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 사랑과 나
사랑 사랑 사랑
손에 잡히지도 않는 무형의 현상을, 정확히 포착해 잡아보겠다고 애썼다. 무던히도.
‘사랑’ ‘애정’ ‘진심’ 보다 ‘책임’ ‘존중’ ‘신뢰’ 가 더 중요한 세상에서 사느라, 한참은 사랑의 시야에서 벗어난 시간을 보냈다. 사랑은 ‘사랑해’ 보다도, 그가 나를 귀엽게 어떨땐 가엾게 봐주는 시선에서, 힘을 빼고 어떨 땐 힘을 잔뜩 싣는 쓰다듬에서, 다 알 수 있었다. 내가 바라는 건 ‘사랑’이지 ‘사랑해’가 아니니까, 말은 그저 흘러가게 두고 관계가 더 단단해지는데 애썼다.
그러다가도 사랑 위에서 우리 둘을 주무르고 싶은 욕심이 불쑥 솟아났다. 그럴때면 대화 카드를 구해와 함께 한다던지, 애정이 깊어지게 하는 질문을 gpt에 물어보곤 문답 편지를 함께 써본다던지 하며, 우리 둘의 시선이 가운데로 모이게 했다.
다시 만난지도 1년이 지나, 같이 고른 편지지를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옆에는 GPT가 골라준 질문 ‘다시 만나기로 했던 선택이 맞았다고 느낀 순간은?’ ‘힘든 시기가 와도 우리가 괜찮을 거라고 믿게 만드는 이유는’ 등을 펼쳐뒀다. 각자 편지지에 답을 써내려가며, 나는 그의 문장이 내 불안한 궤도를 지탱해주는 지지대라도 되는 양, 그가 쓴 글자 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그가 담는 진심의 무게를 가늠하고 좋아했다.
아마 내게 익숙한 건 사랑을 이해하기보다 통제하는 일이다. 그래서 다시 아차차하며 ‘아냐. 내 것에 집중하자. 내가 그에게 내어줄 수 있는 마음에만 집중하자.’ 생각했다. 내게 이 과정은 의식적이다.
이별 전의 나는 사랑을 이리저리 원하는대로 주무르다가 원하는대로 되지 않을 때, 어린 아이가 칭얼대며 핑계를 대듯, 이뤄지지 않는 내 바람에 ‘사랑’이름을 붙이고, 내 사랑과 너 사랑을 구별지었다. 마치 상대에게 잘못이 있다는 듯, 다른게 아니라 틀린거라고.
사랑은 매혹적이다. 내 존재를 거대한 중력으로 끌어당겨 존재의 가벼움과 불안을 모조리 잊게 하니까. 상대가 충분히 날 끌어당기지 못할 때 나는 궤도를 잃고 방황한다. 예전에 그렇게 사랑을 잃고는 다시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 나는 궤도를 이탈하지 않기 위해 내 발밑에 단단한 흙을 채우기로 했다. 내가 쉬이 통제할 수 없는 사랑을, 제멋대로이고 위태로운 현상을, 상대에게 채근하기 보다 내가 다루기로 했다.
그래서 글을 쓴다. 사랑을. 내가 불완전하고 불안하다는 고백을. 사랑을 이리저리 뜯어보고 주무르고 내 아래에 두려는 욕심을. 하지만 이 모든 시도가 내 욕심이 상대를 향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사랑을 보살피고 이해하려는 정성임을 알아주어라.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제멋대로 날뛰던 사랑도 화면 위에 정갈하게 나열된다. 사랑이라는 거대한 바다에서 내가 표류하지 않도록 닻을 내린다. 그렇게 쓴 문장들이 모여 내 발밑의 영토가 된다면, 나는 기꺼이 평생 사랑을 쓰는 자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