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괜찮은 작가 imkylim Sep 23. 2024

지난 일 년간의 카페

  2023년 전시회 이후 그림 그리러 갔던 카페를 정리해 봤다. 총 스물 한곳. 지난 일 년이 내가 살아온 중 카페에 가장 많이 방문했던 기간인 듯하다.


  춥거나 더운 날씨, 황사가 심한 날에는 카페가 제격이다. 작년 겨울에는 아예 탐방인 양 정기 모임을 카페에서 했다. 봄이 되면서 야외에서도 그렸지만 3월 중순 그림에 남겨둔 메모를 보니 ‘분명 봄이건만 아직은 춥구나’하고 적어놨다. 두세 달 그러다가 6월 말부터 이번 전시 준비까지 내내 카페에 다녔다. 날씨를 봐서 그릴 자리를 선택할 수 있게 보통은 야외 공간까지 마련된 대형 카페를 찾았는데 7월부터는 너무 더워서 카페 실내에서만 그렸다. 카페 안 정경 혹은 카페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여름이 길고 가혹해진 한국에서 어반스케치를 하려면 카페와 친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돌이켜보면 재미난 일도 많았다. 카페에 있으면 의도치 않게 다른 테이블의 말소리가 들릴 때가 있는데, 마침 포교하는 사람이 앉은 테이블의 목소리가 컸다. 그때 내가 그리던 눈앞의 꽃기린 꽃말이 고난의 깊이를 간직하다(예수님의 꽃)라서 그 우연이 신기했던 적이 있다. 또한 상대의 이야기에 맞장구가 넘실대는 건 맞는데 가만히 들어보면 자기가 하고 싶은 말로 화제를 돌리는 데 여념이 없는 대화라서 피식 웃은 적도 있다. 곁에 다가와 말을 건네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 모임에 들어오려면 무슨 조건이라도 있는지 궁금해하기도 하고 자신은 어떤 그림을 그린다며 자랑하기도 했다.


  방문이 잦아지자 손님이긴 한데 살짝 눈치 보는 입장 인지라 카페에서 지켜야 할 예절도 생각했었다. 길게는 세 시간까지도 머무르니 음료만 시키는 게 아니라 디저트도 시킨다든가, 제각각 흩어지기보다는 두세 그룹 정도로 모여 앉고 그림 그리는 용구를 넓게 늘어놓지 않으며 그리다가 나오는 자질구레한 쓰레기와 붓을 빨았던 물은 도로 챙겨 온다든가 그런 예의. 또한 그린 그림은 SNS에 올려 카페 홍보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게 했다.


  대개의 카페는 우리의 방문에 좋은지 싫은지 티 내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까지 있을 거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빈자리가 꽤 보였는데도 빨리 자리를 비워주었으면 하는 느낌이었다. 우리로 인해 돌아가는 손님이 있었거나, 혹시 테이블을 더럽힐지 우려되어 그랬을지도 몰랐다. 내가 참석하지 않았을 때의 일이지만, 아예 입장을 거부당한 적도 있다고 했다. 반면 우리에게 수박을 서비스로 주신 카페 사장님, 쿠키와 텀블러를 선물로 주며 오랫동안 그리고 가라던 사장님, 그려줘서 고맙다고 보는 사람까지 힐링되는 기분이라던 사장님도 있었다. 


  우리에게 호의적이었든 아니었든 멋진 실내, 정원, 아름다운 경치, 음료와 디저트 등 다양한 그릴 거리와 여럿이 함께 모일 자리를 제공해 준 모든 카페가 고맙다.      


덧붙이는 글: 우리가 모여서 그릴 만한 장소를 내내 물색했던 화담 님과 지수 님, 감사합니다!     

이전 24화 홍차와 우유가 섞인 뒤엔 원래로 돌아갈 수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