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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은 작가 imkylim Nov 26. 2024

명태자

  가만히 앉아서 새로운 음식을 맛볼 기회가 종종 있다. 집에 들어오는 길에 먹거리를 곧잘 사 오는 남편 덕분이다. 남편은 최근 일본 후쿠오카로 출장을 다녀오면서 역시나 몇 가지를 챙겨왔다. 그중 러스크는 호텔에서 준 거라고 했다.


  설핏 포장지 위의 캐슈너트처럼 생긴 그림을 보고 나는 견과류가 들어간 러스크를 예상했다. 옥수수수프 위에 뿌려 먹으려고 포장을 뜯었다. 러스크에는 견과류가 스쳐 간 흔적도 없었고 맛은 짭짤했다. 고개를 갸웃하며 포장지를 내려다봤다. 구석에 명태자(明太子)풍미라고 적혀 있었다. 명태자? 나도 모르게 명태자를 보면서 황태자 같은 걸 연상했다. 맛의 황태자, 그런 느낌. 굳이 핑계를 대자면 과거 역사 시간에 배운 명나라 태조의 영향? 그런데 아무래도 그건 아닌 듯했다.  맛의 황태자야 괜찮지만 황태자 맛? 잔인하잖아.. 마음이 썩 편치 않았다.


  불현듯 닭고기와 달걀을 넣은 친자동(親子丼, おやこどん, 오야꼬동)이 떠올랐다. 명태자가 명태 자식, 그러니까 명란을 뜻하는 게 아닐까. 찾아보니 맞았다. 찜찜함이 사라진 자리에 이런 의심이 피어올랐다. 친자(親子)야 부모와 자식이라지만 명태자의 명태는 한국말 아니었나? 당장 검색해 보았다. 조선 후기 함경도 명천(明川)에 사는 태(太)씨 성을 가진 어부가 낚은 고기라 하여 명태라 칭했다는 정보가 나왔다. 그런데 명태가 명나라 태조와 음이 비슷해 명태라 불리지 못하다가 훗날에야 다시 명태라 불렸다고 했다. 명태자에서 명나라 태조, 황태자를 연상했던 나의 사고 흐름에 대한 정당성이 부여된 듯한 기분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아무튼 명태는 원래 한국에서 잡혔던 생선이며 명란젓도 부산에서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남획과 수온 상승으로 현재 한국 바다에서는 잡기 어렵고 대신 일본해역에서 많이 잡힌단다. 남편이 가져온 먹거리 중에는 저 러스크 말고 명란젓도 있었다. 오래전부터 한국 음식인데 일본에서 사 오는 아이러니라니. 어쩐지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다시 포장지를 봤다. 아까 견과류로 보였던 그림이 드디어 명란으로 보였다. 짭조름한 맛에서도 명란이 느껴졌다. 맞아. 명란 바게트 맛도 이거랑 비슷했지, 하고. 아는 만큼 보이듯 맛도 아는 만큼 감지할 수 있는 모양이다.     


  덧붙이는 글: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도 다 외우지 못하는 일본어 수준이지만 이런 계기로 아주 조금씩이나마 일본어 지평을 넓히는 것도 재미있다. 오늘의 일본어는 명태자(めんたいこ, 멘타이코, 명란젓).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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