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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TELYST Dec 09. 2019

집과 호텔의 만유인력

집과 호텔, 그리고 에어비앤비

집과 호텔의 만유인력 #1 - 유통


최근 들어, 집과 호텔의 경계가 점점 희미해지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호텔 산업의 가치사슬 통합자 역할을 수행하는 글로벌 호텔 브랜드사들은 앞다투어 주택 임대차 플랫폼을 출범시키고 있습니다. 유럽 최대의 호텔 브랜드사 Accor는 2016년 Onefinestay를 인수했고, 세계 최대의 호텔 브랜드사 Marriott이 2019년 뒤를 이어 Homes & Villas를 출범시켰습니다. 호텔의 유통 시장의 주도권을 두고 대형 글로벌 브랜드사들과 경쟁 관계를 형성했던 OTA들은 이 부분에서 더욱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습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OTA인 Expedia는 2018년 주택 임대차 플랫폼 ApartmentJetPillow를 인수했고, Expedia와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Booking HoldingsBooking.com을 통해 주택 임대차 비즈니스를 확장해왔습니다.



이러한 역동적 변화의 출발점은 2008년 출범한 주택 임대차 플랫폼 Airbnb의 예상을 뛰어넘는 급성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지켜본 순수 주택 임대차 플랫폼들 또한 과거와 달리 임대 기간을 점점 짧게 쪼개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가장 극단적인 형태는 Flipkey, HomeAway, VRBO처럼 주택의 소유주가 직접 사용하지 않는 특정 기간, 예를 들면 휴가 기간에 국한하여 단기로 임대하는 플랫폼들입니다. 그리고 지역별로 파편화된 주택 단기 임대차 시장에서 RentberryNestpick 같은 플랫폼들은 글로벌 체인을 구축해가고 있습니다. 한편, 주택 단기 임대차 플랫폼을 표방하며 출범한 Airbnb는 2019년 SiteMinder와의 협업을 통해 공식적으로 호텔을 유통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서로 다른 곳에서 출발한 이들이 집인지 호텔인지 구분할 수 없는 공간 상품들을 생산하여 유통하고 있으며, 이들의 비즈니스 모델은 점점 한 곳으로 수렴하고 있습니다.


