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갤리 (Galley)에서 느낀 단절에 대한 공포
이번 비행은 카사블랑카다. 공항 코드 CMN. 승무원의 비행 로스터에는 비행기 편명과 공항 이름으로 표기된 현재와 과거와 미래의 한 달 스케줄이 공존되어 있다. 총체적으로 생생하고 스릴 있게 살아가도록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나에게 카사블랑카 라는 이름은 어릴 적 안방에서 주말의 명화 시간에 보던 흑백 영화 제목이었다.(1942년에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 수상작으로 전쟁 멜로드라마.)
비행 가기 전에 위키피디아에서 보고 카사블랑카가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처음 알았다. 내가 가는 곳이 어디에 쯤인지 벽에 붙어 있는 세계지도를 보고 북아프리카 대륙에 위치한 모로코의 수도 이름을 알게 되었다. 오늘은 영화 제목으로만 알던 그 도시를 밟는다.
모든 비행에는 비행 가는 나라의 국적 승무원이 탄다. 승객들의 편의를 위해서이고 현지 전문가가 있어야 하는 팀원 구성의 룰이다. 우리 비행기에 미스 모로코 수준의 흑백 영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모로코 출신의 여승무원이 있었다. 손에는 다이아몬드 5캐럿쯤 돼 보이는 반지를 왼손에 끼고 있었다. 프러포즈를 받았고 곧 결혼을 해서 이번 비행을 마지막으로 퇴사를 한단다. 모든 승무원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비행기에서 일하러 온 건지, 놀러 온 건지 모를 정도로 화려한 화장과 부러질듯한 긴 손톱과 눈이 부셔 빠질 듯한 다이아몬드 반지로 9시간 정도의 거친 기내 서비스를 할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마지막 비행이니까 비행기에 모든 승무원들을 그녀에게 멋진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축하를 해주었다. 자신이 오퍼레이팅 하는 비행기에 유니폼을 입고 고국을 갈 일은 이번이 마지막이기에 큰 의미가 있는 거다.
Trash Compactor
인간이 두려움을 느끼는 다섯 가지 요소중 ’ 절단‘과 ’ 단절’에 관한 이야기다.
카사블랑카로 향하는 야간 비행이었다. 고개를 돌려 비행기 창문을 통해 흩뿌려진 글리터처럼 반짝이는 별빛을 잠시 바라보자마자 서비스 시작이다. 식사를 나누어 주고 음료를 제공한다. 얼마 후 치우는 클리어런스(clearance)가 시작된다. 엄청난 쓰레기가 나온다. 3번의 식사 서비스 동안 나오는 쓰레기 양은 비행기에 당연히 보관할 공간이 없으므로 쓰레기 압축을 해야 한다.
비행기 뒷 갤리에는 '트레쉬 컴팩터'라고 하는 기계가 있다. 플라스틱 컵이나 종이 주스팩을 찌부시켜 부피를 줄이는 기계다. 서비스 노동의 군기가 바짝 든 승무원들은 쓰레기 압축 기계가 가득 차 있는 꼴을 못 본다. 자동 반사로 ON버튼을 누르고 하이힐 앞꿈치로 안전 해치를 건다.
이 기계에 대한 작동 방법과 유의 사항을 매번 잘 숙지하도록 당부에 당부를 한다.
손가락이 낀 채로 작동하여 손가락이 기계에 들어가거나 각종 사고가 많은 무시무시한 물건이다. 소리 또한 요란하고 무섭다. 누구는 뱃속의 가스가 날아가듯, 트림이 거하게 나오는 소리.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소리 우지직 부지직~~ 이라고 하는데 나에겐 공포다. 믹서기에 사람이 들어가는 무서운 영화를 본 이후로 자꾸 그 장면이 떠오른다. 손가락이 없거나, 다리가 절단되어 흔들거리는 사람들을 보면 절단에 대해 고소 공포증 같은 신체 증상이 나타난다. 기계 근처만 가도 상체는 최대한 멀리 다른 무언가를 잡고 서게 된다.
트래시 컴팩터를 볼 때마다 긴장을 하고 피하고 싶은 기분이 든다. 작동을 웬만하면 하고 싶지 않으나, 승무원은 팀워크 일이라 보는 사람 누구라도 자동 반사로 작동을 해야 한다. 조심에 조심을 더해서 천천히 꼭꼭 눌러 작동을 시킨다.
