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이와 공연을 보고 밥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아이가 전에 갔던 뷔페를 가고 싶다고 하길래 기억을 더듬어 아, 빕스? 라고 하며 데려갔다. 오랜만에 빕스에서 포식할 생각에 둘다 들떠 부푼 가슴을 안고 도착했을 땐 대기팀 수는 17팀, 예상 대기시간은 90분이었다.
"어떡할까? 그냥 다른 데 갈까?"
"아니, 기다릴래."
잔뜩 시무룩한 얼굴을 하면서도 끝내 기다리겠다는 아이의 말과 도대체 식탐이란 게 없는 아이가 모처럼 저리도 긴 대기 줄을 기다리겠다는 것이 신기해 그냥 기다려 보기로 했다.
아이는 '주변 구경하면 되지!' 하면서 나를 잡아끌고 근처 의류매장들을 하나둘 돌기 시작했다. 평소에 아이랑 쇼핑이라도 가면 아이는 이것저것 사달라고 조를 것 같고 나는 거의 다 안 된다고 할텐데 미안해서 왠만하면 아이와 쇼핑은 잘 하지 않는다. 아이가 아빠를 만나는 날 친할머니께서 쇼핑몰에 종종 데려가 사주시는 걸 알고 있기에 나는 꼭 필요하거나 정말 사달라고 하는 옷들만을 인터넷으로 구매해 주는 편이었다.
매번 아이다운 옷, 어른이 보기에 고급스러운 옷을 권하시고 사주시는 할머니와 쇼핑해오다 엄마와 단둘이 아이쇼핑을 하려니 너무 색다르고 즐거운 모양이다. 이 옷 저 옷 나에게 권하기도 하고, 자기에게도 옷 좀 추천해달라고 하며 아이는 신나서 이 매장 저 매장을 활보했다.
아무리 돌고 돌아도 시간은 잘 가지 않아 불가피하게 쇼핑을 오랫동안 자세히 하게 되었고, 마지막으로 갔던 매장은 '자라' 매장이었다. 아이는 그곳에서 유아 섹션을 발견하고는 이것도 예쁘다, 저것도 예쁘다를 외치며 눈이 반짝반짝해서 각양각색의 다채로운 의상들을 둘러보기 바빴다.
그러다 아이가 검은색 후드티 하나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얼마 전 아이가 후드티 이야기를 했는데 집에 지퍼형 후드가 있어서 그걸 입으라고 했더니 '그건 후드티가 아니잖아...' 라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마음은 사주고 싶기도 했지만 그리 열렬히 원하는줄도 모르고 일단 오늘은 빕스에서 거하게 저녁을 먹는 것으로 만족했으면 해서 예쁘다는 말에 맞장구만 쳐주고 모른 척 매장을 나왔다. 아이는 후드티와 그것과 세트로 입으면 좋을 치마가 예쁘단 말을 한두 번 더 하긴 했으나 조르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뷔페에서 즐겁게 식사하고 온 며칠 뒤, 아이는 후드티 이야기를 또 꺼냈다. 그러다 갑자기 '산타할아버지한테 사달라고 할 거야.' 란다. 안 그래도 미안해서 그 옷을 몰래 사서 크리스마스 전날 밤 산타가 갖다 놓은 척 놔둬야 하나,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다시 가서 사줘야 하나 내적 갈등을 한창 겪고 있던 찰나, 아이가 그렇게 시험문제 족집게 과외하듯 딱 정해주니 더 이상 고민할 여지도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오늘, 영어 스터디를 마치고 바로 자라 매장으로 날아갔다. 아이가 마음에 들어 했던 후드티 한 장과, 예쁘다고 했던 가죽 치마 하나. 아침과 점심도 건너뛴 채 다녀오는 길인데도 아이가 좋아할 생각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진짜로 콧노래를 부르진 않았다.)
돌아오는 크리스마스, 아이와 예쁘게 장식한 예쁜 트리 밑에 곱게 놓아두어야지. 아니, 못 참고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미리 종이봉투를 덥석 내밀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얼굴에 환하게 번질 미소가 빨리 보고 싶어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