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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은 작가 imkylim Sep 25. 2024

무리 없이 무리 속으로

  

  전시회 오픈을 앞두고 늦은 오후부터 밤까지 갤러리에 그림을 걸었다. 각자 배정된 자리에 액자 그림과 저널 북을 걸고 아코디언 북은 띠지처럼 붙이기로 했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계획대로 된 건 한쪽에는 인물화를 모아놓고, 또 다른 한쪽에는 낱장 그림을 모은 정도. 


  액자, 그게 참 어려웠다. 애초에 이번 전시회에서는 그림을 액자에 넣든 안 넣든 자유라고 했다. 나는 안 넣으려 했었다. 액자에 그림을 넣으면 어쩐지 있어 보이지만 설렁설렁 그린 그림을 액자에 넣기 민망해서였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나 빼고는 모두 액자를 쓰는 분위기였다. 혼자 액자를 하지 않는 무리수를 둘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내키지 않는 일에 돈까지 들이고 싶지도 않았다. 작년에 썼던 액자에 있던 그림을 빼고 그 자리에 새 그림 두 장을 끼웠다. 작년에 다섯 개 걸었기에 남는 액자는 있었지만 두 개만 걸기로 마음먹었다. 저널 북과 아코디언 북도 있어서 내 자리를 채우는 데는 무리가 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맙소사, 다른 회원들은 작년보다 액자에 더 공을 들였다. 액자만으로도 개인당 면적을 채웠고 심지어 넘기기도 했다. 결국 아코디언 북을 모아 붙이고, 저널 북도 모아서 진열할 테이블을 마련하게 되었다. 나는 졸지에 준비를 너무 안 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내 자리에 딸랑 액자 두 개만 거는 상황이 된 거니까. 고민스러웠다. 까짓거 낱장 그림을 남아도는 작년 액자에 넣어서 걸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당초 계획과 달라진 게 언짢았다. 내게 왜 액자 두 개밖에 없냐는 질문에 투덜거렸다. 회원들이 살짝 당황하는 게 느껴졌다. 자리가 너무 비니 내 저널 북은 내 자리에 거는 게 좋겠다고도 했다. 나만 저널 북을 벽에 거는 것도 어쩐지 내키지 않았지만 일단 머리를 식히고 싶었다. 필요한 물품도 살 겸 자리를 피했다. 다녀오고 나니 몇 분이 내 저널 북 고정 작업을 성심껏 도와줬다. 툴툴댔던 게 조금 미안했다.


  돌이켜보면 일부는 나처럼 전시 경험이 많지 않고, 전시 경험이 있더라도 어반 전시는 또 달라서 의견이 설왕설래, 확정인 듯 미확정으로 진행된 면이 있었다. 그림을 걸다가 변수가 생길 수도 있었다. 그런 점까지 세심히 고려하지 않은 건 내 불찰이었다. 아무튼 내 저널 북만 벽에 걸렸다. 그 정도는 괜찮다며 마음을 편하게 먹어본다. 아무려면 어떠한가.


  

  

가운데 아코디언 북이 내 것. 올 7월 초의 일본 북해도 여행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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