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진짜 아이에게 집중해서 온 시간을 투자하는 정통파 달인은 아니고 개구쟁이 아들과 쌍둥이 딸 셋을 키우게 된 덕에 꼼수 육아의 달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다둥이 가정에 대한 지원이 미약하고, 육아 자체가 너무나 버거운 일이다. 여기에 엄마가 일까지 한다는 건 많은 각오를 필요로 했다.
물론 처음부터 각오가 된 건 아니었다.
정말 결혼과 육아만큼은 직접 체험하지 않으면, 내 일로 코앞에 닥치지 않으면 실감이 나지도 않고 그 맥락을 이해하기도 어렵다. 그동안 내가 머리로 이해하고 준비했던 세상과는 너무나 달랐다.
첫째를 낳고 복귀한 뒤 깨달은 것들
첫째를 아주 늦게 낳은 편도 아니었다. 결혼 후 1년이 지나 회사 생활에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된 때에 임신하고 출산을 했다. 배는 산만큼 나왔지만 당당하게 막달 한 달 전까지 출근하고 방송도 했다.
방송이 태교라 생각했고 방송 상품을 임산부 식단 삼아 한 소쿠리에 가득 담긴 꽃게도 번쩍번쩍 들곤 했다.
어느 순간 살이 너무 쪄서 코디실에서 준비해준 옷이 맞지 않길래
‘뭐 어때. 방송 보는 어머님들이 임산부가 열심히 사네, 하겠지’라는 무대포 정신으로 내가 입고 다니던 임부복 그대로 방송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아이를 낳고 출산휴가 석 달 만에 복귀했다. 나름대로 출산계획을 잘 짰다고 생각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가족 누구 하나 너무 무거운 육아의 짐을 짊어지지 않도록.
남들은 ‘애엄마가 독하네’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의 보육 시스템을 믿고 어린이집 선생님들을 신뢰하며 복귀를 준비했다. 지금도 첫째가 갓난아기일 때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알림장을 보관하고 있는데, 지금 보면 아이와 일 사이에서 적응하려 했던 당시가 생각난다.
문제는 내 몸에 있었다. 그동안 살면서 한 번도 없었던 알레르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조금만 피곤하면 정신은 멀쩡해도 온몸에 두드러기가 났다. 병원을 가봐도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다.
다만 면역력이 떨어져서일 수 있다는 소견만 들을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알레르기나 두드러기는 나타나는 현상을 진정시킬 수는 있어도 원인을 알기는 어렵다고 한다.
아이가 칭얼거려서 밤새 못 자거나 새벽 방송을 위해 서너 시간 자고 나올 때면 더 심했다.
어디에서 어떻게 두드러기가 날지 전조증상도 없다 보니 어느 날에는 멀쩡히 새벽 방송을 하고 아침밥을 먹는데 앞자리에 앉은 PD가 밥 먹는 사이에 퉁퉁 부어 버린 내 눈을 보고 깜짝 놀라는 거였다.
거울을 보니 그 사이 눈이 권투 선수 마냥 부어 있었다. 물론 미친듯이 자고 나니 싹 가라앉았지만.
5년 만에 가진 둘째는 쌍둥이 딸들이었다. 쌍둥이라 조산 위험과 임신 기간 내내 싸워야 했고 심지어 임신성 당뇨를 겪으면서 먹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임신이라는 전공의 모든 학과 수업은 다 듣는 기분이었다.
배우자를 육아 동반자로 만드는 법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남편이 육아의 달인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사실 결혼 전만 하더라도 남편은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남자였다.
그리고 첫째를 낳았을 때도 육아 초보생이라 (대부분 남편이 그렇겠지만) 실수 연발이었다.
특히 아빠들은 딸바보는 있어도 동성의 아들에게는 좀 혹독한 편이다. 훈육 하나를 하더라도 거칠었다.
자신도 그렇게 컸다는 항변 아닌 항변을 하면서 아이와 늘 기싸움을 했다.
울음이 가득한 집에서 온 가족이 지쳐갔다.
아이와의 싸움은 늘 부부싸움으로 번지곤 했다.
훈육 문제는 ‘그래서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라는 대주제로 번져 100분 토론이 되곤 했다.
답은 없었다. 어차피 이야기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육아이고 우리 계획대로 크지 않는 것이 아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치열한 기간에 남는 것은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이야기하고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면서 진짜 부부가 되고 진짜 부모가 됐다.
남편과의 싸움을 두려워하지 말자.
물론 부드럽고 교양 있게 대화로 풀 수 있으면 더 좋다.
