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랄라우 밸리의 숨바꼭질

by 괜찮은 작가 imkylim

와이메아 캐니언에 이어 칼랄라우 밸리로 향했다. 가이드가 칼랄라우 밸리는 신이 허락해야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에게 평소에 착한 일을 많이 했느냐고 물었다. 몇몇이 머뭇거리자 가이드는 아무래도 보기 힘들겠다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거의 도착해서 가이드가 다시 물었다.

“우리 칼랄라우 밸리 볼 수 있을까요?”


우리는 큰 소리로 대답했다. 볼 수 있어요! 들뜬 관광객의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다.

기대와 함께 전망대에 올랐다. 웬걸, 짙은 안개가 꽉 차서 진하게 우려낸 거대하고 뽀얀 곰탕 같았다. Kalalau Valley along the Napali Coastline이라 적힌 안내판에 붙은 멋진 사진 속 그곳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몇 분 기다린다고 나아질 안개가 아니었다.


칼랄라우 밸리 다음이 식사였는데, 가이드는 식후에 다시 올라와 보자고 했다. 대신 식사 시간을 십오 분가량 줄였다. 잔디가 넓게 깔린 피크닉 존에서 도시락을 먹는 기분은 아주 좋았다. 그런데 약속된 시간이 끝날 즈음 꽤 많은 양의 비가 내리며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한 시간이라 잡고 느긋하게 굴었다면 비를 옴팡 뒤집어쓸 뻔했다. 나는 생각했다. 다행이긴 한데,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데 다시 가 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기껏 올라가 또 실망만 하게 되는 건 아닐까.


가이드의 설명은 달랐다. 비가 내리면서 구름이 걷혔을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바람이 조금 더 세게 불면 좋을 거라고도 했다. 차를 타고 올라가며 가이드는 또 물었다.

“칼랄라우 밸리를 볼 수 있을까요?”


나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아까와 달랐다. 머뭇거리기만 할 뿐 대답하지 못했다. 그럴싸한 설명을 듣긴 했지만 갑작스러운 비바람에 놀라기도 했거니와 아까 곰탕을 본 지라 자신감을 잃은 상태였다. 가이드는 말없이 웃었다. 도착해서도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꾸물거리는 우리를 두고 가이드가 먼저 올라가 보겠다고 했다. 잠시 뒤, 무전기를 통해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보입니다! 구름 걷히고 있어요. 다들 나오세요.”


와, 진짜? 하면서 우산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 바람 때문에 별 소용이 없기도 하거니와 빗방울은 안개비 수준으로 작아져 있었다. 어차피 젖은 몸, 잠시 펼쳤던 우산을 고이 접어 배낭에 넣었다. 부지런히 올라가 전망대에 섰다. 과연 구름이 흩어지고 있었다! 푸른 바다를 감싼 높고 뾰족한 절벽, 울창한 숲. 그 안을 걷다 보면 공룡이 튀어나올 것 같고 푸른 하늘로 익룡이 날아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태초의 풍경이 천천히 얼굴을 내밀었다. 아까 봤던 장면과 대비되어서인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사람이란 참 간사해서 쉽게 얻은 것보다는 어렵게 얻은 것에 더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는데, 나를 포함해 다른 사람들 역시 그랬던 것 같다. 와이메아에서의 감탄 일색과는 묘하게 대조가 되었다. 못 볼 수도 있었던 절경을 봤다는 만족감과 감탄에 더해 기쁨의 에너지가 넘실거렸다.


그런 와중에 한 커플이 내게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참 행복해 보인다며 웃었다. 그들은 독일에서 온 여행자였다. 내가 고등학교 때 독일어를 배우긴 했지만 Ich liebe dich, Danke, Guten Morgen, Guten Tag밖에는 기억하는 게 없다고 하자 여자는 Ich liebe dich를 한국말로 어떻게 하는지 물었다. 여자는 내 발음을 몇 번을 따라 읊더니 함께 온 남자를 끌어안으며 “사랑해”하고 바로 써먹었다. 사진도 부탁하기에 김치도 알려줬다. 우리는 헤어질 때도 아주 밝은 웃음을 주고받았다. 어쩐지 그런 만남도 전체적으로 들뜬 분위기였기에 자연스러웠던 듯한데, 칼랄라우 밸리의 아름다움을 직접 묘사하지는 못하고 이런 만남으로 전하려니 내 글재주의 부족이 무척 아쉽다.


신의 허락, 허락을 받지 못하다가 허락을 받아 좋긴 하지만 사실은 이렇다. 카우아이섬 중앙부의 와이알레알레산은 세계 3대 다우 지역 중 하나다. 즉, 거긴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이다. 또한 연중 불어오는 무역풍이 절벽에 부딪혀 구름을 만드는데 옴폭하게 폐쇄된 계곡의 모양 때문에 형성된 구름이 잘 흩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과학적 원리가 어떻든 간에 가이드가 다시금 거기로 이끌어준 게 너무나 감사했다. 경험의 가치란 바로 이런 데서 오는 게 아닌가 싶었다. 수차례 그 길을 드나든 자만이 날씨의 숨결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건 마치 농부가 날씨에 따라 작물의 성장과 수확을 예상하는 것, 거기에 어떤 변수가 끼어들어 훼방을 놓을 수도 있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과 비슷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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