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 모임. 식사하고 그림 그리느라 ‘달래강 72’에서 약 2시간 30분을 머물렀다. 그동안 짧게나마 비가 시원스레 쏟아졌다. 그림을 그리던 우리는 비가 내리고 나면 더위가 좀 식을 거래, 곧 야외 스케치도 나가자, 하며 한결 맑아진 창밖을 쳐다봤다. 그러나 웬걸. 카페 밖은 건식사우나가 습식사우나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9월인데도 아직 햇빛이 강렬하다. 지난 며칠간 불어오는 바람이 간간이 시원하고 특히 밤은 서늘하기까지 해서 여름이 끝나간다고 믿었던 터라 그런지 더욱 후텁지근하게 느껴진다. 날씨 탓일까. 달래강 72에서 파는 동유럽의 전통 빵을 보며 더위와 기후 위기를 생각했다. 굴.뚝.빵.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당장 끝났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다. 사람이 죽고 다치는 문제와 더불어 강과 토양, 공기를 오염시켜 미래 세대가 살 터전과 생태계까지 무너지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아 더욱 안타깝다. 가까운 주변을 보면 기업체에 포장 좀 적당히 하라고 말하고 싶다. 추석이 가까워 갖가지 선물을 주고받는데, 아파트 단지 쓰레기장에 그득 쌓인 플라스틱과 종이 상자 등 포장 재료들을 보면 화가 날 지경이다. 특히 비싼 물건일수록 포장이 두툼한 데다 재활용이 힘들 만큼 면밀하게 코팅되어 있다. 과한 포장 때문에 불매운동이라고 하고 싶었던 브랜드가 있다. 그런데 그 브랜드 이름+포장으로 검색하면 포장이 고급스러워 만족스럽다는 글이 넘쳐난다. 한숨이 나온다. 이기고 싶고 이윤을 많이 남기고 싶고 그럴싸해 보이는 선물을 주고받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겠지만, 제발 그 마음 좀 접어주길.
전쟁과 쓰레기로 계속 불을 지피니 아궁이 안의 열기가 굴뚝을 타고 올라가듯 사방을 데우고 또 데운다. 연기를 내뿜는다. 이래저래 바다로 쓸려간 쓰레기는 거대한 쓰레기 섬(가장 대표적인 섬은 Trash Isles, 대한민국 면적의 16배라고 한다)을 만들고 있다. 지구에서 연기가 뭉텅이로 피어오르는 장면이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다’는 말과 함께 머릿속에 그려진다.
굴뚝 청소부. 산업혁명 시대 유럽에는 아동 굴뚝 청소부가 많았다. 좁은 벽난로 안으로 들어가야 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데, 그들은 혹독한 환경에서 일하느라 죽거나 다치고 갖은 병에 걸렸다고 한다. 훗날 굴뚝 청소부에 대한 고마움으로 그들을 행운을 불러오는 상징으로 여겼다는 건 슬픈 아이러니다. 여기에 척박해진 지구에서 고생할 생명체들을 대입해 본다. 우리야 죗값을 치르는 거라 해도 굴뚝의 따스한 혜택은 못 보고 뒤처리만 했던 아동 굴뚝 청소부 같은 세대와 동식물의 억울함은 도대체 어찌해야 할지 도통 알 수 없다.
산타할아버지가 들어올 굴뚝은 걱정거리도 아니다. 지구가 더워져 눈이 내리지 않으면 썰매를 끌 수 없다. 즉, 산타할아버지는 아예 출발도 못 한다.
열 내며 타이핑하는데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 저녁 시간이 되니 온도가 내려가고 있다.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고맙고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