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사랑과 선택
지금까지 썼던 글을 다시 찬찬히 읽으면 모든 글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 내 사랑은 괜찮아 ”
이 문장은 사랑이 괜찮은 게 아니라 내가 괜찮고 싶은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괜찮다- 는 말속엔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다. 이별은 꼭 필요한 거였어 괜찮아- 재회는 불가항력이었어 괜찮아- 내가 그를 좋아하는 마음에 빚져 내 지금까지의 선택과 행보를 위로한다.
사실 나는 괜찮다는 말을 자주 쓰던 시기에 가장 괜찮지 않았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얼굴이 반가웠을 때부터 무서웠다. 다시 만나겠다는 것은 알았지만 영원히 만날 수 있을지는 알지 못했다. 마음은 저만치 앞서 뛰어가 결정을 내려버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뒤에서 허겁지겁 마음을 쫓으며 괜찮을 거라고 다독이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무서웠다.
‘괜찮아’라는 말과 멀 때 ‘괜찮아’를 적어 내려 갔듯 사랑과 멀 때 사랑에 대해 가장 고민했었다. 어떤 마음을 사랑이라고 부르는지에 대해 생각했고, 그가 내게 보여주는 마음이 사랑인지에 대해 고민했다. 남자가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할 때 보이는 모습과 그를 비교하며, 그와 나 사이의 문제를 모두 애정의 문제로 돌렸다. 정말로 애정의 문제인 것과, 애정의 문제로 보는 시선의 문제가 뒤섞여 문제를 키웠다. 나는 모든 걸 사랑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나에게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삶의 가장 큰 부분을 사랑이 차지했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모든걸 사랑에 의탁하던 시절의 책임은 이별로써 떠안아야 했다.
이 시리즈를 쓰기 시작한 건 다시 만나고 반년쯤 됐을 때다. 결별의 그림자는 없다시피 한 재회였지만, 그는 마치 오랜만에 만난 동창처럼 잘 알겠으면서도 새로워서, 나 또한 새로 만나는 연인처럼 마음을 키워가야 했다. 찌질하고 멋없는 생각과 엉망진창의 마음을 슬쩍 들이밀고 괜찮은지 확인했다.
그러다가 경희궁에 갔던 어느 초여름, 갑작스레 쏟아지는 비를 피하며 벤치에 앉아있을 때. 그의 포옹과 잠깐의 입맞춤이, 그의 쓰다듬이 설레었을 때 난 알게 되었다. 사랑이 깊어졌구나. 난 다시 이 사람을 사랑한다. 사랑은 초여름의 비처럼 순식간에 스며들었고, 온 기운을 여름으로 끌어들이듯 난 그 속에 서있게 되었다.
습관처럼 사랑을 평가하던 과거는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불안했다. 혹시 내가 또 내 세계를 잃고 모든 걸 사랑의 눈초리로 보느라 관계가 엉망으로 흘러갈까 봐. 나는 종종 내가 그에게 너무 빠지지는 않는지, 그의 모든 걸 용서하려들진 않는지 지켜봤다.
그래서 기분 상한 일이 생겼을 때에도 난 의식적으로 내 마음을 그의 것보다 조금 더 위에 두려고 했다. 말을 할까 말까 고민을 했지만 대부분 이야기하기를 골랐다. 겨우 마카롱 하나에도 애정을 의심하는 어린애인 것을 그에게 다 들켜버리는 이야기들을. 독립적인 어른이고 싶지만 사실 사랑을 부리고 싶은 철부지인 것을 내가 기어코 인정해야만 하는 이야기들을.
고맙게도 그는 마땅히 서운할 일인지 머리를 굴리기보다, 내가 하는 얘기 그대로 내 감정을 인정해 주었고 난 그 안에서 안심했다. 안심하고 안심하는 시간이 쌓여 나의 시선은 드디어 애정을 벗어났다. 가끔 그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에도 더 이상 ‘그의 사랑이 부족해’에 머무르지 않았다. 이 다름을 맞춰갈 수 있을지, 어떻게 맞춰가야 할지로 옮겼다.
이 글을 쓰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사랑 에세이를 쓰기 시작할 때만 해도 온통 내 생각은 사랑, 사랑, 사랑. 나는 사랑을 알지 못해 더욱 알고자 했고 그래서 더 열심히 썼다. 내가 하는 게 사랑이 맞다고, 의심하지 말라고, 모든 게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처음 사랑이 여름비처럼 스며들었듯이, 요즘의 나에게 애정의 유무와 크기보다 함께함을 선택하는 것과 그 선택을 얼마나 책임질 수 있는지가 사랑 자리를 꿰차고 스며들었다. 사랑은 우리가 사람(人)으로 바로 서는 일이다. 이제 사랑이 무엇인지 의심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기대 올곧게 땅을 딛는 일. 우리 둘이 함께 설 수 있도록, 상대가 기댈 품을 나누면서도 나는 나 스스로가 무너지지 않도록 돌보는 일. 서로의 고유성을 보존하면서도 함께 공존하는 지난한 과정을 기꺼이 이고 가는 일.
아직도 나에게 남은 것은 무수한 선택들이고,
사랑은 나를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