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이야기의 끝에서

3부. 사랑과 상실 (5)

by 글희

내 큰 슬픔, 공허는 어디서 왔을까.

거대한 세상에 맞서야 하는 홀씨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흘러가듯 사는 동안 내 색깔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누군가 나는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을 때 난 빈 도화지 같다고 했다. ‘비어있다’는 영 불안했다. 세상에 맞서기엔 취약하다고 느꼈고, 자주 숨고 싶었다.


낯선 시작


건강한 루틴으로도 공허와 권태가 지워지지 않을 무렵, 독서 모임을 시작했다. 낯을 가리는 성격에,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작은 그룹을 선택했다.

첫 모임엔 나를 포함해 4명이 모였다. 누가 나올까,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내가 들고 가는 책이 적절할까 등 지금 생각해 보면 사소한 걱정으로 심장이 쿵쾅댔다. 그러나 이야기를 할수록, 책을 매개로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에 흠뻑 매료됐고 나는 금방 그 속에 적응했다.

모임에서 난 익명으로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나를 알지 못했고, 나는 내가 말하는 만큼 내가 되었다. 모임에는 그간 만들어온 나에서 벗어나는 해방감이 있었다. 나는 완전히 자유로웠다. 나는 내가 아닌 것처럼 명량하게 굴었고, 몇 달 후엔 기울어가던 독서 모임을 이어받아 운영진이 되었다.

모임엔 여러 색깔이 모였다. 내가 살아온 길과는 영 딴판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많았다. 외국에서 음악을 전공했지만, 우리나라가 좋아 귀국해서 국문학을 다시 배운 사람이 있었고. 웹소설을 쓰면서도 굿즈도 만들고 영상도 제작하며 먹고사는 사람도 있었다. 꿈을 좇아 홀로 상경해 전공만 네 번을 바꾼 사람도 있었고. 사람 만나는 게 싫어 최대한 은둔하는 직업을 선택하고도 모임에 나와 해맑은 사람도 있었다.

아무튼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눌 만큼은 다들 온전하니까. 잘 살아있으니까. 이 사실이 사람 사는 모양은 그 어떤 모양이어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여행을 떠나다


어느 날은 여행을 좋아하는 대학생이 모임에 나왔다. 계획보다는 즉흥에 삶의 본질이 있다고 여기는 친구였다. 그 친구가 마음에 들고 궁금해서, 밖에서 만나자고 따로 불렀다.

사심이 잔뜩 있는 부름에 그는 의아해하지 않았다. 나는 약속이 성사된 것이 서로의 호감에 대한 모종의 합의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혜화 마로니에 공원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아다리가 맞지 않는 대화에 영 아니구나 단념했다.

“낙산공원이나 걸을까요”

반가운 제안이었다. 설레기보단 어색했던 시간을, 무슨 이야기를 할지 몰라 난감했던 정적을 깼다. 그는 즉흥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다웠다. 발걸음이 닿는 대로 걸었고 나도 뒤따라 걸었다. 골목 구석구석을 구경했다. 낙산공원은 그토록 많이 왔었는데 그간 보지 못한 골목과 담벼락, 주택, 구조물들이 쏙쏙 나타났고 그게 무척이나 재밌었다. 성곽길을 따라 걷다 어느새 발치에 동대문이 나타났다.

“동대(大)문이잖아요. 동소(小)문도 있어요”

헉! 동소문이라니. 동대문은 동대문이었지 동,대,문이 아니었는데. 그러고보면 동,소,문이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별거 아닌 소소한 앎인데 킥킥대게 만든다. 자주 오던 동네인데도 꼭 여행 같았다. 거창하지 않아도 재밌구나. 나도 이렇게 돌아다녀볼까.

그는 모임에서만 가끔 만나는 사이로 남았지만, 나는 그가 데려다준 세계를 좋아하게 되었다. 나는 당해 여름부터 홀로 이곳저곳 여행을 떠났다.

