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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비니 Dec 30. 2019

요리하면서 알게 된 것들

2019년 1월 24일 어른일기

열심히 만든 '전복죽'. 깨를 뿌려놓으니 더 맛있어 보인다.

요리를 하다 보면 무언가 인생을 공부하것 같다는 생각 들 때가 종종 있다. 요리를 하다가 우리의 인생을 닮은 어떤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삶의 지혜 같은 걸 요리하는 도중에 문득 깨닫게 되기도 한다. 먹기만 할 때는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는 것도 요리의 즐거움 아닐까 생각한다.


요리를 하다 보면 있어도 티는 안 나지만 없으면 아쉬운 존재를 발견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막상 옆에 있을 땐 못 느끼지만 없으면 허전한 동료나 친구처럼 조직 안에서, 관계 속에서 제 역할을 묵묵히 해내는 존재들 말이다.


이 음식에도, 저 음식에도 들어가는 공통 필수 재료를 말하려는 것이다. 파, 양파, 계란, 참기름, 간장, 식초, 소금, 설탕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대개 음식의 주인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들이 빠진 음식은 상상하기 싫고 어렵다.


요리하지 않고 먹기만 할 때는 음식에 들어가 있는지조차 생각하지 못했던 이 재료들은 음식의 맛을 살려주고 완성해주는 빛나는 역할을 할 때가 많다. 감초 같은 역할이 빠진 채 주인공만 고군분투하는 영화가 재밌을 리가 없는 것처럼 빛나는 조연 같은 재료가 없다면 그 음식은 무언가 허전하고 맛없을 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는 없는 우리 삶 속에서 소금, 참기름, 양파 같 꽤나 존재감 있는 재료처럼 살아보는 것 그리 나쁜 인생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여전히 요리 초보 격인 나는 레시피에 지나치게 의존할 때가 많다. 계량컵이 없을 때는 요리에 나설 엄두를 쉽게 내지 못하고, 한 요리의 레시피가 여러 개 검색될 때는 무엇이 제일 적당한 것일지를 고민하느라 바로 요리하지 못할 때가 많다. 하지만 어떻게든 요리를 하고 마치고 보면 레시피가 요리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새삼 닫게 된다.


블로그와 각종 포털에는 소위 '황금 레시피'라는 것들이 넘쳐나지만 이것들이 맹목적으로 따라 할 정답은 아니다. 여러 레시피 중에 마음에 끌리는 것을 적당히 조합해 나만의 방식으로 요리하면 그걸로 된다. 그래도 내 식대로 하는 것에 두려움이 다면 우리의 입맛을 믿어보도록 하자. 여러 번 간 보고 맛보면서 보완하면 얼추 그럴듯한 음식을 누구라도 완성할 수 있다. 남들 말이 그럴싸해 보여 이쪽, 저쪽 따라가다 보면 결국엔 가는 방향도, 갈 길도 잃게 되는 우리 인생처럼 남의 조언은 참고만 간략히 하고 나 자신을 더욱 믿으며 앞으로 우선 나아가 보는 자세가 요리에서도 필요할지 모른다.


요리할 때 보기 좋은 음식이 먹기도 좋다는 건 정말로 사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맛있어도 맛있어 보이는 비주얼이 아니라면 선뜻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게 사람 마음이다. 처음 요리하거나 요리가 아직 미숙할 때는 음식 모습을 세밀히 챙기기가 물론 어렵다. 하지만 요리하는 것이 익숙해 자신감이 붙은 상태라면 음식이 더욱 맛있게 보이도록 꾸며보는 데도 공을 들여보.


스파게티 위에 얹은 파슬리나 전복죽 위에 뿌린 참깨는 맛 자체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존재들이지만 그 음식을 보는 사람들의 입에 침을 충분히 고이게 하는 시각적인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낸다. 간단한 꾸밈인데도 있고 없고의 차이가 꽤 크다. 이처럼 내 안의 매력적인 콘텐츠를 더 효과적으로 남에게 알리고 싶은 이라면 사람 자체 그대로 매력적이게 보이도록 어느 정도 자기 관리를 하거나 간단히 꾸미고 다니는 것이 필요할지 모른다. 외모지상주의를 말하는 건 물론 아니다. 간단한 꾸밈으로 충분히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요리는 꽤나 번거로운 일이다. 사 먹을 때는 몰랐지만 직접 해보니 기대 이상의 수고가 요리라는 행위에 투입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세상살이는 쉬운 일 없이 수고로운 일이 연속될 뿐이다.


단순히 라면을 끓이거나 냉동음식을 데우는 것처럼, 즉 요리라고 하기에는 애매모호한 수준의 행위를 제외하면 음식을 만드는 것 자체는 난이도와 관계없이 꽤나 번거로운 편이다. 쉽게 만드는 음식 중 하나인 계란 프라이를 만들 때조차도 해야 할 일들이 빽빽해 수고롭다.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적당히 붓는 것을 시작으로 계란을 잘 깨뜨리는 것, 그 위에 소금과 후추를 치고 알맞은 타이밍에 계란을 뒤집는 것, 마지막으로 접시에 잘 옮기는 것까지 한번 시작된 요리에는 쉼표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요리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재료를 다듬는 준비 시간은 더욱 늘어나게 되고 요리 과정은 지나칠 정도로 복잡해져 허투루 낭비할 시간은 더 없어지기도 한다. 요리 이후에 설거지를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시간까지 떠올리면 "차라리 사 먹고 말지"라는 말이 입에서 저절로 나올 지경이. 그런 면에서 음식을 사 먹는다는 것은 어쩌면 번거로움, 수고로움에 돈을 지불한다는 의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직장에서, 일터에서 수고롭게 일해 돈을 벌고, 그 돈을 덜 수고롭기 위해 쓰는 존재가 아닐까, 라는 생각 수고롭게 요리를 하다가 문득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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