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째 명절과 제사를 우리 집에서 지내고 있다. 명절 전날 오시는 시부모님과 중앙탑이나 탄금대 산책, 카페 방문이나 쇼핑 등 적당한 외출을 한다. 차례에 쓸 전을 오전에 다 부치고 나면 오후에는 딱히 할 일이 없거니와 명절이라는 가족의 시간이자 효도의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아서다. 이번에는 월악산 야영장. 갑작스러운 결정이었다. 원래는 중앙탑에서 한가위 맞이 이벤트가 있다기에 거기로 모시고 가려 했었다. 그런데 날씨가 너무 더워서 차마 중앙탑을 거닐 수는 없을 듯해 계획을 바꾼 거였다.
월악산 송계계곡. 여름휴가 기간도 끝난 데다 명절이니 한적할 거라 짐작했다. 뜻밖에도 아니었다. 긴 연휴를 캠핑하며 즐기려고 각지에서 몰려들었는지 주차장마다 차량이, 계곡에는 물에 몸을 담근 사람이 그득했다. 우리가 찾아간 덕주 솔밭 피크닉 존은 잠은 잘 수 없고 하루 소풍을 위한 장소라서 아마도 우리처럼 가깝고 시원한 놀이터를 찾는 충주와 제천 등지 사람들일 것 같았다.
무료 야영장이지만 테이블 및 수도 시설, 화장실과 쓰레기 분리수거장이 잘 갖춰져 있었다. 소나무 그늘이 많고 물가와 가까워 더없이 좋았다. 우리 가족은 점심으로 고기를 구워 먹고 물에 발 담그고 앉아 이야기도 나누고 작은 돌탑도 쌓으며 놀았다. 야외에서 아들, 며느리, 손주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니 시부모님은 무척 흐뭇하신 듯했다.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다며 사진도 찍어달라 하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카페 ‘게으른 악어(lazy caiman)’에 들렀다. 월악산으로 갈 적에 차량이 붐비는 걸 보고 시어머님이 어떤 카페인지 무척 궁금해하셨는데 늦은 오후라 그런지 진입이 쉬웠다. 디저트 바움과 음료를 여섯 잔 주문했다. 컵 홀더 디자인이 여러 가지였다. 내가 마신 음료 컵에는 파란 바탕에 노란색으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게으르게 살자! 오늘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 시부모님 오시기 전에 전을 다 부쳐놓고, 오시자마자 캠핑 준비하고 나와서 놀다가 그런 문구를 접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빈백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카페 창밖 풍경을 쳐다봤다. 하늘 구석이 노르스레했다. 노을이 지고 있었다. 그래, 이 순간은 게으르게. 명절 전날은 그렇게 흘러갔다.
추석 아침 차례를 지내고 시부모님은 댁으로 돌아가셨다. 점심은 뭘 해 먹을까 하다가 비빔밥으로 정했다. 차례 음식 만드느라 아침에 시어머니가 만드신 나물 세 가지와 친정엄마가 싸주신 열무김치, 도라지무침이 있으니 편할 듯했다. 가지와 애호박만 더 볶았다. 밥에 나물들을 얹고 계란프라이와 김 가루도 올렸다. 시어머니, 친정엄마, 그리고 나의 솜씨가 버무려진 비빔밥을 남편, 아이들과 둘러앉아 맛있게 먹었다. 역시 명절은 가족들과 어우러지는 게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