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atsbie Jan 07. 2022

주제 : 90년대생

언론고시 작문

언론고시 중 작문 시험을 준비할 때 작성했던 글입니다.

작문이란 랜덤 주제 하나를 갖고 자유롭게 재밌고 독창적인 글을 작성하는 것입니다. 


제한시간은 60분으로 두고 작성했으며, 언론고시 준비생분들이 이 글을 보며 이런 글도 있구나, 하는 짧은 인상만 받아도 좋을 것 같단 생각에 올립니다.




 “ㅇ ㅏ,,아 앗쌀라말라이쿰!!!!!” 

다짜고짜 강남 한복판에서 크게 주문을 외치는 한 사람. 도포를 곱게 둘러매고 머리에는 상투를 튼 것이 예사 사람은 아닌 거 같다. 그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바야흐로 1890년, 비운의 땅 조선에 장차 큰 꿈을 꾸게 될 사내아이가 하나 태어났다. 그렇다. 그는 바로 무적의 90년대생, 1890년생 ‘이구년’ 이었다. 그는 큰 탈없이 무럭무럭 자랐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그는 곧 멋진 청년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임금이 권력을 쥐고 모든 것 위에 군림하는 세상이 불합리하다고 느낀 몇 안 되는 청년 중 하나였다.

“주()상전하 만세!”

천지가 개벽하고 외세가 침략하고 세상이 바뀌고 있는데, 늘 주상전하를 하늘처럼 여겼던 부모때문이었을까. 구년이는 본인의 신분에 갇혀 세상을 직시하지 못하는 것만 같은 사람들이 너무나도 원망스럽기도 했다.


“이 나라 조선은 반드시 봉건제도로부터 벗어나 국민들에게 자주적인 힘을 돌려주어야 합니다!”

그는 미래에 곧 얻게 될 반봉건 사회를 꿈꾸며, 매일 밤마다 동지들과 모여 혁명을 계획하기도 했다. 그에게 다가올 조선의 미래는 낭만이자 꿈과 희망이었다. 모두가 신분제도에서 벗어나 평등해지는 세상, 그는 그런 미래를 간절히 소망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 날도 구년이는 동지들과 혁명 계획을 세우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본인의 집 대문 앞에 정말 우연찮게, 하나의 두루마리 편지가 놓여있는 걸 보게 됐다. 새하얀 종이에 곱게 매듭지어진 실까지. 호기심이 간 구년이는 조심스레 편지를 펼쳤고, 그 편지에는,,!

‘희망찬 미래의 조선을 보고 싶나요? 그렇다면 이 편지를 손에 쥐고 주문을 외워보세요. “앗쌀라말라이쿰!”’

이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누가봐도 수상쩍은 이 편지, 보통 사람들이라면 무시했겠지만 구년이는 달랐다. 그는 마음 속에 혁명의 불꽃이 자리한 뜨거운 청년이었다. 그는 편지의 내용에 곧장 매료되어 버렸고 바로 주문을 외쳤다.

“ㅇㅏ,,아 앗쌀라말라이쿰!”


그 순간, 구년이의 시야가 하얗게 흐려지면서 살짝 정신을 잃었다. 그러고 곧 들려오는 시끄러운 사람들의 목소리에 간신히 눈을 떴다. 꿈뻑꿈뻑, 눈을 떠서 자리에서 일어날 즈음,

“저기요,,! 저기요!! 도포 둘러싼 분! 여기 와서 저 좀 도와주세요!”

구년이와 나이가 비슷해보이는 여자가 달려와 구년이의 팔뚝을 움켜쥐었다. 아직 정신도 제대로 못 차렸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간신히 구년이는 정신을 붙들었고, 그의 시야의 펼쳐진 광경은,,

“야, 적자나면 너가 메꿀 거냐고! 돈 받고 싶으면 내 말 들어!”

라고 고함치는 누군가의 모습이었다. 그 앞에서 구년이의 팔뚝을 움켜쥔 여자는 벌벌 떨며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어깨 너머 보이는 현수막. 

“2021년 신장 개업 기념 폭탄 할인 중!”

