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뉴스를 보면, 코로나19가 마치 온 세상을 멈춰 서도록 만든 것 같습니다. 특히, 국가 간 이동이 막히면서 전 세계의 숙박업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했고, 아직은 이렇다 할 출구 또한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나마 해외여행 계획을 접어야 했던 이들이 국내 여행지들에 모여들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던 것이 위안거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비록 코로나19 이전에 비해서는 현저하게 느려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시기에도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들이 있어, 세상이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
오늘의 주제는 전 세계를 뒤덮은 코로나19의 공포 속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들에 대한 얘기입니다. 비록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기는 했지만, 2019년 7월부터 2020년 4월까지 일본의 숙박업계에는 눈길을 사로잡는 일이 있었습니다. Unizo라고 하는 생소한 로컬 호텔 체인을 인수하기 위해 Blackstone, Lone Star, Fortress 같은 세계 최대 규모의 사모펀드들이 격전을 벌였고, 이 격전에 Elliott이나 Barclays 같은 메이저 플레이어들까지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Background
Unizo는 현재 일본 전역에 Hotel Unizo, Unizo Inn, Unizo Inn Express라는 3개의 브랜드로 총 24개의 호텔, 5,422개의 객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Courtyard by Marriott, Holiday Inn, Holiday Inn Express와 비슷한 포지셔닝의 브랜드들로 판단됩니다. Unizo는, 개관 예정 호텔 8개 7,884실을 더하면, 도합 32개 호텔에 13,306실의 객실을 운영 및 개발 중인 로컬 호텔 체인입니다. 312개 호텔에 67,347실을 운영 중인 Toyoko Inn이나 457개 호텔에 65,896실을 운영 중인 APA Group과 비교하면 초라해 보이는 중규모의 로컬 호텔 브랜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Unizo의 공식 명칭은 Unizo Holdings Company Limited인데, 1959년 Mizuho 금융그룹이 출자하여 Daisho 부동산 주식회사로 출범했습니다. 그리고 1972년 Jowa 자산 주식회사로의 개명과, 2004년 Jowa Holdings Company Limited라는 이름의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을 거쳐 2009년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했습니다. 그리고, 2015년에 지금의 Unizo Holdings Company Limited로 사명을 변경했습니다.
얼마 전 닛산 자동차 CEO와 관련된 사건에서 지켜봤듯이 대부분의 일본 기업들은 미국을 포함한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진입장벽이 높습니다. 꼭 계열사가 아니더라도 같은 업종의 기업들 간에 상호출자가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한 기업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업계의 정치적 판단이 일상적으로 개입됩니다. 그동안 이러한 시스템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적대적 인수합병에 대한 방어막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흥미로운 부분은 Unizo의 경우 동종 업계 내에서의 상호출자 비율이 높지 않은 몇 안 되는 기업 중 하나였다는 것입니다. Mizuho 금융그룹은 상장과 함께 지분을 털어냈고, 격전이 벌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일본 여행사인 HIS나 미국의 사모펀드 Elliott 정도가 각각 5% 내외 수준으로 의미 있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즉,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 진입장벽이 높은 시장에 몇 안 되는 양질의 투자 기회였고, 이 때문에 지속적으로 M&A의 타깃으로 언급되어 왔었습니다.