집과 호텔의 만유인력 #2 - 상품


그러나, 이처럼 집과 호텔이 가까워지려는 현상이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1800년대 중반 미국에서 호텔, 별장, 기숙사, 고아원, 하숙집 등이 홍보 목적으로 'Home Away from Home'이라는 슬로건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는 한시적인 체류를 목적으로 하는 다양한 공간들로 광범위하게 확산되었습니다. 신석기시대 들어 농경을 통해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된 인류는 정착 생활을 시작했고 생산의 잉여가 발생하면서 교역을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객지에서 체류해야 하는 경우들이 생겨났지만, 당시에는 집을 떠나 객지에 체류하는 일이 무척이나 고된 일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동서양 간 최초의 무역로였던 실크로드를 횡단하는 것은 9개월 동안 물과 식량을 얻기 위해 사투를 벌이며, 출몰하는 도적들을 물리쳐야 하는 험난한 여정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잠시나마 집에서처럼 편안하게 쉬어갈 수 있는 안식처로 상업용 숙박시설이 등장했습니다. 즉 호텔의 태생 자체가 집과 최대한 비슷한 품질의 공간을 표방했던 것입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표준화되어온 호텔들 중 집과 가장 가까운 형태를 보이고 있는 유형은 장기체류(Extended Stay) 호텔입니다. 일반적인 호텔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간이주방(kitchennete)이 객실마다 설치된다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일반적인 호텔 객실보다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하게 되지만, 하루 단위가 아닌 일주일 단위로 판매되는 경우가 많아 매출이 안정적이고, 제공되는 서비스의 빈도와 범위 또한 제한적이기 때문에 운영 비용이 훨씬 낮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또한 이러한 유형의 호텔이 별도로 구분되어 있는데, 관광진흥법에 따른 '가족호텔'이 이러한 유형에 해당됩니다. 관광진흥법에 따른 '휴양콘도미니엄' 또한 객실마다 간이주방이 설치됩니다만, 회원제를 기반으로 운영하게 된다는 점에서 호텔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흥미로운 부분은 호텔만 집이 되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집이 호텔이고자 하는 경우들 또한 존재했습니다. 고급 아파트나 주상복합 분양 광고에서 '호텔식 서비스'가 제공된다는 문구가 보이기 시작한 것은 이미 한참이나 된 일입니다. 원래 불모지에 개척된 무역로를 따라 들어섰던 상업용 숙박시설들은 인류의 문명이 발전하면서 진행된 도시화를 따라 점점 도시로 옮겨왔습니다. 그리고 절대왕정과 산업혁명을 거쳐오며 규모가 커지고 고급화되었습니다. 일반적인 주택에서 접하기 힘든 첨단의 설비가 설치되고 귀족들의 저택에서나 가능했던 고급 서비스가 제공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호텔은 객지의 안전한 안식처라는 기능적 가치 외에도 특별한 경험의 장소라는 형이상학적 가치를 제공했고, 언젠가부터 집보다 더 좋은 품질의 공간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집이면서 호텔의 요소인 서비스가 가미된 시설을 일반적으로 서비스드 레지던스(Serviced Residence)라고 합니다. 주택으로 사용되는 것을 전제로 지어지지만, 필요한 경우 상업용 숙박시설로 활용될 수 있도록 허락된 시설입니다. 일반적으로 Airbnb를 통해 유통되는 상품들이 이에 해당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서비스드 레지던스가 처음 등장했을 때, 관련 규정이 미비하여 이를 두고 호텔업계와의 마찰이 있었습니다. 당시 서비스드 레지던스란 호텔처럼 하루 단위로 임대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오피스텔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다가, 2012년 공중위생관리법에 '생활숙박시설'이 추가되면서 법적 지위가 주택이 아닌 숙박시설로 비교적 명확해졌고, 격화되던 마찰은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습니다.


여전히 필요한 집과 호텔의 경계


이처럼 집과 호텔 간의 만유인력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최근 들어 본격적을 힘을 발휘하고 있는 듯합니다만, 여전히 집과 호텔 사이에 명확한 경계가 불가피한 것 또한 사실입니다. 특히 법적인 측면과 관련된 부분에서 그렇습니다.



첫 번째 문제는, 주변 지역의 안전과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되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 위치한 어떤 땅이건 간에 주거지역이나 상업지역 같은 특정 지역지구에 속해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주택의 경우 주거지역에 건축될 수 있는 반면 상업지역에는 주상복합이 아닐 경우 건축될 수 없습니다. 반면, 숙박시설의 경우 상업지역에 건축될 수 있는 반면 주거지역에는 건축될 수 없습니다. 국가에 따라 미세한 차이는 있지만, 이러한 규제는 사실 어느 나라에서나 존재합니다. 기본적으로 주거지역의 안전과 거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규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Airbnb를 비롯한 주택 단기 임대차 플랫폼들은 커다란 숙제를 안고 있는 셈입니다. 주택으로 허가를 받아 지어진 건물을 숙박시설로 활용하는, 즉 법의 규제를 회피하는 비즈니스 모델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문제는, 과세 형평성에 대한 문제를 초래하는 경우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주택 임대 사업자는 부가가치세 납부가 면제되는 면세 사업자에 해당합니다. 반면, 호텔업자는 부가가치세 납부 대상에 해당됩니다. 만약 주택 임대 사업자가 주택을 호텔처럼 운영하게 된다면 주택 임대 업자는 호텔업자에 비해 10% 낮은 가격에 임대하더라도 실질적으로 동일한 매출을 얻는 셈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다른 국가에서도 비슷합니다. 미국의 호텔업자들은 주택 임대 사업자와 달리 Occupancy Tax나 Transient Accommodation Tax 같은 세금을 별도로 부담합니다. 주택으로 허가를 받아 지어진 건물이 숙박시설로 활용될 경우 과세의 형평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세 번째 문제는,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해결의 책임에 대한 문제입니다. 집이건 호텔이건 다양한 사건이나 사고가 발생할 수 있고, 이 때문에 소유주는 재산상의 손실 등에 대비하여 손해보험에 가입하게 됩니다. 문제는 손해보험의 보장 범위가 어디까지일 것인지 여부가 집이냐 호텔이냐에 따라 다르다는 것입니다. 소유주의 재산상의 손해에 대해 보장이 되는 것은 동일하지만, 소유주가 아니면서 해당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보장이 다릅니다. 원칙적으로 '전입'이 된 세입자에 대하여 보장이 가능하지만, 호텔의 투숙객들이 하룻밤 묵어가기 위해 전입을 할 수는 없일입니다. 호텔의 손해보험은 전입이 되지 않은 불특정 다수의 투숙객들에 대해서도 보장을 제공합니다. 이 때문에 훨씬 높은 보험료를 부담하는 것입니다. 반면, 주택으로 허가를 받아 지어진 건물이 숙박시설로 활용될 경우, 투숙객은 손해보험의 보장 대상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셈입니다.



