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씨가 되나, 씨앗이 되나.

by 괜찮은 작가 imkylim

중급 2 언어생활 단원에 ‘말이 씨가 된다’라는 속담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씨 대신 씨앗이라고 하면 어색합니다. 씨와 씨앗은 뭐가 다르기에 그럴까요.


* 씨: 식물의 열매 속에 있는, 장차 싹이 터서 새로운 개체가 될 단단한 물질.

새로운 동물을 낳아 번식시키는 근원이 되는 것.

앞으로 커질 수 있는 근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씨앗: 곡식이나 채소의 씨.

어떤 일이나 상황 따위의 밑거름, 또는 어떤 일이나 상황의 시작이 되는 계기나 원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일단 씨가 씨앗보다 포괄적인데, 씨앗을 곡식이나 채소의 씨라고 한 부분에는 고개가 갸웃해집니다. 목화 씨앗이 아니라 목화씨, 꽃 씨앗이 아니라 꽃씨라 하는 것을 생각하면 맞아요. 하지만 그런 분류는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표현과는 조금 동떨어진 면이 있는 듯합니다. 저는 여기에서 씨를 말린다, 씨 다른 형제, 씨암탉, 이런 건 차치하고 식물의 번식과 성장 관련한 부분으로 씨와 씨앗의 차이를 정리해 보려 합니다.


정의로 보면 채소에는 씨, 씨앗을 다 써도 됩니다. 참외, 오이, 고추, 수박은 식물 재배학 측면에서 채소지요. 참외씨, 오이씨, 고추씨, 수박씨, 모두 자연스럽고 씨앗으로 해도 무방해요. 우리는 기호에 따라 참외씨와 오이씨를 긁어 버리거나 먹어요. 고추씨로 기름도 만들지요. 우장춘 박사는 한국에서 최초로 씨 없는 수박 재배에 성공했어요. 이런 예에서 씨앗이라 하면 어쩐지 부자연스러워요. 그렇다면 채소일지라도 때에 따라 씨와 씨앗을 가려 쓴다는 뜻이겠지요.


어렸을 때, 수박을 먹다가 수박씨까지 삼키면 씨가 몸 안에서 자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배탈이 나지 않게 천천히 먹으라는 말이었겠지만, 씨 몇 개를 먹어버린 저는 자라난 수박 줄기와 잎이 제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모습을 상상했어요. 제가 삼킨 수박씨는 대변으로 나가 정화조를 거치며 발아할 기회도 찾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된 건 더 자라서였죠.


몇 년 전, 남편이 깻잎 키우는 화분 옆에서 수박을 먹은 적이 있어요. 이사를 오느라 깻잎 화분을 이웃에게 주었는데 그것은 몇 달 뒤, 커다란 수박 사진으로 돌아왔어요. 우리가 놓고 온 화분에서 정체 모를 싹이 나오더니 수박이 열렸다는 소식과 함께였습니다.


저는 이게 씨와 씨앗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먹은 건 수박씨, 우연히 떨어졌더라도 화분에서 발아한 건 수박 씨앗. 그래서 발라내 버리거나, 먹거나, 기름 만드는 씨를 씨앗이라고 한다든가 우장춘 박사의 씨앗 없는 수박이라고 하면 어색한 게 아닐까요?


산길을 걷다가 도토리 열매를 발견하면, 우리는 그것을 씨앗이라고는 부르지 않습니다. 어떤 분은 도토리는 채소도 곡식도 아니니까 당연하다고 할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만약 그 도토리를 집에 가져와 심는다면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저는 어쩐지 씨앗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논에서 참새가 먹는 낟알은 씨일까요, 씨앗일까요. 우리가 해바라기씨, 호박씨를 까먹는 것처럼 참새가 쪼아먹는 낟알은 참새 몸으로 들어가 소화가 되어버리니 씨라고 보는 게 맞을 듯합니다. 하지만 파종 과정에서는 낟알을 씨앗이라고 부르는 게 어울리지요.


작가 이유리의 단편 소설 ‘빨간 열매’에 나오는 문장도 볼까요?

「아버지에게도 입을 싹 씻기가 좀 민망해서 화분에 꽂는 노란 식물 영양제를 사다가 꽂아주었는데 아버지는 그걸 마시면 젊은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며 즐거워했다. 아버지의 젊은 시절이라면 아기일 때를 말하는 것일까 씨앗일 때를 말하는 것일까, 생각하다가 나도 반으로 짝 갈라질 것처럼 혼란스러워져 그만두었고 나와 아버지는 한동안 그렇게 잘 지냈다.」


죽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유골을 화분에 담은 뒤 마른 나무 한 그루를 심었는데, 그 나무가 아버지 살아있을 때와 똑같이 말하는 설정의 이야기입니다. 작가는 화분에 심은 나무에 씨앗이라는 표현을 썼지요.


사전에서 씨앗을 곡식이나 채소의 씨로 정의한 것은 인간의 먹거리로 거두어들임을 기대하며 심는다는 면에서 비롯된 듯합니다. 거두려면 발아해서 자라야 하니까요. 씨보다 씨앗에 발아의 느낌이 더해지는 건 씨앗에 담긴 ‘어떤 일이 시작되는 계기’라는 정의 때문이겠지요. 계기에는 변화나 시작의 동기 내지는 결정적인 느낌이 있으니까요.


말이 씨앗이 된다고 하면 부자연스러워요. 우리가 매일 뿌리는 말은 어디론가 사라질지, 무럭무럭 자라날지 알 수 없으니까요. 만약에 모든 말이 씨앗이라면, 입을 열기가 지금보다 훨씬 두려워질 듯해요. 수박씨를 삼키면 몸 안에서 자란다는 농담 한마디 하기 어려워서 사는 재미도 덜할 테고요. 말이 씨(가능성)가 될지언정 씨앗(결과를 향한 시작)은 아니라서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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