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gpt,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하는가?

Chat-gpt 새로운 권력구조의 탄생과, 생각의 외주화의 위험성

by 시아
chat-gpt가 등장한 이후로, 인류는 정말로 동작하는 "인공지능"이 나타났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기존의 인공지능들은 우리 일상과는 조금 멀리에 있는 것으로 느껴졌지만, 언어를 사람처럼 말할 수 있는 인공지능, LLM(e.g. chat-gpt)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일상에 가까운 인공지능을 만나게 되었다.
chat-gpt는 기존의 산업혁명과는 다른 새로운 혁명의 구조이기도 하다. 챗 지피티가 와해성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을 실제로 만들어나가는 것 역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부분을 없앴기 때문이라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이 기술은 너무나도 파괴적이며, 혁신적이기 때문에 인간의 행위양식 자체를 바꾸어나갈 수 있는 잠재력-예를 들면, 생각의 외주화로 말미암아지는 개인 존재의 옅어짐-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적 혁명의 안에서 우리는 이 기술이 갖는 의미가 어떠한지, 어떻게 우리, 인간 존재는 이 기술을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질문하고, 답하고, 적절하게 사용해야 할 의무가 부여되는 존재로 여겨질 수 있다.


들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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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몇 번이고 ChatGPT를 사용하고 있다. 이제는 일상의 업무를 GPT 없이 처리하는 것이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GPT를 사용하면서 업무 시간 안에 더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게 되었고, 작성하는 문서들의 수준은 더욱 높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회사에서는 팀원들이 모두 같이 사용하는 GPT계정을 쓰고 있는데, 팀원들의 업무 현황을 확인하고, 디자이너와 개발자, 기획자, 대표가 동시에 다른 사람들이 어떠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고, 뭘 생각하고 있는지를 분석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2]

이렇게 좋기만 한 GPT이지만, 요즘 종종 의문이 들곤 한다. GPT가 쓰는 글들과, 내놓는 의견들이 "내가 하는 생각과 너무나도 유사하다"는 것이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팀원들과 같이 하는 생각은 "내가 생각하는 것인지, GPT가 생각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정말로 요즘은 GPT가 내놓는 글들이 너무나도 수준이 높고, 내가 할법한 생각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에, 내 생각인지 GPT의 생각인지 모르게 돼버리는 순간들이 찾아오고는 한다.


생각을 외주화 시키고, 나의 소유라고 여겨지는 생각을 모호화하는 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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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나누고 나누다 보면, 내 생각이 정말로 거기까지 뻗어나간 것인지, GPT가 생각을 한 것인지 의심이 들고는 한다. 생각의 외주화의 시작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GPT가 제공하는 가이드라인을 따라가기만 했을 뿐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생각 자체가 외주화 되고 있는 것이다.


[4]

데카르트의 제1 원리, 성찰의 과정에서 발견된, 근원,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개인적으로는 중요한 원리로 여긴다. 인간이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신이 없이 인간이 어떻게 존재의 의미를 담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유일한 해답인 "생각하는 나"를 통해서 불확실하고, 의심가능한 세계에서 찾아낸 존재를 정당화할 수 있는 해답은, 챗지피티로 말미암아 새로운 의심의 체계로 들어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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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이고, 생각에 실존의 의의를 두고 있는 나는, 이러한 생각의 외주화에 대해서 상당한 경계심을 갖고 있다. 인간의 존재를 세계에 정당화하는 것은 생각이라는 행위이고, 각 개인이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는지, 생각의 흐름이 어떠한지에 대한 부분이 개인을 완성하는 존재라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개체인데, 챗지피티로부터 시작된 개인의 생각과, 챗지피티로부터 만들어진 생각이 혼재화되는 시점은 인간 개인의 존재가 과연 어디에 기반을 두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한다.

