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내음 맡아보셨는지
검정치마의 'everything'이라는 곡을 아시는지. 이 곡의 클라이맥스에 다음 가사가 나온다.
넌 내 모든 거야, 내 여름이고, 내 꿈이야.
내가 좋아하는 선배는 "조휴일씨가 이 가사 한 줄 쓰고 얼마나 짜릿했을까"라고 말했다. 그 후로 이 노래를 밤이면 듣게 됐지. 여름은 강렬한 만큼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계절인 것 같다. 얼어 죽고 말지, 더위라면 혀를 내두르는 나는 여름이면 되려 기운이 한 풀은 꺾이는데 말이지. 누군가 매년 손꼽아 기다리는 여름은 내게 그다지 매력적인 계절이 아니다. '여름이었다'로 은유되는 각종 표현에 그다지 공감하지 않는다. 그냥 '더웠다' 아닌가?(아 물론 여름 수호자들의 취향 존중한다)
여름과 겨울 중 택하라면 후자를 고르겠다. 하지만 선택지가 더 있다면 가을을 최고로 꼽겠다. 봄보다 가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살아 있기 딱 적당한 기온 아닌가? 계절감 없이 옷 입는 내 생존에 무리 없고, 거리의 꽃놀이로 사랑놀음하는 커플 안 봐도 되고(아 물론 저도 몇 번 동참했습니다만), 무엇보다 계절 내음이 가장 좋아서. 향에 민감한 나는 여름의 눅진한 공기에서 잘못 말린 빨래 냄새를 느낀다. 하지만 가을은 선선한 바람 덕에 공기 순환이 잘 되는 건지 한 자리에 고여 있는 냄새가 없다고 해야 하나? 잘 말린 빨랫감 냄새가 느껴진달까. 기부니가 절로 산뜻해진다.
하루는 귀가 후 온 에너지를 소진한 사람처럼 누워 있었다. 여느 때처럼 적막함을 채우기 위해 음악을 틀고 의식적으로 '멍 때리기' 시간을 가졌다. 그러곤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었다.
'자전거 타야겠다!'
별다른 스킬 없이도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운동이자 취미인 자전거 타기.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자전거를 정복하고 싶은 나머지 무릎이 박살 나도록 연습해 이 작은 스킬을 얻었다. 성인이 된 이래로 지금까지, 왜인지 "자전거 탈 줄 안다"라고 하면 꾸준히 의심받곤 했지만. 그래, 내가 운동 신경이 영 별로긴 한데 잘하는 게 한두 개쯤은 있단다.
가을에 타는 자전거를 특히 좋아한다. 발을 구르는 단순 동작 반복만으로 바람을 가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게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 주변 풍경이 장면처럼 바뀌며, 풀냄새와 뒤섞인 공기가 코끝을 자극하면 어쩐지 흥분된다. 온전히 살아 있다는 것, 내가 이 땅에 발 디디고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시원한 옥수수수염차를 구입해 목을 축이고 따릉이를 타고 신나게 달렸다. 피부에 닿는 감각이 마음에 들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었다. 소란스럽지 않았다. 무엇 하나 거슬리는 구석이 없었다.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으로 내달리며 인적 드문 곳에서 영상을 찍었다(위험한 일이지만 내 무릎만 깨지는 거니까).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모자람 없는 적당함이란 이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충분했다.
오늘 바깥 바람 쐴 예정이라면 가을 냄새를 양껏 맡아 보시라. 참고로 난 10cm의 곡 ’10월의 날씨‘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