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겅블리 May 28. 2024

혼자 먹기 끝판왕, 곱창집: ESC :

[매거진 esc ]혼자 어디까지 가봤니 :ESC :특화섹션

3년 차 '야매' 싱글녀 공세현 씨가 30대 여자의 혼자 생존기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누군가는 성공 자서전 첫 문장에서 홀로 비행기를 타고 낯선 타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그 막막하지만 당찬 도전의 순간을 영광스럽게 회상할지 모른다. 그러나 서른둘, 혼자 사는 여자인 나는 혼자 곱창집에 들어가서 실컷 먹고 싶은 만큼 시켜먹고 온 날의 소회를 한동안 잊히지 않을 도전의 순간으로 기록하고 싶다.


첫 번째 ‘나 홀로 외식’은 야근 끝 귀갓길에 미치도록 먹고 싶었던 감자탕을 애써 24시간 해장국 한 그릇으로 대체한 날이었다. 아저씨들이 내 쪽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 같았고, 음식을 가져다주는 아줌마가 측은히 여기는 것 같기도 했지만 인생은 최면이야, 레드썬!


그러던 어느 날 꼭 집어 곱창이 당기는 날이 찾아왔다. 고소하고 풍미 좋은 곱과 기름에 잘 볶아진 무한 리필 부추! 혼자서는 먹을 수 없는 음식이라 생각하니까 갑자기 곱창은 구체적으로 내 마음을 지글지글 볶았다. 한 번뿐인 인생, 내가 오늘, 그것도 지금 당장 너무 먹고 싶은 것을 못 먹고 참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결국 그날 나는 혼자 곱창을 구웠고, 그 이후로 서너 차례 더 나 홀로 곱창 외식을 즐겼다.
이젠 제법 대범해졌지만 늘 “몇 분이세요?”라고 묻고 “혼자요?”라고 되묻는 식당 아주머니의 표정과 그 어투의 리추얼은 변함이 없다. 그 몇 초간의 야릇한 느낌을 견디는 것이 첫 번째 관문이다.



가장 견디기 괴롭고 외로운 시퀀스는 바로 테이블에 앉아서 곱창이 구워지기를 기다리는 시간이다. 친구들에게 말도 걸어보고 웹툰도 뒤적뒤적하느라 스마트폰만 뚫어져라 들여다본다.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아, 당당하게 행동하라’고 마음속으로 외쳐본다. 하지만 실제로 옆 테이블에서 “어머, 저 여자 혼자 와서 곱창 먹는다”는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다. 여어, 날 그냥 임산부라고 생각해줘요.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않나요.


끝으로 아뿔싸, 밥을 볶을까 말까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밥 한 공기는 안 볶아주는 집도 있고, 밥까지 볶아 먹을 셈이냐 하고 짐짓 놀라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아주머니의 논버벌 랭귀지를 강한 정신력으로 애써 외면해야 한다. 옆 테이블에서 자작하게 볶아먹는 볶음밥 내음을 코끝으로 접하고 볶음밥 없이는 절대 이 만찬이 완성될 수 없다는 확신이 설 때 아주머니를 부른다.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첫 한 점의 그 황홀함, 그리고 마지막 한 톨까지 남에게 양보하지 않아도 되고 테이블 위의 모든 음식들이 오롯이 나만을 위한 것이란 사실은 이제까지의 이 모든 부정적 프로세스를 상쇄시킬 만큼 매력적이다. 난 이제 뭐든지 할 수 있는 여자고, 앞으로 홀로 곱창을 곱씹어 보지 않은 자와는 인생을 논하지 않으리. 하지만 한 번 간 곱창집을 두 번 방문해보진 못했다. 혹시 날 알아볼까 봐.


공세현 씨제이(CJ) 오쇼핑 프로듀서


<한겨레 인기기사>
2013-05-29


원문보기:
http://m.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589602.html#csidx77c2b1bc6fb264ab9fe8c0a1a909b3a

작가의 이전글 그녀는 젠장, 예뻤다 : ESC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