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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윤선 Oct 02. 2019

세계 일주기를 위한 준비운동

수영장 어디까지 가봤니?

선생님, 승무원이 되려면 면접에서 취미를 뭐라고 하면 붙어요?

운동을 하라고요? 액티브한 라이프 스타일을 원한다면!


강의를 하다 보면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운동을 매일 하는 것도 아니고,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이면

면접에서 거짓말을 해야 하냐고.

승무원이라는 직업은 멘탈과 체력 관리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떤 승무원 동료들은 쇼핑을 하고, 어떤 승무원 동료들은 세계 진미에 속하는 맛있는 음식과 술로 하루의 피로를 풀기도 하며, 어떤 승무원 동료들은 종일 잠을 자기도 한다.

나에겐 수영이 있었다. 비행으로 외국에 체류하면 하루 이틀 정도 5성급 고급 호텔에 머물게 된다. 나는 숙소에 도착하면 피스니스 센터의 럭셔리한 수영장을 먼저 찾는다. 그림 같은 곳에서 수영을 하다 보면 수준급인 나의 수영 실력에 외국 남성들이 주목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외국인은 내게 이성의 대상이 아니므로 나는 수영으로 비행의 여독을 풀고, 다음 코스인 미술관 관람을 위해 달려 나가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수영장은 내게 엄마의 뱃속과 같은 곳이다. 오랜 외국 생활에서의 안식처이자 밀물과 썰물의 경계선이기도 하며, 외국과 고국의 경계인 공항 같은 곳이기도 하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 천재인 줄 아셨다고 한다.

글을 모르는데도 책을 읽어주면 듣고서 똑같이 따라 읽는 흉내를 내는 걸 보고 뭐든 배우게 하셨다.

호기심이 많고 다방면에서 재능은 있었지만 싫증을 잘 느껴 진득하니 오래 하는 것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수영만큼은 어릴 적 살던 작은 아파트 동네 수영 교실이 아닌, 멀어도 유명한 곳으로 다녔다.

그때 시작한 수영이 나의 가장 오래된 취미이다. 또한 언제 어디서든 외롭거나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마다 달려가는 곳이 수영장이다.     


전 세계의 수영장을 가보다.


호주의 수영장     

 24살에 호주의 시드니로 유학을 갔다. 겨울에 떠났는데 호주는 여름이었다.

거기서 아파트에 세를 얻어 살았다. 내 룸메이트는 어학원에서 만난 한국 언니였다. 그 집 베란다 밖에는 수영장이 있었다. 그런데 남의 집 방 하나를 빌려 지내면서 내 집처럼 수영장을 사용한다는 게 어색하면서도 한편으론 은근히 부러웠다.

그곳의 수영장 타일은 부자연스러울 만큼 짙은 파란색이었다. 물이 유난히 푸르고 깊어 보였다. 타이타닉 영화에 나오는 배가 잠긴 바다가 연상이 되어 무서움증이 날 정도였다. 게다가 호주 사람들의 평균 키에 맞춰졌는지 수심이 매우 깊었다. 사실 그동안 수영할 때 얼굴을 물 밖으로 내놓은 상태로 숨을 쉬며 수영하는 호흡법을 무시하고 숨이 찰 때까지만 헤엄을 쳤었다. 그런데 그걸 본 룸메이트 언니가 나에게 자유형을 가르쳐주었다. 그 날이 성인이 되어 수영을 다시 시작한 기점이 되었다.

몇 달이라는 시간이 흐르자, 호주가 추워지기 시작했다. 멜버른으로 여행을 가서도 올림픽 선수용 수영장에 갔다. 지금 다시 기억을 떠올리면 가장 인상적인 건 수영장의 깊이다. 그곳은 거인들의 수영장이었다. 바다 같았다. 너무 깊고, 무엇보다도 길이가 굉장히 길었다. 내 수영 실력을 점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호흡법도 대충 흉내 낼 줄 알고, 팔다리도 자유형 비슷하게 할 줄 아니까 괜찮겠지 하고 두려웠지만 물속으로 들어갔다.

발이 닿지 않았다. 발아래에 그렇게 깊은 물이 있는 곳은 처음이었다. 순간 생각과 다르게 몸의 균형을 잃었다. 힘을 빼고 차분히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숨을 쉬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고 심장이 두근대는데도 신기하게 정신은 또렷하다. 소금쟁이처럼 앞으로 쭉쭉 미끄러지듯 수영을 하는 모습을 상상했지만, 물속에 잠겨서 물안경으로 바라보니 수영장 밖에서 안전요원이 연신 호루라기를 삑삑 불어대며 난리법석이었다. 마음이 조급해진 나는 정신을 차리고 허겁지겁 레일 중간에 있는 플라스틱 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간신히 물 밖으로 기어 나왔다.