미국의 세법(Internal Revenue Code)은 집과 호텔에 대해 비교적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데, 주택은 30일 이하의 기간으로 임대를 할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반면, 호텔은 비록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여기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편입니다. 기본적으로 장기간 임대를 하더라도 주택의 임대로 해석되지 않고 호텔에 대한 추가적인 과세 또한 면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특정 위치에 주택이나 호텔의 건축이 허용되는지 여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어쨌거나, 이러한 세법 상의 조항 때문에 Airbnb를 비롯한 주택 단기 임대차 플랫폼들은 미국 여러 시장에서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사실 이미 지어진 건물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이를 집으로 사용할 것인지, 호텔로 사용할 것인지의 문제입니다. 오랜 역사를 갖는 집과 호텔의 만유인력을 감안하자면, 어느 쪽으로 사용되더라도 이상할 것은 없지만, 법적인 측면에서 어느 쪽으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인지의 문제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혁신의 사회적 비용


최근 급속도로 힘을 발휘하는 듯 보였던 집과 호텔의 만유인력은 많은 현실적 문제들을 표면 위로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적 문제들은 집이 되려는 호텔들과 호텔이 되려는 집들에게 남겨진 숙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간 상품이 갖는 근본적인 속성 못지않게 각 공간 상품이 이제껏 구축해온 가치사슬은 생각보다 견고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사슬의 변화는 미처 예상치 못했던 다양한 파급 효과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기술적 혁신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산업이 진화해가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혁신이 가치사슬 일부분에 국한되고 전체적인 파급 효과에 충분히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종착역은 생각과 달리 아비규환일 수 있습니다.



최근 버블 붕괴의 우려를 만들어내고 있는 UberWeWork의 사례, 그리고 타다를 둘러싼 논란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혁신적 아이디어가 충분히 인정과 존중을 받아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러한 아이디어가 안정적인 비즈니스, 더 나아가 가치사슬의 혁신으로 이어지는 것은 차원이 다른, 훨씬 복잡한 일일 수 있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혁신은 단지 파괴적이기만 할 수도 있습니다. 이른바 유니콘들의 눈부신 성장을 지켜보며 도전장을 내민 수많은 스타트업들 입장에서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다만, 지금 시점에서 확실해 보이는 부분은, 혁신적 아이디어가 가치사슬의 일부분에 해당되는 것이라면, 이를 포함한 가치사슬 전체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해법이 분명하게 수반되어야 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오피스텔은 주택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업무시설로 사용되기도 하는 유연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택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숙박시설로 사용되기도 하는 서비스드 레지던스에 대한 개념이 처음 우리나라에 도입되었을 때 건축법에는 이를 명확하게 규정할 수 있는 븐류 체계가 없었고, 가장 비슷한 성격의 외스텔로 건축허가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를 두고, 호텔 업계에서의 반발이 있었는데, 결국 생활숙박시설로 입법화되면서 시장의 소란이 정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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