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오픈을 앞두고 늦은 오후부터 밤까지 갤러리에 그림을 걸었다. 각자 배정된 자리에 액자 그림과 저널 북을 걸고 아코디언 북은 띠지처럼 붙이기로 했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계획대로 된 건 한쪽에는 인물화를 모아놓고, 또 다른 한쪽에는 낱장 그림을 모은 정도.
액자, 그게 참 어려웠다. 애초에 이번 전시회에서는 그림을 액자에 넣든 안 넣든 자유라고 했다. 나는 안 넣으려 했었다. 액자에 그림을 넣으면 어쩐지 있어 보이지만 설렁설렁 그린 그림을 액자에 넣기 민망해서였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나 빼고는 모두 액자를 쓰는 분위기였다. 혼자 액자를 하지 않는 무리수를 둘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내키지 않는 일에 돈까지 들이고 싶지도 않았다. 작년에 썼던 액자에 있던 그림을 빼고 그 자리에 새 그림 두 장을 끼웠다. 작년에 다섯 개 걸었기에 남는 액자는 있었지만 두 개만 걸기로 마음먹었다. 저널 북과 아코디언 북도 있어서 내 자리를 채우는 데는 무리가 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맙소사, 다른 회원들은 작년보다 액자에 더 공을 들였다. 액자만으로도 개인당 면적을 채웠고 심지어 넘기기도 했다. 결국 아코디언 북을 모아 붙이고, 저널 북도 모아서 진열할 테이블을 마련하게 되었다. 나는 졸지에 준비를 너무 안 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내 자리에 딸랑 액자 두 개만 거는 상황이 된 거니까. 고민스러웠다. 까짓거 낱장 그림을 남아도는 작년 액자에 넣어서 걸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당초 계획과 달라진 게 언짢았다. 내게 왜 액자 두 개밖에 없냐는 질문에 투덜거렸다. 회원들이 살짝 당황하는 게 느껴졌다. 자리가 너무 비니 내 저널 북은 내 자리에 거는 게 좋겠다고도 했다. 나만 저널 북을 벽에 거는 것도 어쩐지 내키지 않았지만 일단 머리를 식히고 싶었다. 필요한 물품도 살 겸 자리를 피했다. 다녀오고 나니 몇 분이 내 저널 북 고정 작업을 성심껏 도와줬다. 툴툴댔던 게 조금 미안했다.
돌이켜보면 일부는 나처럼 전시 경험이 많지 않고, 전시 경험이 있더라도 어반 전시는 또 달라서 의견이 설왕설래, 확정인 듯 미확정으로 진행된 면이 있었다. 그림을 걸다가 변수가 생길 수도 있었다. 그런 점까지 세심히 고려하지 않은 건 내 불찰이었다. 아무튼 내 저널 북만 벽에 걸렸다. 그 정도는 괜찮다며 마음을 편하게 먹어본다. 아무려면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