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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비니 Jan 11. 2021

뱃속 아기야, 넌 누구니?

모든 일이 가능한 가능성의 시간, 예비 엄빠는 즐기자

임신 29주 아기 콩이의 입체 초음파 검사 사진. 특수 기계로 아기를 살피면 실물처럼 이미지가 조합된다. 태어난 이후 비교해보니 거의 닮은 얼굴에 감탄이 나왔다. CORD는 탯줄.

딸일까 아들일까, 그것이 궁금하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예비 부모가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열 달 뒤 만날 아기에 관한 것일 테다. 어떻게 생겼을지, 엄마 아빠 중 누구를 닮았을지 등등의 여러 궁금증이 예비 엄마 아빠의 머리에는 끝도 없이 떠오른다. 이중 최고로 궁금한 것 중 하나를 꼽으면 단연 아기의 성별일 것이다.


XX 여아 또는 XY 남아. 염색체 하나의 차이에서 비롯돼 50%의 확률로 결정되는 아기의 성별은 앞으로 펼쳐질 아기의 인생에 적지 않을 영향을 미칠 요소일 뿐만 아니라 아기를 키워나갈 부모에게도 여러 고려할 점을 생각하게 하는 요소이다. 부모는 아기의 성별이 무엇이냐에 따라 양육 방식을, 또는 자녀를 대하는 자세를 달리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예비 부모가 되도록 빨리 뱃속 아기의 성별을 알고 싶어 한다. 아기의 옷을 미리 사두고 싶 설렌 마음도, 뱃속 생명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도 서둘러 성별을 알아보라고 부모를 재촉한다.


주변의 경우나 카페, 블로그 등 인터넷 정보를 종합해 보면 한국 예비 부모 다수는 이르면 임신 안정기로 접어들 무렵부터 아기의 성별을 미리 알게 되는 것 같다. 사실 국내 의료법은 임신 32주 이전에 의료인(의사나 간호사 등)이 태아의 성별을 부모에게 알려주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만, 아기 성별을 미리 아는 경우가 흔한 최근의 분위기를 보면 이 법은 허울만 남은 느낌도 든다.


남아 선호 사상과 그로 인한 여아 낙태가 문제가 돼 태아 성별 감별 금지 법 조항이 마련됐던 1987년과 달리 요즘은 남아 선호 사상이 사실상 자취를 감췄을 뿐만 아니라, 성별 상관없이 기껏해야 아이 하나 정도를 낳는 저출산 시대에 아기 성별이 부모의 잘못된 선택을 촉발한다는 주장은 이전보다 설득력이 떨어져 보인다. 더군다나 태아 감별을 금지하는 핵심 배경 중 하나인 낙태죄가 2021년 새해에는 아예 사라지기도 했다.


'아기 성별이 알고 싶어요' 예비 엄빠의 분투기1


우리 부부가 아기 콩이의 성별을 알게 된 것은(물론 단정적이거나 직접적으로 확인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의 기대보다 훨씬 더 나중의 일이었다. 나와 아내가 아기의 성별을 빨리 알아보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말이다.


임신 후 아직은 난임 치료 병원을 졸업하기 전이었던 시기 아내와 나는 아기 성별을 빠르면 임신 12~13주 초음파 검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들어서 그 무렵 의사 선생님에게 "아기 성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조심스러운 목소리였지만 직접적인 우리의 질문에 선생님은 우선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이어서 그가 꺼낸 말은 "아직은 못 알려드리게 돼 있어요"라는 원칙적이고 단호한 거절이었다.


궁금증을 해결 못한 우리 부부는 아무래도 선생님께서 대답하지 못한 이유가 32주부터 설명할 수 있는 법 조항 때문 같아서 전략을 바꿔보기로 했다. 임신 16주 난임 치료 병원 졸업을 앞두던 때라서 우회적으로 질문하면 선생님이 선물주 듯 슬쩍 아기 성별을 알려줄지 모른다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나와 아내는 마지막 진료 날 선생님에게 "혹시 아기 옷을 파랑으로 준비하는 게 나을까요, 분홍이 나을까요?"라고 다시 물었다. 하지만 그때도 선생님은 미소 띤 얼굴로 "흰색이나 노란색은 어떨까요"라고 영리하게 답하며 작은 단서조차 주지 않았다.


답답해진 우리 부부는 유명 맘카페 여럿에 접속해 아기 성별 관련 게시물을 찾아 읽었다. 아들딸 감별사라는 존재들을 알게 된 건 그때였다. 이들은 아기 성별을 궁금해하는 예비 부모들이 초음파 검사 사진이나 영상을 올리면 나름의 분석을 통해 예상 성별을 댓글로 달았다. 이들은 대부분이 먼저 임신에 성공하고 아기의 성별을 먼저 파악한 경험이 있는 선배 엄마 아빠들이었다.


이들은 "딱 보니 왕자님이네요!" "공주님 임신 축하드려요!" 이렇게 적었다. 물론 그들의 댓글이 전문적인 의료 지식을 근거로 하는 것은 아닌 듯했다. 하지만 이들은 아기 성별을 먼저 확인해본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름대로 초음파 검사 사진을 분석하며 아기 성별을 유추했다. 이들이 성별을 알아보기 위해 대표적으로 살펴본 것은 초음파 검사 사진에 나타나는 태아의 성기 모양이었다. 남아의 경우 여아와 달리 성기가 도드라져 보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 봤자 정확한 의학적 지식에 근거한 감별은 아니라고 지적할 수 있지만, 때로 집단지성을 발휘하기도 하는 감별사들의 감별 정확도는 낮은 편만은 아닌 듯했다.


