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괜찮은 작가 imkylim Sep 27. 2024

전시회 풍경

   전시회 오픈 전, 우리 어반처스는 전시회장인 관아갤러리 인근에서 야외 스케치를 했다. 갤러리가 열려있기도 하거니와 야외 스케치를 공지해서인지 간혹 찾아오는 관람객이 있었다. 나는 관아공원에 자리를 잡았다. 많은 사람이 내 근처를 다녀갔다.


  처음엔 우유 정기 배달을 종용한 아저씨. 우유를 하나 열어주면서까지 마셔보라고 했다. 어떠냐기에 고소하다고 했다. 아저씨는 말릴 틈도 없이 잽싸게 우유를 열 개도 넘게 가져왔다. 가족이 몇 명인지 물으며 실적을 채워야 한댔다. 간절한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도로 가져가시라며 거절했다. 그때 내 위치를 묻는 전화가 와서 부러 바쁜 척도 곁들였다. 아저씨, 강매는 싫어요. 때마침 전화해 준 언니, 정말 고마워요. 


  잠시 뒤에는 아이들이 공원으로 뛰어 들어왔다. 나름 근엄하게 이리 오너라, 하고 외치며 노는 모습이 귀여웠다. 곧이어 비눗방울 놀이를 시작하기에 그리던 그림을 마치면 그 모습을 그리려 했다. 그런데 빗방울이 조금 떨어지자 인솔 교사가 급히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갔다. 비는 올 듯 말 듯 하다 다시금 맑아졌지만 그럴 줄은 몰랐을 터였다.


  조용한 가운데 그림에 집중하려는데 한 사람이 내 앞을 지나갔다. 다른 어반처스의 시연을 봤다며 내가 그리는 모습도 보고 싶다고 했다. 그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그림을 그렸다. 언제 나타났는지 바로 옆 벤치의 부부도 관심을 보였다. 그분들도 갤러리에 다녀왔다고 했다. 내 이름을 물으며 도록에서 찾기도 했다. 또 한 분도 반대쪽 벤치에 앉아 말을 좀 붙이더니 내 옆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분은 결국 우리 모임에 합류했다.

관아공원에서 드로잉


    전시회를 시작하고 북적이던 관람객이 어느 정도 빠진 뒤, 몇몇이 둘러앉아 저널 북을 들춰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여러 면에서 저널 북이 좋다. 일단 도톰한 수채화 용지 한쪽만 쓰면 아깝지만 이상하게도 뒷면에는 선뜻 그려지지 않는다. 반면 저널 북은 자연스럽게 앞뒤에 다 그린다. 알뜰하게 종이를 사용하는 셈이다. 묶여 있으니 대강 보관하다 그림 한두 장 없어질 염려도 없다. 당연히 엉망인 그림도 있지만 온전한 기록이라는 면에서 큰 장점이다.


  그런데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분이 꽤 많다는 걸 깨달았다. 저널 북은 그림을 망쳤을 때 뜯어낼 수가 없어 마음이 편치 않다고 했다. 그 순간 그림을 걸 때의 상황이 이해되었다. 정제된 그림만 골라서 액자에 담아 보여주고 싶을 수도 있는 거였다. 아니, 오히려 그게 다수의 생각이었다. 우리 모임에는 정통 수채화, 한국화, 서예, 캘리그래피, 천 아트 등 어반 스케치 말고 다른 미술 활동에도 적극적인 분들이 많다. 그런 분들이 나처럼 가벼운 마음이기는 어려울지도 몰랐다. 더군다나 그런 분들 덕에 관람객은 낙서 같은 내 그림 말고 수준 높은 그림도 감상할 수 있다. 전시회 전날 잠시 화났던 마음은 모두 누그러졌다. 


이전 26화 무리 없이 무리 속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