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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은 작가 imkylim Aug 23. 2024

자화상을 그려봅니다


  어반스케치에서 자화상을 그릴 일은 거의 없다. 그래도 나를 그리곤 한다. 사진 잘 찍는 누군가가 포착한 내 모습이 자기애를 자극하거나 여행을 다녀와 기록하고 싶을 때다. 평소처럼 부담 없이 쓱쓱. 닮지 않았으면 그냥 웃고 만다. 다른 사람들을 전혀 닮지 않게 그린 것에 대한 면죄부가 되기도 한다.


같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겠지만, 모두 나를 그린 것이다.


 전시회에 내걸 자화상은 달라야 했다. 최소한 누굴 그린 거냐는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똑같게 그릴 자신은 없으니 보는 사람에게 즐거움이라도 주고 싶었다. 닮은 것 같아, 개성도 있고 재밌네. 그 정도면 아주 만족스러울 터였다. 문득 기성쏭의 스티커가 생각났다. 어반스케치계의 유명인이기도 하지만 기성쏭의 스티커를 보면 일단 갖고 싶어 지는데, 그건 캐리커처가 기성쏭과 닮았을 뿐 아니라 유쾌해서다.

첨부를 허락해 주신 기성쏭께 감사 ^^ 

  그럼 답은 나왔다. 캐리커처. 유튜브로 캐리커처 그리기를 찾아봤다. 내가 착해 보인다는 말을 듣는 편인데 귀엽게 그리는 방법이 나와 있었다. 보통 귀여우면 착해 보이지, 싶어서 시청했다. 눈, 가로는 살짝 줄이고 세로는 키운다. 코, 살짝 줄인다……. 한마디로 아이 얼굴처럼 그리라는 거였다. 심지어 모델은 똑같게 그려도 귀여울 아이였다. 내 얼굴에 시도하기는 아무래도 민망했다. 다른 자료를 더 찾았다. 인물의 특징을 과장해서 그리라고 했다. 나의 웃는 입, 웃는 눈, 보조개, 각진 턱을 과장해 봤다. 개성이 살아나기는커녕 괴기스러웠다. 쉽게 따라 하는, 이라는 제목이 붙었을지라도 캐리커처 역시 아무나 금방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깨달음만 얻었다.

 

  어쩔 수 없이 닮게라도 그리기로 했다. 실력을 연마하면 좋겠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았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 묘수를 떠올렸다. 사진을 인쇄한 뒤 테두리 따라 그리기. 자꾸만 빗나가는 선을 붙잡아가며 스케치를 마쳤다. 마침 아들이 다가오기에 엄마를 그린 건데 어떠냐고 물었다. 너무 인자하게 생겼다는 대답이 즉각 돌아왔다. 이런 엄마라면 잔소리도 안 하고 심술도 안 부릴 것 같다나? 아들을 한번 흘겨본 다음 스케치를 쳐다봤다. 반박할 말이 없었다. 

인자한 버전

   그림 잘 그리는 언니에게 보고 그린 사진과 그림을 찍어 보내며 조언을 구했다. 나와 닮게 하려면 어딜 고치면 되겠느냐고. 입매를 더 야무지게 그려서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을 추가하면 좋겠다고 했다. 그 말을 염두에 두고 다시금 따라 그렸다. 눈도 조금 키웠다. 장난꾸러기는 상대의 반응을 살피느라 눈을 크게 뜨곤 하니까. 

  완성된 자화상을 정기 모임에 가지고 나갔다. 어떠냐고 물었다. 회원들은 와르르 웃었다. 너무 예쁘잖아, 공주네. 실물보다 못하다고 말해달라 부탁했으나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처음에 내가 원한 건 개성 있는 캐리커쳐였는데 결국은 공주를 그린 꼴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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