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괜찮은 작가 imkylim Sep 30. 2024

50일간의 창작 프로젝트를 마치며

  그림 그리느라 정신을 쏟고 나면 고여있던 근심이 희석되고, 주변을 바라보는 관찰력도 생긴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이번에 꾸준히 진행하며 새삼 느낀 건 별것 아닌 듯한 일상도 각별하더라는 점이다. 게다가 50일간의 창작 프로젝트와 함께여서 더욱 특별했다.


  전시회 동안 내 저널 북을 들춰보는 사람들을 가만히 관찰했다. 대강 넘기다가 마는 사람도 있었고 한 장 한 장 천천히 넘기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끄적여 놓은 글을 읽으며 미소 짓는 사람을 보면 서둔 만큼 서툴더라도 두 권 꽉 채우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물론 뭐 이런 별것도 아닌 걸 전시하나, 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내 기록을 전시했으니 어떻게 보든 그건 그들의 마음, 좋게 봐주었다면 황송하고 감사할 뿐이다. 


  이번 전시회 동안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그림을 그려왔는지였다. 미술을 전공한 분들은 넘지 못할 벽처럼 느껴지니까 딱 봐도 비전공자인 내 경우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주절주절 설명하긴 뭣해서 조금씩 이것저것 건드려봤고 이 모임에서 활동한 건 이 년이 되어간다는 정도로 대답했었다. 이번 기회에 내 미술 경험을 한 번 정리해 봐야겠다.


  아무래도 30대 중반까지는 학업과 직장 생활, 육아 등으로 취미활동을 할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화실을 발견했다. 마음이 참 헛헛한 날이었는데 무작정 들어가서 한 달을 등록했다. 선생님은 자유롭게 그리는 분위기를 조성했었다. 회원의 그림에 터치를 거의 하지 않았다. 그게 편하고 좋았다. 멋진 작업 장소를 제공해 주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아무튼 거기에서 소묘를 조금 배웠고 유화도 그렸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씩, 2013년 여름에 미국 가기 전 그리고 다녀와서도 이 년 정도 다녔으니까 합한다면 삼 년 정도 다녔으려나?


  수채화는 2014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 머물 적에 두 달 정도 배웠다. SugarHouse라는 동네에 놀러 갔다가 발견한 Blick art materials라는 매장 위에 그림을 배울 수 있는 화실이 있었다. KFC 할아버지와 닮은 분이 선생님이었다. 거기서 배운 것 중 하나는 숨 쉴 구멍. 꼭 빈틈을 남기며 채색하기에 왜 그러는지 물었더니 잠시 나를 보며 미소를 짓고는 그렇게 답해줬었다. 툭툭 색을 얹으며 이게 수채화의 맛이지, 그런 말도 했었다. 어쩐지 그 말이 멋져서 크게 고개를 끄덕였었다. 2018년엔 캘리그래피를 두 달 정도 배웠다. 연습을 소홀히 한 탓에 글씨는 영 늘지 않았다. 그러고는 한동안 그리지 않다가 2022년 어반 스케쳐스 충주 첫 번째 전시회를 구경한 뒤 발가락 끝만 담근 채 머뭇거렸다. 어반 스케치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건 아마도 2023년 봄부터였던 듯하다. 그땐 지금보다 그림이 훨씬 엉성했다.


    결국 나도 꽤 미술에 발을 담갔다 떼었다는 반복한 셈인데, 꾸준히만 하면 실력은 느는 듯하다. 그래서 그림을 못 그린다며 머뭇거리는 분들에게 말하고 싶다. 물감이 종이에 스며드는 데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그리기에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어제의 나와 비교한다면, 확실히 그림이 그럴싸해지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거라고.


  사실 그림 실력 때문에 망설이는 분들이 많이 이런 말을 썼지만, 얼마나 잘 그리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잘 그리고 못 그리고를 떠나 일상을 자신의 시선으로 기록한다는 점이 더 가치있게 느껴진다. 더군다나 삶에 그럴싸한 낭만 한 숟가락 추가하는데 어반스케치는 꽤 괜찮다. 그럼 해 볼 만한 게 아닐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