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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비니 Jan 02. 2021

아빠와 아기의 태몽 이야기

아빠는 복숭아 태몽 하나, 콩이는 예쁜 태몽 3개

물고기 달고 다니는 고양이 인형. 흔들면 종 소리가 나고, 촉감을 다양하게 느낄 수 있는 여러 소재가 섞여 있어서 아빠인 내가 참 좋아하는 인형. 콩이에게 참 많이 안겨주었다.

꽤나 모범생이었던 고교 시절 나독특한 콤플렉스를 하나 갖고 있었다. 바로 내 태몽이다. 태어난 지 십수 년이 흘렀고 성인이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고등학생이 태몽을 콤플렉스로 여겼다는 이 지금은 참 우습지만, 감수성이 유달리 풍부했던 열일곱에서 열아홉 때의 나에게는 자존심을 건드는 문제였다.


어머니가 직접 꾸신 내 태몽은 복숭아 꿈이었다. 태몽을 오늘날까지 생생하게 기억하시 어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이렇다. 꿈속에서 어머니는 친정(그러니까 내게 외가)집을 방문했는데, 집의 대문 주변으로 큰 나무 한 그루가 있었고 그 밑으로 곡식 따위를 보관하던 장독, 즉 항아리가 여러 개 있었다. 어머니는  장독 중 큰 거를 하나 골라 열었는데, 그 안에는 아기 머리 만한 커다란 분홍빛 복숭아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걸 보자 왜인지 어머니는 복숭아들을 집에 가져가야겠다고 욕심이 났고 어머니의 어머니, 그러니까 내 외할머니에게 복숭아를 가져가도 되냐고 허락을 구하게 됐다. 그때 할머니는 복숭아 알레르기로 평생 복숭아를 먹지 못하는 딸에게 '복숭아도 먹지 못 하면서 그걸 왜 가져가느냐'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머니는 '○○(내 누나의 이름) 아빠 가져다주려고요'라고 고집부리면서 그 탐스러운 복숭아들을 여럿 챙겼다고 한다.


생생한 장면과 내용이 나름 신비롭고 재미있어서 싫어할 이유가 전혀 없는 태몽이지만, 고교 시절의  태몽에서 멋과 특별함이 느껴지지 않다며 아쉬워다. 특히 유산돼 비록 태어나지는 못했지만 내 밑으로 어머니가 임신했던 동생의 태몽이 용이 승천하는 꿈이었다는 사실을 그 무렵 알게 됐을 때 난 내 태몽이 정말 별 것 아닌 것 같다고 생각다. 상상 속 동물이지만 워낙 동서고금의 이야기에 많이 등장하는 용은 그 이름만으로도 멋이 나서 나는 용 태몽을 몹시 부러워했다. 그때 난 '내 태몽이 비록 용꿈은 아니지만, 용꿈으로 태어난 수준으로 인생 잘 살도록 노력해야겠다'라며 태몽 콤플렉스를 열심히 공부하는 원동력 같은 걸로 삼았다.


우습지만 이 콤플렉스 덕분인지 나는 대입 입시에서 제법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고, 덕분에 난 태몽 콤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었다. 특히  복숭아가 천상계에서 신선들이 직접 기르고 는 천상의 과일이라는 을 뒤늦게 깨닫고 복숭아 꿈이 상당히 좋은 태몽이라고 생각고쳐먹기까지 다. 이후 성인이 된 내가 태몽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은 거의 없었다. 다시 태몽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때는 시험관 아기(체외수정) 시술을 통해 아내가 아기 콩이를 임신했을 무렵이다.


아기 콩이의 태몽은 3가지로, 하나는 나의 이모님이, 다른 하나는 아내의 고모님이, 마지막 하나는 아내의 친구분이 꿈을 꿔주었다. 직접 태몽을 꿔본 경험이 없기에 나는 태몽이 어떤 이유로 일반적인 꿈이 아니라 태몽으로 인식될 수 있는지 잘 모른다. 하지만 2세 만들기를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이모님과 고모님이 태몽을 꿨다며 부모님을 통해 연락을 주신 걸로 봐서 태몽은 그 자체로 무언가 딱 태몽으로 인식되는 종류의 꿈인 것으로 이해해도 듯하다.  새 생명의 어떤 기운 같은 것이 강하게 꿈속에서 번뜩이는 것은 아닐까, 나름 생각해본다.


콩이의 태몽을 전해 듣기로 이모님이 꿔주신 꿈은 산을 찾아간 이모님이 너무나도 예쁜 알밤을 발견해 즐거운 마음으로 주워 왔다는 내용이고, 고모님의 태몽은 고모님이 예쁘고 하얀 돼지 한 마리를 예뻐라 하며 안으셨다는 내용이다. 마지막으로 아내 친구분은 예쁜 왕잠자리가 날아드는 내용의 꿨다고 한다. 하나 같이 '예쁜' 대상을 기쁘게 맞이한다점에 공통점이 있어 3가지 태몽이 특별하게 연결된 느낌을 받았다.


내 태몽이 어머니가 꾸신 복숭아 꿈 하나인 점을 생각하면 콩이는 태몽 부자다. 3가지 태몽을 전부 잘 기억해뒀다가 나중에 아이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컸을 때 생생하게 이야기해주면 특별한 기억으로 남지 않을까. 혹여 콩이가 태몽 이야기를 듣고 과거의 나처럼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아빠의 태몽 콤플렉스 극복기도 들려주며 자신의 태몽을 더욱 소중하게 기억하라고 당부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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