1차 전투
의외로 이 격전의 포문을 연 것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아니라 Unizo와 협력 관계에 있던 로컬 여행사 HIS였습니다. HIS는 2019년 7월 전격적으로 Unizo 이사회에 지분 40%를 주당 3,100엔에 인수하겠다는 주식인수 의향서를 던집니다. Unizo의 주가는 그전까지 2,000엔 내외에서 답보 상태에 있었고, HIS는 이미 Unizo의 지분 4.79% 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리미엄을 더해 지분의 40%를 확보하려 했다는 것은 경영권을 확보하여 Unizo를 자신들의 사업에 유리한 방향으로 활용하고자 했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오프라인 여행사들의 기반은 온라인 여행사들이 폭풍처럼 성장하고, 에어비앤비 같은 공유 플랫폼들이 급격하게 시장을 장악해가면서 이미 무너져가고 있었습니다. 2017년 일본의 대형 여행사 '텔미클럽'이 파산 신청을 했고, 2019년에는 세계 최고령 여행사인 독일의 '토마스쿡'이 파산 신청을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직 연명하고 있는 오프라인 여행사들은 생존을 위한 활로를 분주하게 모색하는 중이었고, HIS의 경우 Unizo에서 그 해법을 찾으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건 예상치 못했던 HIS의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에 놀란 Unizo 이사회는 다급하게 몇몇 투자은행들을 통해 '백기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Unizo 이사회는 대략 16개의 제안을 받았는데, 주당 4,000엔을 제안한 소프트뱅크 계열사Fortress Investment Group의 제안을 수용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고, 8월 26일에 HIS의 제안을 거부합니다. 이와 동시에 Unizo의 주가는 4,310엔까지 뛰어오릅니다. 결국, HIS는 원대한 계획을 접고 Unizo의 지분을 시장에 처분하며 퇴각합니다. 반면, 이러한 상황에서 돈 냄새를 맡은 Elliott은 지분을 추가로 매입하여 13.14%까지 늘렸고, Barclays 또한 Elliott의 뒤를 따릅니다.
2차 전투
10월 17일 UBS는 Unizo의 적정 주가가 7,810엔이라는 보고서를 '시기적절하게' 내어 놓습니다. 들여다보면, 이 보고서의 논리가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랜 기간 제로금리 시대를 이어온 일본에서 시중의 유동자금이 가장 즐겨 찾는 행선지는 부동산이었고, 이는 부동산 가치른 지속적으로 끌어 올립니다. 그러나, 자산 가치의 상승은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주가는 NAV에 비해 점점 더 디스카운트되어 갔습니다. 즉, 일본에서 부동산을 취득하는 가장 경제적 방법은 부동산이 아닌 부동산 소유주를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경영권을 지켜줄 백기사로 생각하고 영입한 Fortress는 Unizo와 다른 생각이 달랐던 것 같습니다. 자산의 처분 권한을 독점하고자 했던 Fortress는 계약 협상 과정에서 Unizo 측과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Unizo는 결국 또 다른 제안들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Blackstone이 등판하면서, 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10월 23일 Blackstone은 지분 100%에 대하여 주당 5,000엔을 제안하며 전쟁에 뛰어듭니다. 물론 경영권을 완전히 장악해 단기간에 치열한 구조조정을 거쳐 가치를 끌어올린 뒤 이익을 실현하는 Blackstone이 Unizo 이사회 입장에서는 달가울 리 없었습니다.
장고를 거듭하던 Unizo 이사회는 Lone Star를 끌어들이고, 12월 23일 Lone Star는 주당 5,100엔을 제안하며 참전하게 됩니다. 다만, Lone Star의 포지션은 Blackstone과 확연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Lone Star는 재무적 투자자로서 Unizo가 원했던 백기사의 역할에 충실했습니다. 구체적으로, Unizo 우호 지분이 75%를 현물로 출자하고 Lone Star가 25%를 출자한 JV를 통해서였습니다. Unizo의 주가는 5,160엔까지 치솟았고, 이때 한동안 잠잠했던 Fortress가 다시 한번 판을 키웁니다. 2020년 1월 28일, 주당 5,200엔으로 수정 제안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같은 날 Blackstone이 주당 5,600엔으로 수정 제안을 하면서 Fortress는 급격하게 전의를 상실하고 퇴각을 결정합니다.