쉬는 날 아침이면 코레일 앱을 열고 잔여석이 있는 기차를 뒤졌다. 가볼 만한 지역에 남은 기차표를 찾으면 바로 표를 예매했고, 기차 위에서 어디를 돌아다닐지 찾았다. 영월, 원주, 안동, 수원, 인천, 제부도 … 한 달 사이 많이도 다녔다.

많이 걸었다. 덥고 습한 탓에 입고 있던 옷이 항상 땀으로 흥건해졌다. 돌아오기 전엔 항상 찜질방에 들렀다. 따뜻한 욕탕에 몸을 담그고 피로까지 싹 씻어내고 나면, 내가 무엇 때문에 걸은 건지 어떤 걸 얻은 건지는 몰라도 무척 개운했다.

익숙하지 않은 지역에서 난 매 순간 선택해야 했다. 무엇을 볼지, 어떤 걸 먹을지, 어디를 갈지, 어떻게 갈지… 뻔한 것들 사이에서도 재미를 느껴버리고 말았다. 매 순간이 재밌진 않았고, 의미가 있었는지도 모호했지만, 가만히 있을 때보단 사는 것 같았다.

정답을 고를 필요가 없는 방랑자의 여정처럼, 내가 사는 것도 그랬다. 떠돌이처럼 떠돌며 살아도 그 나름 사는 것이었고 항상 온전할 필요도 없었다. 삶을 사는 건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었고, 나는 혼자 떠돌며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사랑


사랑 이야기를 하는데 멀리도 돌아왔다.

사랑은 애를 쓰는 일이고 애가 타는 일이다. 긴 연애 기간 동안 나는 그를 사랑하는 동시에, 그와 써 내려간 우리의 이야기를 사랑했다. 고등학생 때 동아리 선후배로 만났고 - 거의 모든 일이 서로가 처음이었으며 - 남부러울 긴 연애를 함께했다. 나이를 먹어서도 어렸을 때나 할법한 유치하고 촌스러운 연애를 했고, 난 그게 마음에 쏙 들었다. 난 이 이야기를 사랑했다.

이별은 내가 바라던 결말이 아니었다. 그 사람뿐 아니라 내가 사랑한 이야기를 잃는 일이었다. 그와 함께하기만 하면 이야기는 저절로 쓰였는데, 혼자서는 어떻게 이야기를 쓰는지 몰라 방황했다.

세상에 던져진 홀씨는 여러 해를 떠돌았다. 떠돌면 떠도는 대로 이야기가 쓰이는 걸 전에는 몰랐다. 방황하기 싫어 탄탄하게 지냈지만, 안착하여 살 때보다 한참을 떠돌 때 가장 재미난 이야기가 쓰였다. 난 이야기를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글을 썼다.

글쓰기 시작한 지도 벌써 1년이 넘는다. 내 이야기를 세상에 잘 정돈해서 보여주고 싶어 애가 쓰인다. 내가 느낀 바가 왜곡되지 않길 바란다. 그래서 단어를 고민하고 문장을 고민한다. 좀 더 잘 쓰고 싶어 애가 탄다. 글쓰기 모임에도 들어가고 글쓰기 수업도 들었다.

글을 사랑하게 되었다. 더 좋은 글을 쓰고 싶다. 삶을 더 옹골차게 살아야지 글도 그만큼 야무지겠지. 그런 생각을 할 때면 가만히 누워있다가도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이것저것을 찾아본다.

이별은 꼭 필요한 것이었다. 내가 나로 살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시간이었다. 내가 나로서기는 다시 시작한 우리가 우리로 건재하기 위해서도 필요했다.

산다는 건 잃어 가는 일이니까, 상실의 이야기야말로 가장 사람 사는 냄새 진한 이야기이겠다. 그래서 사람들이 상실의 이야기를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잃어가는 만큼 이뤄가는 것이 삶이지 않겠는가. 여전히 잃는 것은 두렵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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