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를 배우고 있다. 어깨에서 힘 빼라는 주문을 듣는다. 거기에 더해 과한 움직임을 줄이라는 말도 듣는다. 풋워크를 한답시고 부리는 발재간과 백스윙한답시고 뒤로 뻗는 팔의 움직임, 상체 회전이 쓸데없이 부산스럽다는 의미다. 종합하자면 힘 조절을 못 하고 있다.
설핏 이런 의심이 든다. 힘 빼라는 말은 생소하고 힘내라는 말만 많이 듣고 살아서는 아닐까. 우리는 성공 뒤에 숨겨진 사당오락, 링거 투혼 같은 자기 착취의 고통을 미화한 서사를 듣고 자랐다. 그렇게까지 하지 못한 대다수는 열심히 살았음에도 죄의식을 느껴야 했다. 힘쓰고 애쓴 결과 우리나라는 부유해졌다. 그 과정에 켜켜이 들어찬 부작용은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그래서인지 힘들어 보이는 사람에게 흔하게 하는 응원의 말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나는 그런 말이 불편하다. 힘내라는 말을 듣고 마냥 울고 싶었던 기억이 있어서다. 몇 년 전 직장에서였다. 내가 많은 부분을 짊어져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9월 인사이동으로 새로이 우리 부서에 왔거나 막 채용된 사람들과 일해야 했다. 내 근무처는 9월 수시 원서접수로 시작해 11월 말까지가 가장 바쁘고 긴장되는 입학사정관실이었다.
주변에서도 내 어려움은 알았지만 막상 닥친 일 앞에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함께 일하게 된 동료들 역시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때 나는 힘내요, 몸에 좋은 거라도 많이 먹어요, 그런 말을 심심치 않게 들었다. 내 책상에 간식거리나 홍삼 한 포를 쓱 밀어놓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엔 그런가 보다 했는데 어느 순간 임계치를 넘었다. 먹고 더 힘내서 일하라는 건가, 얼마나 어떻게 더 하라는 건가. 지칠 대로 지친 나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서러웠다.
그렇다고 위로의 순간이 없었던 건 아니다. 어느 날 옆 부서에서 일하는 동료가 온갖 약재를 넣은 갈비탕을 먹으러 학교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당시에 점심도 저녁도 학식 아니면 배달 음식으로 해결하고 있었다. 그저 에너지를 채워 넣는 수준이었다. 일할 시간도 부족한데 어딜 나가자는 건지 영 내키지 않아 속으로 투덜거리며 따라나섰다. 그런데 오랜만이다 싶을 정도로 참 잘 먹었다. 깍두기까지 야무지게 싹싹 비웠다. 그런 나를 지켜보던 그는 그래, 먹고 살아야지, 하는 말을 했었다. 말 자체는 그다지 예쁘지 않았지만 평소 무뚝뚝하던 그의 말투와 표정에서 격려와 걱정이 느껴졌다. 식당 주차장이 꽉 차서 길가에 차를 세웠기에 식당을 나와 차가 있는 데까지 걸어갔다. 그때 들이마신 공기마저 어쩐지 나를 위로하는 듯했었다. 그래봤자 사무실로 돌아가 야근을 했지만, 조금은 덜 힘들게 느껴지던 밤이었다.
만약 내 앞에 과중한 업무로 힘든 동료가 있다면 괜히 듣고 싶지도 않을 말은 하지 않겠다. 잠깐의 휴식이라도 가질 수 있게 서류 복사 같은 사소한 일이나마 도와주겠다. 탈탈 털린 심신을 채워줄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겠다. 섣불리 고맙다고 했다가는 울 수도 있기에 그건 상황을 보아가며 하겠다. 마음으로 딱 하나만 바라겠다. 그가 잠시 멈춤으로 말랑말랑 살맛을 느끼길.
다시 탁구. 상체에 힘 빼고 공의 움직임을 보다가 정확하게 탁, 간결하게 쳐내야 한다. 힘을 주어 급하게 공을 치면 상대도 서둘러 공을 받아낼 수밖에 없다. 빨리 되돌아온 공은 다시 받아내야 한다. 힘을 조절하지 못한 공은 이리 튀고 저리 튄다. 공을 쫓느라 점점 몸에 힘이 들어간다. 자세가 흐트러진다. 다리가 떨리고 숨이 거칠어진다. 감당하지 못한 공은 마침내 엉뚱한 데로 도망간다. 랠리가 끊긴다.
핑퐁 핑퐁 핑퐁, 오늘도 나는 절도의 리듬을 익히러 탁구장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