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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윤선 Nov 03. 2019

소프트 랜딩

Returning to the motherland


 

"으이그, 이 바보야…."


   

 두바이에서 승무원을 그만두고 4년이 지났다. 크리스마스 연휴에 맞춰 라스베이거스에 갔었다.  벨라지오 분수 쇼가 시작되자 음악이 흐른다. ‘Time to say good bye’.

낯선 미국 땅에서 왜 두바이에서 보았던 두바이몰 음악분수 쇼가 떠오른 걸까? 익숙하고 닮은 느낌의 도시이다. 라스베이거스에 오면 꼭 봐야 하는 관광지라길래 마지막 시험이 끝나기 몇 초 전 같이 기대하는 마음이었다. 춤추는 분수를 동영상으로 담아 엄마에게 카톡으로 보냈다. 돌아온 대답은 너는 바보였다. 아무리 라스베이거스라 해도 두바이보다 못한 걸 너도 알고 있지? 그러니까 미국이라고 기죽지 말라는 의미였을 테다.

내가 살던 두바이의 뜨거운 해변에 내리쬐는 햇살 아래 수영을 하며 평생 모자라지 않을 비타민 D를 다  공급받았다. 밤에는 아라비안나이트의 이국적인 문화가 가득한 곳이었다.

세상 좋은 걸 다 보며 자유롭던 시절을 박차고 나오더니 두바이에 비해 작은 라스베이거스 분수에 만족이 되냐는 의미로 알아들었다.

순간 그동안 마음 깊이 눌러놓았던 코르크 마개가 터져 나왔다. 형체가 없던 마음들이 압력을 받아 막혀있던 물줄기들과 함께 음악 속에 흩뿌려졌다. 마음 사방에 촉촉함을 분사하면서 여행의 기억들이 펼쳐졌다가 아스라이 사라졌다.


한국에 정착해도 외국을 자유롭게 다니며 살 수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현실에서는 실컷 흔들어 놓고 따지 않은 샴페인처럼 내 안의 온갖 호기심, 이방인으로 살고 싶은 욕망, 여행자로서의 짜릿함들이 터져 나오고 싶어서 진동을 일으켰다.  난 그 안에 갇혀 옴짝달싹을 못 할 정도로 답답했다. 그걸 옆에서 지켜본 엄마는 그때가 그리울 거란 것을 '바보' 한마디로 끝냈다. 엄마는 말을 꼭 그렇게 했다. 왜 한국에 돌아왔는지 그동안의 시간이 물의 입자가 되어 뿌연 기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나는 이제 전직 외국 항공사 승무원이다. 지구 반대편에는 아름다운 세계가 있었다. 멋지고 놀라운 일들로 넘실댔다. 능력 있는 남자들도 넘쳐났다.

한 달에 10번 이상의 해외여행으로 대부분 행복했지만, 언제까지 지속이 될지 모르는 이 행복 앞에서 불안해졌다. 언젠가 떠나야 할 것을 아는 사람처럼.

늘 소울 메이트를 찾고 있었다. 나의 라이프 스타일이 멋져 보인다고 결혼을 원하는 남자들도 있었다. 따라오는 조건은 일을 그만둘 수 있겠냐였다.

나는 결혼에 자신이 없었다. 얼마나 노력해서 외국에 취업을 해서 나왔는데 한국에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결혼하기 싫은 이유의 가짓수만큼 물론 조건도 많았다.

애인이 있거나 이미 결혼해서 안정된 생활을 하는 동료들의 이야기, 싱글로 외로움과 향수병이 고질병이지만 자유를 포기할 수 없다며 정착과 모험이라는 모순에 빠진 이들도 있었다.

비행기에서 외국인 직장 동료와의 이런저런 잡담에서 현타를 맞이하기도 했다. 주변에 남은 노처녀 승무원들을 둘러보다 나도 그렇게 늙어갈까 봐 무서워졌다. 다른 보통 여자들처럼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주부가 되고 싶었다. 외제 차도 굴리고 싶고, 남편을 위해 요리도 하고 싶고 집도 꾸미고 싶었다. 채워지지 않는 불완전함에 여전히 행복을 찾아 헤맸다. 교회에 가면 사람들이 결혼과 동시에 퇴사하며 두바이를 떠났다.      


“LA에 가서 산대. 미국 비행하러 가서 만났어. 할리우드 로드에 가서 같이 브런치를 하고 자기 집에 갔는데, 정원이 있고 미국 집 좋더라….” 그들의 소식이 들려온다.

