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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은 작가 imkylim Dec 17. 2024

카페 놀이

  입대를 앞둔 아들이 집에 와 있다. 아들은 부지런한 편인 우리 가족 구성원 중 가장 느긋하다. 지난번에 왔을 때 군에서 시간이 날 때 공부하겠다고 했다. 나는 필요한 책을 미리 알아보라 일렀다. 훈련소 들어가기 전에 준비해 놓으면 자대배치 받을 때 엄마가 가져가겠다고. 


  종강하고 온 아들에게 책을 주문했느냐 물었더니 아직 안 했단다. 곧 할 거라고. 오늘 물어보니 여전히 하지 않았다. 인터넷으로 검색한 뒤 주문하면 끝나는 일인데 어찌하여 미루는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녀석의 이유는 이랬다. 엄마, 저는 금방 못하는 건 미루지 않아요. 금방 할 수 있는 것만 미뤄요.


  금방 할 수 있는 거니까 해 버리면 엄마가 몇 번이고 물어보지 않아도 되니 좋지 않냐고 반문했지만 실실거리며 웃기만 했다. 나는 아들에게 카페 놀이를 제안했다. 주방 식탁에 음료와 간식거리를 놓고 마주 앉아서 소위 카공(카페에서 공부) 하듯 각자 할 일을 하는 놀이. 엄마는 그림을 그릴 테니 너는 금방 할 수 있는 그 일을 하렴.


  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료로 뭘 마시겠냐고 하니 찬장에서 위스키를 꺼냈다. 샴페인 잔을 찾아 들고는 글렌캐넌 노징 글라스 운운했다. 위스키 잔도 있어야 한다나 뭐라나. 하는 짓은 아직 어린 녀석이 어디서 그런 건 들은 건지. 괘씸했지만 참았다. 입대 전 마음이 씁쓸할 테니까.


  우리는 함께 음악을 듣고 검색하고 있는 책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즐거웠다. 그런데 내가 그림 세 장 그린 동안 녀석은 필요한 책을 주문하지 않았다. 녀석은 말한다. 엄마, 책 후보는 골랐잖아요.


  생각해 보면 주문해 놓고 훈련소에 가도 늦지 않다. 어차피 자대배치 때 가져갈 거고 미리 도착해도 읽어볼 녀석이 아니다. 나는 녀석의 느긋함에 분통이 터지다가도 부럽다. 아무튼 오늘도 내가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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