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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킴박사 Apr 02. 2020

임신출산, 남편의 표현 30초, 아내는 기억 30년

말이 아닌 마음의  표현


'출산 기억력' 평생 유지된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기억은 수십 년이 지나도 아내에겐 생생하다. 눈만 감아도 바로 기억 속 오래전 출산 현장을 재현해 낼 수 있다. 의료진들의 표정, 분만실의 냄새, 의료기계 소리, 커튼 색깔, 침대의 촉감.... 심지어 간호사의 안경까지도 기억해내기도 한다. 건망증이 빈번한 할머니들도 출산을 떠올릴 때는 구체적이고 디테일하다. 임신과 출산의 회상 끝자락에서 누구는 한숨과 눈물을 쏟아내고, 누구에게는 행복하고 감격스런 기억들이 샘솟듯한다.       



왜 출산 기억이 오래갈까?


생명이 달린,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들이기 때문이다. 아기에겐 첫 삶이 시작되는 때이고, 아내에겐 엄마로 태어나는 직전이다. 한 생명이 한 생명을 품은 뒤, 두 생명으로 나눠지는 이 시간은 초신성 별의 탄생보다 더 경이로운 순간이다. 그래서, 산모의 몸속 약 14만 km 신경 네트워크는 출산에 초집중한다. 신경전달 물질들은 최상의 상태로 산모와 태아의 정보들을 뇌로 전달하고, 뇌는 호르몬과 자율신경의 극적인 조율로 출산을 진행해나간다. 이 고도의 집중과 몰입이 뇌와 중추신경세포들의 기억 시냅스를 강하게 연결시켜 놓는다. 세월이 지나도 이 강한 기억의 연결은 느슨해지지 않는다. 오감을 통해 전달된 정보는 뇌신경 축삭 말단 기억창고에 저장된다. 평생.     




남편의 세밀하지 못한 행동,
모든 걸 흩트려 놓을 수 있다


분만 시 몸과 마음이 극도로 예민하고 민감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야만 한다. 산모는 본인과 아기에게 빠르게 산소가 공급되도록 숨을 가파르게 내쉰다. 아기의 출산 문이 10cm까지 열리고, 아기가 고개를 내미는 과정이 진행될 때 자율신경은 고도로 몸의 변화를 조율한다. 적절한 통증으로 출산 문 주변 조직과 근육의 불필요한 확장을 제한 (즉. 보호) 시켜주고, 천연 진통제와 이완제가 적절히 분비되도록 유도하여 진통을 견디게 해 준다.



이어, 아기 위치와 산모의 상태를 확인한 신경은 아기 출산 임박 전 마지막 숨 고르기를 위한 여유를 준다. 이제 교감신경은 임신기간 동안 꽉 잡아주고 있던 출산 문을 활짝 열어줄 차례다. 동시에 마지막으로 자궁이 수축하며 아기를 밀어주면 된다. 아내는 숨을 모으고 마지막으로 힘을 주면 된다. 이때! 누군가 손을 잡아주고 같이 힘을 실어주면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이때! 바로 이때! 남편들이 다양한 실수를 한다. 이 실수들이 산모의 교감신경을 순간적으로 극히 자극한다. 출산 진행을 순식간 흐트러지게 할만큼. 하품을 하는 남편. 기침을 하는 남편. 카톡 소리. 전화를 받는 남편. 사진을 찍는 남편. 상황에 맞지 않는 농담을 하는 남편. 배고파서 잠시 나가는 남편.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오는 남편. 아내가 손을 너무 세게 잡았다고 아프다고 하는 남편, 아내에게 자기도 힘들다고 어리광 부리는 남편......(아).... 잘 해왔는데 하필이면 이럴 때 치명적인 실수가 많다.    



남편의 표현 30초, 아내는 기억 30년


남편들은 알아야 한다. 임신과 출산에서 아내의 예민함이 아기의 생명을 키워내고 지켜내는 산모의 '소중한' 집중이라는 걸. 임신 중 아내가 이해 불가 뜬금없는 불만 표현과 갑작스러운 눈물을 볼일 때도 '왜 그래?' 라기보다는 10초 동안 안아줄 수 있는 이해와 여유를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이어서 숨을 고르고 아내에게 표현한다. '당신 참 잘 해내고 있는데 요즘 힘들어서 그런가... 미안해'. 



입덧하는 아내가 남편에게 요즘 못 챙겨줘서 미안한데 잘 쳉겨먹고는 다니는지 물어보면 남편은 어떻게 해야 할까? 아내를 10초 동안 안아주자. 숨을 고르고 '당신이 이렇게 입덧으로 못 먹는데, 나도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아'. 이런 남편의 태도는 아내에게 큰 힘이 된다.



출산과정에서 예민해진 산모 중 일부는 출산 보조가 미숙한 남편에게 말을 세게 늘어놓을 때가 있다. 아내가 속상한 듯 남편에게 명령조로 지시하고, 남편에게 소리를 질러도... 남편은 어떻게 해야 할까? 남편은 아내를 10초 동안 안아주자. 그리고 표현. '내가 부족해도 당신이 이렇게 잘 해내 주니 고맙고 자랑스럽고 미안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손잡는 거밖에 없네. 이손 절대 놓지 않을게'.



아내는 남편의 표현 속에 담긴 마음을 듣는다. 그 마음이 산모가 출산앞에 혼자가 아님을 느끼게 해준다. 이 마음이 산모에게 두려움이 아닌 용기를 준다.  마음이 아내의 기억 신경 시냅스를 강하게 연결시키는 것이다. 뇌신경 축삭 말단 기억창고를 채우는 것도 바로 아내를 10초간 안아주는 남편의 마음인 것이다. 이 마음이 평생 기억되어 사랑으로 아이들에게도 전달되고 남편에게도 되돌아 가지는 것이다.





임신과 출산. 내 아내가 엄마로 태어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이 순산이 되게 하는 것은 남편의 마음이다. 남편도 기억하자. 당신도 아빠로 태어나기 위해 9개월간의 임신 중임을. 가슴에 아기를 품고 있는 아빠. 이 가슴과 마음에서 빚어 나오는 30초의 표현과 표정이 우리 가정의 평생 끊이지 않는 행복 샘물이 될 것이다. 적어도 30년 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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