3차 전투
Unizo 이사회는 Lone Star를 더욱 부추기는 데 성공하지만, Blackstone이 선수를 치고 들어왔습니다. Lone Star가 주당 5,700엔으로 수정 제안을 하기 하루 전인 2월 6일, 주당 6,000엔을 내밀었던 것입니다. 2월 7일이 되자, Unizo 이사회에는 주당 6,000엔의 적대적 제안과 주당 5,700엔의 우호적 제안이 놓였습니다. 그리고, Blackstone이 의도했던 대로 이사회의 의견은 나뉘기 시작했습니다. 최대주주인 Elliott은 Blackstone의 제안으로 옮겨 탔고, 일본계 주주들은 여전히 Lone Star의 손을 들었습니다.
Unizo 주주들 간의 치열한 공방이 한동안 이어졌고, 2020년 4월 3일 Lone Star가 결국 주당 6,000엔으로 수정 제안을 하면서 치열했던 격전은 막을 내립니다. Elliott이 Lone Star의 수정 제안을 수용하면서 Unizo가 Lone Star, 정확하게는 Lone Star와 우호 지분 연합의 품에 안겨진 것입니다. Lone Star는 전체 지분의 23.38%를 손에 넣었고, 우호 지분 세력은 63.22%의 지분을 지켜냈습니다. 주당 2,000엔 수준에 머무르던 Unizo의 주가는 3배로 뛰었고, 이 연합이 확보한 86.60%의 지분에 대한 가치는 미화 19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사실 이 격전이 벌어지기 전까지 Unizo의 존재감은 일본을 제외하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 미국의 경제지들은 Blackstone과 Lone Star가 치열하게 경쟁했고, Blackstone의 가격을 추격하는 것이 버거워 보였던 Lone Star가 의외의 승리를 거두었다는 사실 때문에 Unizo가 과연 어떤 회사인지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기도 했습니다.
Post Mortem
그런데, 쟁쟁한 그들은 도대체 왜 '듣보잡'에 가까웠던 Unizo를 두고 그렇게도 치열했던 것일까요?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의 중요한 요인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UBS의 보고서에 언급된 내용이 가장 직접적인 요인으로 보입니다. 사실 Unizo는 32개의 호텔 외에도 일본과 미국 각지에 45개의 오피스 빌딩을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 회사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오피스들은 임대 가능 면적이 1,000평 내외로 소규모의 자산들입니다만, 다양한 시장에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자산 포트폴리오는 분명 매력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안정성의 기반 위에 올라선, 게다가 저평가된 호텔 포트폴리오는 성능 좋은 성장의 엔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다른 요인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에어비앤비가 급성장하는 동안 잔뜩 몸을 움츠린 채 상황을 주시하던 대형 사모펀드들의 숙박업 가치사슬에 대한 관점입니다. 에어비앤비가 흔들어 놓은 숙박업의 전통적 가치사슬은 그 수명을 다한 듯 보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투자자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결국 자산의 가치일 수밖에 없습니다. 호텔과 같은 상업용 부동산에서 현금흐름은 자산의 가치를 결정하는 가장 큰 부분이지만, 전부는 아닙니다. 특히, 현금흐름이 사라진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대형 사모펀드들은 앞으로의 투자 노선에 대한 결론을 내린 듯 보입니다. 그리고, 그 결론의 초점은 현금흐름 보다 자산 자체에 대한 온전한 통제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쨌거나, Unizo 이사회 입장에서는 경영권을 방어하면서 자산의 가치, 정확히는 지분 가치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붙잡았고, 실현시켰습니다. Lone Star 입장에서는, 비록 이상적이지는 않지만, 아직은 상당한 이익 실현의 잠재력을 가진 기회를 이 어려운 시기에 붙잡았으니, 손해는 아닐 것 같습니다. 일본의 숙박업계 입장에서 보자면, 비록 해외 자본의 침입이 있긴 했으나, 별다른 지원 없이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업계의 진입장벽이 지켜낸 Unizo가 기특할 것 같습니다.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상황입니다만, 아직 게임이 완전히 끝났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좀처럼 위력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코로나19가 어디까지 갈 것인지, 아직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