그 때 구년이는 깨달아버렸다.

‘아, 이 곳이 ‘미래의 조선’이구나’


“야! 너 시급도 꼬박꼬박 받아먹는게 시키는 것도 제대로 안 하지? 요즘 90년대생들이 말이야, 돈만 받아먹고 제대로 일 할 생각은 안 해요!”

고함치는 사람의 언성은 점점 높아져갔고, 그녀의 안색도 점점 파리해졌다. 구년이는 얼른 정신을 차려 고함치는 사람에게 당당히 외쳤다.

“도대체 당신 누구요? 누군데 저렇게 이 청년에게 함부로 대하는 것이요?”

그러자 그가 이렇게 답했다.

“내가 쟤의 점주()다! 쟤는 알바생이고!!!!”


 잠시 후 지나가던 시민이 신고한 덕분에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고, 사건은 일단락 됐다. 순식간에 펼쳐진 광경에 구년이는 반쯤 얼이 빠진 채 어딘가로 걸어갔다. 사실 어디로 가는 지 구년이 그 스스로도 몰랐다. 그냥 무작정 발길이 닿는대로 걸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구년이는 꽤 적잖이 충격을 받아버린 것이었다. 분명, 구년이가 상상했던 ‘미래의 조선’은 이러면 안 됐다. 모두가 동등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이어야만 했다. 구년이는 방금 본인이 본 광경이 미래의 조선일 리가 없다고, 애써 부정하면서 계속, 계속 걸었다.


 구년이는 하염없이 걸었다. 강도 하나 건너고, 도로도 몇 개 지나치고. 그렇게 한참을 걸어 을지로에 도착했다. 그렇게 그는 100여년 전 자신이 대자보를 붙이러 밥 먹듯 드나든 탑골 공원이 바로 옆에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을지로에 입성하게 되었다. 여전히 멘붕에 빠진 구년이었지만, 안쓰럽게도, 헤어나올 틈도 없이 또 다시 시끄러운 광경을 목격하게 됐다.


“낼 돈 없으면 나가! 너 말고도 들어올 세입자 세고 셌어!”

“사장님, 한 번만, 이번 한 번만 월세 미뤄주세요.”

“그 말이 대체 몇 번째야? 이젠 나도 못 버텨. 돈 못 내겠으면 나가!”

역시나 여기서도 일방적으로 소리를 외치는 누군가와 벌벌 떠는 누군가가 있었다. 

“내일 바로 매물 내놓겠어. 그런 걸로 알아!”

그러자 싹싹 빌던 사람은 이내, 눈물을 터뜨리며 “흑흑, 청년자금 대출은 이제 어떻게 같아나가나” 라며 울음을 터뜨려버렸다. 이 모습을 지켜보다 복장이 터질 것 같던 구년이는 참지 못하고 그에게 다가가 따졌다.

“도대체 당신이 누군데 저 청년에게 저렇게 윽박지르는 것이오?

“나는 건물주()다! 쟤는 세입자고! 너가 쟤 대신 돈 내줄 거야? 아니면 꺼져!”

구년이는 건물주()의 윽박에 지레 놀라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그렇다. 미래의 조선에도 여전히 는 군림하고 있었다. 반봉건을 간절히 외쳤던 구년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이게 정녕 본인이 그렸던 조선의 미래란 말인가. 구년이는 믿지 못한 채 자리에 멍하니 서있었다. 그런데 그 때 구년이 머리에 생각이 번뜩였다.


‘잠깐. 지금은 2021년, 고작 100여년 뒤의 조선이 아닌가. 만약  200년, 300년, 아니 500년 뒤로 간다면, 그 때는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구년이는 다시 자신감에 찬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주문을 외치기 시작했다. 

“ㅇ,,ㅇ ㅏ,,아 앗쌀라말라이쿰, ㅇ ㅏ,,아 앗쌀라말라이쿰, 아,,앗쌀라말라이쿰, 앗쌀라말라이쿰, 앗쌀라말라이쿠움~!!!!!”

500년 뒤로 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언론인을 위한 작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