나의 프로와도 같은 데뷔 수영이 될 수도 있었는데….

그 날 이후 나는 수영을 다시 제대로 배워야겠다고 결심했다.     


두바이 승무원 숙소 수영장     

26살에 나는 처음으로 승무원이 되어 두바이로 갔다.

내가 두바이에서 살았던 곳은 나의 새 출발을 축복이라도 하듯 멋진 셰이크 자이드 로드의 55층짜리 최신식 빌딩이었고, 나는 22층에 마련된 승무원 숙소에서 지냈다. 그 동네는 사막의 한가운데를 직진으로 관통하는 도로를 양 중심으로 해서 두바이 왕의 상상이 만들어낸 고층 빌딩들이 들어선 인조 도시가 시작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는 수영장이 건물 옥상에 있었다. 끝없는 사막에 펼쳐진 인조 도시가 현실감 없는 SF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지금까지 많은 수영장에서 헤엄을 쳤지만 하늘 아래 수영장이 있는 곳은 처음이었다. 건물 옥상의 수영장은 하늘에 닿아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아찔했다.

더 신기한 풍경은 모델 같은 외국인 승무원들이 태양 바로 아래서 직사광선을 쬐며 태닝을 하고 수영을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두바이로 가기 위한 준비를 할 때 나는 엄마와 함께 모든 수영 스타일을 상급 과정까지 제대로 배워서 이곳에 왔다.

나에게 수영장은 익숙함과 낯선 곳의 경계를 허무는, 영역 표시의 장소 같은 곳이었다. 강아지들이 장소를 옮길 때마다 마크를 하듯이 나는 수영장을 그와 같은 용도로 이용했다. 마치 습관처럼 현재 내가 어디에 있고, 나도 감지하기 어려운 내 마음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또 객관화하기 위해 수영장이라는 환경을 이용했다. 어느 나라에서 하루를 지내더라도 과도한 설렘은 금지다. 기회가 주어질 때 누릴 수 있는 특권임을 알기에,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아쉬움을 안고 파티를 즐기는 신데렐라와도 같은 생활이었다.

비행이 끝나고 호텔에 도착하면 여행 가방을 풀 듯 몸의 긴장과 스트레스를 수영장에서 풀었다. 물의 부드러운 부력은 편안함을 주었고, 수영장의 트랙은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의지를 다지게 해 주었다. 또한 이국적인 낯선 곳에서의 긴장감은 신선한 안정감으로 전환되었다.


3년 후 두바이를 떠났다. 그리고 다시 34살에 두바이로 왔을 때의 숙소는 공항과 가까웠다. 오래되었지만 아주 큰 빌라였다. 알가후드 동네의 숙소 수영장은 트랙이 없이 둥글고 굉장히 넓은 하늘 같았다. 외국으로 다시 나오게 된 공허한 내 마음처럼. 거기에 사막의 태양은 뜨겁고 적막했다. 수영이 곧 명상이 될 지경이었다. 두바이와 두 번째 인연을 맺었고, 고요한 수영장에서 내 삶을 차분히 돌아보며 앞으로의 계획을 세웠다.     


Seoul Pools     

나는 집 부근의 신촌에 있는 수영을 다니고 있다. 자칫 답답해질 수 있는 고국 생활을 슬기롭게 헤쳐나 가기 위한 탈출구로 수영장을 찾았다. 한국에 정착하면 외로움 없이 모든 게 다 채워질 것만 같았는데 반대로 자유로움이 없어졌다는 느낌이 든다.

처음 수영장에 등록할 때 직원에게 6개월 등록을 하겠다고 했더니 직원이 1년을 권유했다. 나는 외국에 곧 나갈지도 모르니 장기간은 어렵다고 했다.

순간 전쟁 중도 아닌데 항상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우스웠지만, 그래도 내가 6개월만 등록하겠다고 했더니, “1년 안에 설마 외국 나갈 일이 있겠어요? 그냥 1년 등록하세요.”라고 직원이 말했다.

‘아~ 이 아저씨, 정말 날 모르네!’

지금은 꿈속에나 나올 법한 외국 어느 멋진 수영장에서의 시간들을 그리워하기보다는 더 신나는 미래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들에 도전하고 배우며 즐겁게 살아가려고 노력 중이다. 지나온 모든 수영장이 다 기억난 김에 내일부터 치열한 수영을 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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