비행 말고도 외국에서 영화 같은 삶을 살 수도 있다. 나만 그것도 모르고 비행하느라 하늘에서 밥만 주며 살았구나. 괜히 감정의 쓰레기통을 한국에 있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쏟아부었다.


“어리석게 회사를 대책 없이 그만두면 안 된다. 결혼해도 요즘은 맞벌이해야 해. 세상이 그래.

여자가 일해야 남자가 좋아해. 한국에 오면 너 답답해서 못 산다. 취업을 못 해서 젊은이들이 난리야.

지금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지 만족해라. 월급 잘 나오지, 여행도 가고 콧바람도 쐬고 얼마나 좋니.

한국에 승무원 되려고 너보다 키 크고 예쁜 애들이 줄을 섰다.

현직일 때가 좋은 거야. 넌 결혼만 안 했지 다 가졌잖니. 결혼하는 순간 뒷바라지해야 해 ”

 여전히 세상은 숙녀이고자 하는 여성에게 남자의 책임감을 같이 주다니 좀 가혹하지 않은가. 엄마도 잘 알기에 한국에 오라고 못 했을 거다.


신입 승무원도, 1년 차도, 3년 차도, 10년 차도 모두 버티는 항공사. 끝이 보이지 않는 세상을 내 발로 밟아 유한한 젊음을 이용해 돈을 벌겠다고 나온 외국인 노동자들. 우리는 사막의 프리저브드 꽃이 되기 위해 화장을 하고 향수를 뿌렸다. 운동도 하고 좋은 음식을 챙겨 먹고 좋은 화장품을 전 세계에서 공수하여 발랐다.


비행의 함정을 알았다. 향수병을 앓더니 타향병이 시작이다.

진작 알았으면 차라리 한국을 그리워하는 향수병을 택할 걸 그랬다. 타향병이 이렇게 평생의 숙제가 될 줄 알았다면. 퇴사는 한 번 그만두면 끝이다. 버티는 게 어렵다. 그만두는 것도 어려운데 버티는 건 더 어렵다.    

세상은 천장이 없는 커다란 방처럼 경이롭다. 새롭고 놀라운 풍경 속에 은은한 배경 무늬가 되어 혼자일 때도 그랬다. 내가 가본 많은 도시들의 일요일은 이방인이란 걸 너무 실감 나게 했다. 나를 유혹하고는 뻥 차 버린 뒤 어디론가 도망쳐 버렸다. 여행을 떠나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테다. 익숙한 것에 대한 향수와 이국적인 것 사이에서 방황하는 느낌을. 전혀 가보지도 않은 곳에 대해 향수병이라는 그리움을 앓기도 하는 나처럼.


착륙하겠습니다. Landing     


“ 이제 정말 돌아온 거야? ”


네가 잘 나갔던지 얼마나 행복했든 결국 돌아왔냐는 안도의 말투다.

내 원래 자리로 돌아온 것뿐인데 별로 할 말이 없다. 모두 그래 잘했다고 이해한다고 고개를 끄덕이지만 내 눈빛은 내 심중을 읽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속 시끄러운 이야기들을 깊은 물속에 꺼낼 힘이 없었다. 좋은 직장을 버리고 왜 왔냐는 거지. 한국에서 뭘 얼마나 대단한 걸 하려고. 또 뭘 하길 기대한다. 근데 나 뭐하지? 집에 와서 아주 좋다는 말은 거짓말.


비행 중독증에 걸렸다.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 하면 계속하고 싶다던 승무원. 비행은 나를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희망으로 가득 채워 가장 행복한 여자로 만들었다가도 여행을 가지 못하는 상황이 되니 가난병이 들게 했다. 전직 승무원들, 외국에서 고군분투하며 생활해본 친구들은 말한다. 비행기에서 한국을 내려다보면 안도감과 동시에 기분이 나쁜 기간이 있었다고. 점점 줄어들어들 때쯤 그들은 또 떠났다.

떠났던 기간만큼 치러야 할 나의 감정의 잔여물, 만취 후에 남는 숙취처럼. 나는 지금 일상 속에서도 여운의 온도를 느끼며 추억 팔이 대신 글을 쓰며 곱씹는 여행을 떠나고 있다. 승무원 생활 덕분에 내가 가진 가능성을 볼 줄 알게 되었다.  

비행은 늘 내 몸을 잔뜩 긴장하고 주의 깊은 성향으로 만들어갔다. 낯선 외국을 여행자로 다닐 때, 긴장감 속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곤 했었는데, 나는 요즘 서울에서 비행의 추억이 떠올릴 때마다 긴장감 있게 글을 쓸 수 있어서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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