챗지피티와 논의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생각들은 너무나도 나에게 맞춰져 있는 생각이지만, 이 과정에 대한 편의성을 갖고 챗지피티에게 점점 더 생각에 대해서 의존하고, 의사결정의 과정에도 질문하고 내 생각을 확인하는 과정이 많아져가는 흐름 안에서 나의 주체적인 생각이 과연 실제로 이렇게 흘러갔을까? 챗지피티가 생성한 답변이 나의 생각이라고 믿어버리는, 생각 자체를 외주화 하여 그 결과를 내 것인 거처럼 행위하고 있는 상황은 아닐까라는 의구심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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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다른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빌려보도록 하자. 그러면 인간 사고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결국 이 사고는 개인적 사고에서 세계적 사고로 연결되기 위해서, 언어라는 레이어를 필연적으로 거쳐가야 한다. 언어-그림 등을 모두 포함한-는 생각을 전달하기 위한 미디어다. 개인의 것에서 머물지 않고 세계와 소통하고 논의하기 위한 최적의 도구로 볼 수 있는 언어는, 우리의 사고체계의 한계이고, 언어를 넘어서 사고하는 것-정확하게는 언어를 넘어서 사람들에게 생각을 전달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거대 언어모델의 등장으로 인해서 사고의 핵심 도구자체가 영향을 받고 있고, 이는 전 인류적으로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현상으로, 인류의 사고 흐름을 지배하는 새로운 권력형태의 등장으로 거대 언어모델의 등장을 해석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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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러한 현상은 인터넷 사회에서 가장 빠르게 등장하고 있다. 챗지피티의 등장 이후 특정 단어들의 사용 빈도수가 증가한 현상이 관찰되고 있으며, 이는 정보를 전달하고 사고가 정제되어 올라오는 매체에서 특히 관찰되고 있다. 개개인의 생각이라는 것이 없어지고, 생성형 인공지능의 하나로 합쳐지는 AI시대의 시작이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등장 이전에, 팟캐스트나, 브런치 등에 올라오는 글은 개개인의 사고를 담고 있는 산물로 여겨졌으나, 생성형 인공지능에 의존해서 작성되는 글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는 개개인의 생각들을 볼 수 있는 것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으며, 생성형 인공지능에게 의존할수록 우리의 사고 패러다임 자체를 챗지피티에게 상당 부분 권리를 위임하게 된다는 의심을 떨칠 수 없다.


우리는 어떻게 GPT를 사용해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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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는 사고의 주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시도를 해야 할까. 위에까지 가 챗지피티로 인한 변화에 대한 고찰이었다면, 고찰을 실천적 행위로 옮겨올 필요가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을 당연히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는 노릇이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인간의 효율 자체를 올려줄뿐더러, 하기 귀찮은 일들을 빠르게 진행해 줄 수 있는 훌륭한 비서의 역할을 담당해주기도 한다.

우리가 그런 모든 편리함을 버려야지만 사고의 주권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챗지피티를 현명하게, 사고의 주권을 지키면서 한 단계 더 높은 생각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다음의 실천 방향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9]

챗지피티는 결국 피할 수 없는 도구이고, 우리 일상의 깊이에 이미 자리 잡은 일상적 도구가 되었다.

챗지피티는 기본적으로 사람에게 맞춰진 답,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답을 하는 존재로 학습되었다.

그렇기에, 우리가 애초부터 우리 의견에 대한 비판적이고, 동료적인 존재로 사용한다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챗지피티를 정답 기계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자극하는 대화상대로 두기 위한 방법은 프롬포트 엔지니어링에, 의견에 대한 긍정 1개, 부정 1개 등의 의견을 제시하도록 하는 등의 프롬포트 작성이 가능하다. 프롬포트의 작성법 및 메모리에 대한 관리법은 다른 글들이 많기 때문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챗지피티를 사용하면서 개인적으로는 본인의 생각과, 어떠한 결과 문서를 만들지를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작성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결괏값에 대한 일차적인 생각을 갖춰나간 상태로, 문서작성을 빠르게 하는 도구정도로 사용한 뒤에, 관련된 검증을 해나가는 방법을 나는 선호한다.


[10]

마치며,

챗지피티의 등장으로, 우리 인류는 인류의 지식을 한 곳에 모아둔 하나의 레이어를 얻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면 그 강력한 인류 지식의 모임체를 우리가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그리고 거기에 개인의 지식을 어떻게 더해나갈 것인가는 우리에게 던져진 인류의 과제라고도 볼 수 있다.

나는 생각하는가, 고로 존재하는가?

개개인의 존재에 대해서 답해나갈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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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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