크루들을 다시 만나니 반갑다. 하루가 끝나가는 안도감, 이제 두바이 집으로 돌아가는 기쁨, 내가 다시 덴마크에 오게 될 기대감을 피부 깊숙이 느낀다. 행복한 기운이 몸 전체를 적신다.


짜릿한 80일간의 세계 일주 주인공이 된 하루의 레이 오버. 이 매력 넘치는 비행을 그만둘 수 없었고, 그만두고 나서도 자꾸만 생각이 난다.

난 유난히 코펜하겐 비행에서 에너지가 넘쳤다. 나의 기쁨과 생기가 승객과 동료들에게 충만하게 전달되었고, 비행기에 오른 모든 사람들이 사랑스러워 보였다. 인어공주가 물거품이 되어 덴마크 공기 중에 떠다니는지 숨을 깊이 한 번 들이마신다. 그리고 나의 숨결을 남기고 다시 돌아올 코펜하겐을 떠난다. 퇴적물처럼 겹겹이 쌓인 두꺼운 추억을 가슴에 안고 바람을 따라 두바이로 향한다.          



어느 나라의 여행이 가장 좋았나요? 가도 가도 또 가고 싶은 나라는 어디인가요?

아예 살고 싶은 나라가 있나요? 전 있어요. 갈 수 없으면 그리움이 생겨요.

애잔한 그리움을 없애려면 가서 즐거움으로 바꾸면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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