아들딸 감별사들의 활약(?)을 보다 보니 '이들이 콩이의 성별도 맞출 수 있을까'라는 호기심과 '콩이는 딸일까, 아들일까'라는 궁금증이 커졌다. 나와 아내는 믿거나 말거나 감별을 받아보기 위해 아기 콩이의 초음파 검사 사진을 올렸다. 하지만 게시한 시간이 어정쩡해서인지 우리의 기대와 달리 몇 개 안 되는 댓글만이 달렸을 뿐이고 그 마저도 제각각 엇갈리는 의견들이었다. 나와 아내는 궁금증을 해결하기는커녕 머리만 더 복잡해진 기분에 속상했다.


'아기 성별이 알고 싶어요' 예비 엄빠의 분투기2


아기 콩이가 딸인 것 같다고 아내가 내게 말해 온 것은 조금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아내는 콩이의 뱃속 모습을 자랑할 겸 초음파 검사 사진을 친구들에게 보여줬는데, 그걸 전해 본 친구의 동생분이 콩이의 성별을 딸로 추측한 것이었다. 아내보다 나이는 어렸지만 이미 자녀를 낳아 기르던 그 동생분은 자신의 지난 경험을 살려 콩이의 성별을 딸이라고 추측했다.


우리 부부는 엇갈리는 감별사들의 댓글에는 믿음을 주지 못했지만 비교적 가까운 사람의 추측에는 마음이 따라갔다. 결국 나와 아내는 '딸일 가능성이 높긴 할 것 같다'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난임 병원을 졸업하고 출산 병원을 다니던 우리 부부는 임신 18주, 20주가 지날 무렵에도 콩이의 성별을 직접적으로든, 우회적으로든 확인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답답했던 나와 아내가 가까운 경험자의 추측에 마음이 간 건 어쩌면 자연스러웠던 일일지 모른다.


임신 24주. 20주 이후 거의 한 달 만에 찾은 산부인과에서 나와 아내는 콩이가 딸이라는 쪽으로 좀 더 생각을 기울이게 됐다. 당시 나는 임신 32주가 되기 전까지 공식적으로, 또는 우회적으로 의사 선생님이 성별을 알려줄 것이라는 생각은 이미 접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기 성별을 알고 싶다는 마음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난 알려달라고 물어보는 대신 이미 아기의 성별을 알고 있다는 척 연기해 선생님의 반응을 살펴보기로 했다.


"다들 초음파 사진을 보더니 딸이라고 하더라고요." 나는 나름 6년 가까이 정치사회산업 분야의 기자로 일했던 경력을 살려 능청스레 말하며 선생님의 반응을 유도했다. 난 보통 사람들은 다른 이가 잘못된 정보를 말하면 이를 바로잡아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적어도 아기가 딸이 아니라면 이를 부정하거나 바로잡고 싶어 하는 어떤 반응이 선생님에게서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때 나와 아내가 확인한 선생님의 반응은 내 발언을 부정하거나 바로잡아주려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신 무표정한 선생님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묻어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단순히 느낌 탓일 수도 있지만 이 미묘한 표정 변화를 감지하고 나와 아내는 콩이가 딸일 가능성이 높다고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


'무슨 성별이든 어때' 가능성의 시간을 즐기자


그때쯤부터 우리 부부는 스스로를 예비 딸 부모라고 생각했고, 32주가 지난 어느 시점부터는 의사 선생님도 뱃속 아가를 딸아이로 자연스럽게 지칭했던 것 같다. 나는 '딸 아빠' '딸 바보'가 될 미래를 상상하며 설렌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마음이란 게 간사해서일까. 아기가 태어날 출산 예정일이 다가올수록 '그런데 실제로는 딸이 아니라 아들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선생님도 실수라는 걸 할 수 있을 테고' 따위의 생각이 머릿속에 이따금 떠올랐다. 난 이때마다 그 작은 불확실성에 대해 지나치게 신경 쓰고 생각을 쏟느라 집중해야 할 일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고, 그 때문에 상황이 썩 맘에  않았다.


난 결국 '모든 것은 아기가 태어난 뒤에 분명해질 것이고 그전까지는 모든 것이 가능한 가능성의 시간일 뿐이다. 그러니 괜히 신경 쓰며 시간 낭비하지 말고 그저 출산까지 남은 시간을 아내와 함께 설레며 즐겨보자'라고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그리고 '딸이면 어때, 아들이면 어때. 얼마나 예쁠 내 자식을 만나는 일인데, 그 자체만으로 이미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글을 마무리하며 덧붙이면, 성별만큼 예비 부모가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는 아기가 어떻게 생겼을지, 즉 '생김새'에 대한 것이다. 이 궁금증은 그래도 입체 초음파 검사의 도움을 받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부분 같다.


우리 부부가 임신 29주에 받은 입체 초음파 검사는 출산 전 아기의 얼굴을 미리 가늠하게 해주는 이색적인 경험을 선사다. 특수한 초음파 검사 기계로 태아를 살피면 컴퓨터가 3D 이미지로 조합해 실물처럼 뱃속 아기의 모습을 완성해주었는데, 콩이가 태어난 뒤 실제 얼굴과 입체 초음파 검사 사진 속 얼굴을 비교하니 거의 똑 닮아 있었다. 우수한 기술력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참고

서울신문 2017. 03.17. 기사 - [생각나눔] "알권리 제한" vs "낙태 여전" 태아 성별, 언제 알려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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