하지만 나처럼 감정이 넘쳐서 이야기하다 보면 품위는 던져버리고 치졸한 말싸움으로 끝나더라도 괜찮다.
치졸한 말싸움을 많이 해봐서 아는데 이것조차도 하다 하다 지치면 나중엔 서로를 연민하게 된다.
그리고 육아라는 주제는 늘 비슷하게 반복되기 마련이라 점차 그 강도는 약해지고 오히려 우리는 결국 이 주제를 함께 헤쳐나가야 할 동지라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이야기하지 않으면 감정의 골은 풀어지지 않고 서로에 대한 이해는 멀어진다.
대화하면 공유하는 부분은 많아지고 말싸움의 빈자리는 유머가 채우게 된다.
단, 서로를 비하하는 말은 하지 않는다. 우리 부부는 서로 존댓말을 쓰기 때문에 더 도움이 됐다.
대화가 상대를 다른 사람으로 바꿔주진 않는다.
대화한다고 해서 서로가 다른 인격을 형성하게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대화가 육아를 바꿀 수 있고, 대화를 통해 남편을 육아의 주체자로 끌어들일 수 있다.
단, 이 세 가지는 반드시 지키자.
첫째, 서로를 비하하는 말은 절대 하지 말자. 비하할 상대와 결혼한 거라면 더 비참하다.
둘째, 우리는 결국 우리 아이를 위해서 이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을 잊지 말자.
셋째, 행동으로 나의 주장이 옳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문제라면 굳이 길게 말할 필요 없다.
어차피 그는 시간이 지난 뒤 내가 옳았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워킹맘을 힘들게 하는 건 너무나 많다.
일단 아이는 너무나 사랑스럽지만, 엄마가 쉬운 꽃길을 가게 두지 않는다.
주변의 엄마들은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어떨 때는 아군이 되기도 했다가 어떨 때는 적군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회사에 가면 이미 아이를 어느 정도 다 키운 엄마들,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쯤 된 여자상사나 선배들은 마치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한참 고군분투하는 엄마들에게 너무나 쉽게
‘요즘 워킹맘은 훨씬 편해졌지’,
‘너만 힘들어? 다 그런 거야’
라는 말과 함께 상처를 주기도 한다.
‘우리 와이프는 안 그러던데?’라며
일과 육아를 헤쳐나가는 워킹맘에게 돌을 던지는 남성 동료도 있다.
육아의 고충을 알면서도 회식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수군거리거나 자신의 아내는 안쓰럽게 여기면서 직장의 남의 와이프에게는 엄격한 동료 사이에서 견뎌내려면 적어도 나의 남편만큼은 내 편이어야 한다.
남편을 내 편으로 만들지 않고서는 일과 육아의 양립은 힘들다.
수많은 난관은 워킹맘을 물리적으로 힘들게 하지만, 그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끊임없이 워킹맘에게 죄책감을 가지게 한다는 점이다. 밸런스가 일 쪽으로 기울면 ‘아이를 내팽개친 엄마’가 되고, 밸런스가 육아 쪽으로 기울면 ‘엄마 욕심에 직장 다니면서 자기 몫도 못해내고 육아 핑계를 대는 프로답지 못한 사람’이 된다. 어느 쪽엔가는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만든다.
일도 잘하고 아이도 잘 키우고 싶은 욕심이 때로는 허무해지기도 하고, 가끔은 어느 쪽에서도 제대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에 회색분자가 된 것처럼 슬퍼지기도 한다.
그럴 때 나는 남편에게 ‘당장 나를 칭찬해’라고 이야기한다.
남편에게는 ‘와이프 기 살리기’ 칭찬 리스트가 있다.
별거 아니더라도 나의 장점을 몇 가지 꼽아서 진심의 리액션으로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나 잘하고 있지?’라는 질문에 평소보다 더 크게 동의해주고, 별거 아닌 것도 크게 칭찬해준다.
칭찬을 듣다 보면 그 당시 속상했던 마음도 잦아들고 나와 우리 가족에게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마음대로 지껄인 이야기에 그렇게 휘둘릴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그들은 기억도 못함)
모두를 만족시키려고 애쓰기보다는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매겨놓고 그 우선순위에 집중하자.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칭찬에는 피드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칭찬을 받고 내 마음의 평온이 온 뒤에는 반드시 남편에게도 똑같이 칭찬하기를 시행한다. 언제나 잊지 마라.
나만큼 나의 배우자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늘 강해 보이는 남편에게도 칭찬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