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오픈 전, 우리 어반처스는 전시회장인 관아갤러리 인근에서 야외 스케치를 했다. 갤러리가 열려있기도 하거니와 야외 스케치를 공지해서인지 간혹 찾아오는 관람객이 있었다. 나는 관아공원에 자리를 잡았다. 많은 사람이 내 근처를 다녀갔다.
처음엔 우유 정기 배달을 종용한 아저씨. 우유를 하나 열어주면서까지 마셔보라고 했다. 어떠냐기에 고소하다고 했다. 아저씨는 말릴 틈도 없이 잽싸게 우유를 열 개도 넘게 가져왔다. 사는 곳과 가족이 몇 명인지를 물었다. 실적을 채워야 한댔다. 간절한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도로 가져가시라며 거절했다. 그때 내 위치를 묻는 전화가 와서 부러 바쁜 척도 곁들였다. 아저씨, 강매는 싫어요. 때마침 전화해 준 언니, 정말 고마워요.
잠시 뒤에는 아이들이 공원으로 뛰어 들어왔다. 나름 근엄하게 이리 오너라, 하고 외치며 노는 모습이 귀여웠다. 곧이어 비눗방울 놀이를 시작하기에 그리던 그림을 마치면 그 모습을 그리려 했다. 그런데 빗방울이 조금 떨어지자 인솔 교사가 급히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갔다. 비는 올 듯 말 듯 하다 다시금 맑아졌지만 그럴 줄은 몰랐을 터였다.
조용한 가운데 그림에 집중하려는데 한 사람이 내 앞을 지나갔다. 다른 어반처스의 시연을 봤다며 내가 그리는 모습도 보고 싶다고 했다. 그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그림을 그렸다. 언제 나타났는지 바로 옆 벤치의 부부도 관심을 보였다. 그분들도 갤러리에 다녀왔다고 했다. 내 이름을 물으며 도록에서 찾기도 했다. 또 한 분도 반대쪽 벤치에 앉아 말을 좀 붙이더니 내 옆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분은 결국 우리 모임에 합류했다.
그런데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분이 꽤 많다는 걸 깨달았다. 저널 북은 그림을 망쳤을 때 뜯어낼 수가 없어 마음이 편치 않다고 했다. 그 순간 그림을 걸 때의 상황이 이해되었다. 정제된 그림만 골라서 액자에 담아 보여주고 싶을 수도 있는 거였다. 아니, 오히려 그게 다수의 생각이었다. 우리 모임에는 정통 수채화, 한국화, 서예, 캘리그래피, 천 아트 등 어반 스케치 말고 다른 미술 활동에도 적극적인 분들이 많다. 그런 분들이 나처럼 가벼운 마음이기는 어려울지도 몰랐다. 더군다나 그런 분들 덕에 관람객은 낙서 같은 내 그림 말고 수준 높은 그림도 감상할 수 있다. 전시회 전날 잠시 화났던 마음은 모두 누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