작동 방법은 간단하나, 이 기계가 가끔 고장이 나서 압축이 안될 때가 종종 있다. 그러면 승무원들은 이불 빨래하듯이 쓰레기 위로 올라가 하이일로 쓰레기를 밟는다. 토마토 주스, 오렌지주스, 우유, 음식 쓰레기, 종이, 비닐, 휴지들이 마구 섞인 그 위로. 잘못 밟으면 튀기고 터져서 스타킹이 젖는 수가 있으니 음식물은 넣지 않는 게 좋다. 다칠 수도 있으니 너무 과격한 행동은 안 하는 게 좋다. 쓰레기통이 넘쳐 비행기가 난지도가 되기 전에 처리하려면 성격 급한 사람은 그 꼴 못 본다.
서비스가 마무리 단계에 기내의 모든 쓰레기 수거를 하고 카트에 다 집어 놓는다. 이미 음식 냄새가 유니폼과 머리와 손에 다 배었다. 치우느라 쓰레기 냄새가 날대로 다 나지만 깨끗이 손을 씻고 우리만의 식사 시간을 마련한다. 승무원 전용 음식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샐러드와 과일, 초콜릿들이 간식으로 비행기에 실린다. 승객들의 식사 초이스 중에 남은 음식을 먹기도 한다.
그런데 갑자기 퍼스트 클래스에서 SOS가 온다. 모로코 승무원이 끼고 있던 다이아몬드 반지의 알이 빠졌다는 것이다. 까르** 브랜드에 고가로 꼭 꼭 찾아야 한다며 울고 불고 난리다.
결혼이 깨지려는 징조인가 불길하다며 울었고, 약혼자에게 미안해서 어쩌냐고 울었고, 결혼을 못하게 되면 어쩌냐고 분리와 단절에 대한 공포에 휩싸여 비행기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우리는 모두 절단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다. 분실에 대한 것보다는 몸에 있던 것의 분리, 소중한 존재와의 결별 이 모든 것들이 두려움을 가져온다.
트레이를 치우는 작업 중에 쓰레기통에 빠진 것 같다며 기내 쓰레기통을 모두 뒤지기 시작했다. 플라스틱은 부셔버리고 음식들은 터져버리고 모든 걸 납작하게 만드는 그 기계 속에서 이미 섞일 대로 다 섞인 쓰레기에서 과연 다이아몬드 알맹이를 찾을 수 있을까?
우리 모두는 동료의 불행 앞에서 다 같이 너그러워졌다. 함께 걱정하고 한 마음이 되어 일회용 장갑을 다들 끼고 쓰레기통을 갤리 바닥에 부어 엎었다. 그런 반지를 끼고 온 자체가 문제라는 그녀의 자만심에 쌤통이라고 생각한 자들도 있었는지는 각자 느꼈을 거라 생각하고 어쨌든 우리의 행동은 열심히 한 마음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게 얼마나 반짝이던지 쓰레기 더미더미 산 더미 속에서도 고고하게 반짝였다. 신기하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이아몬드를 찾을 수 있었다. 흠집 하나 상처하나 없다, 다이아몬드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광물이다. 탄소의 압력을 받아 팔각 구조로 누구보다 단단하여 모든 금속을 자르는 다이아몬드 광선 칼이 있을 정도다.
눈에 띄고 도드라져 마치 반지 주인을 흘겨보듯이 눈을 흘겨대며 영롱한 눈빛으로 쏘아댔다. 무색에 가까울수록 빛이 잘 투과되어 무지갯빛을 발하는 좋은 다이아몬드 임에 틀림없다며 또 한 번 부러워했다. 그녀는 모든 걸 부셔버리는 무서운 똥통에 빠져도 살아나는 자신의 다이아몬드 반지가 부활이라도 한 듯 자랑스러워하며 모두에게 고맙다고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반면 승무원 동료들은 화장실에 가서 비누로 실반지조차 없는 손을 여러 번 씻어야 했다. 참 너그러운 사람들이다. 우리 승무원 모두는 역시 다이아몬드라며 속으로 꼭 다이아몬드를 언젠가는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아무튼 승리와 변치 않는 사랑의 영원함을 상징하는 다이아몬드처럼 행복한 결혼 생활이 되기를 바란다.
카사블랑카에 도착하여 우리 비행기에 탄 모든 승무원 모두 다 함께 관광을 갔다. 카사블랑카의 모스크로 세계에서 3번째로 큰 하산 2세 이슬람 사원에 다녀왔다.
모로코의 파란 마을, 마라케시를 다녀와 셰프 샤우엔, 나란히 놓여있는 파란 문들, 미로와 같은 좁은 골목. 아르간 오일, 도자기, 지팡이를 샀다. 카사블랑카라는 이름의 뜻처럼 하얀 집들이 흰 벽으로 둘러싼 듯이 도시 전체가 이국적이다. 현실감각이 없을 만큼 시간 여행을 온 느낌이다. 현재는 미래를 포함한다. 많은 곳을 여행할 수 있었던 시간이 없었다면 이런 상상력도 생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