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잔 하실래요?
인도에 와서 첫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새해 첫날을 50번 넘게 맞이하다 보니 한 해를 선물로 받는 설레임보다는 점점 무거워지는 세월의 무게로 잘 맞지 않는 셔츠 깃처럼 익숙하지가 않습니다. 인도사람들은 마시고 죽자는 한국의 망년회, 송년회도 없고 새해 첫날부터 한잔 마시는 단배주 행사도 하지 않고 평범한 하루로 한 해를 마치고 똑같은 일상으로 한해를 시작하더군요. 기독교 신자들이 적고 회계년도가 4월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연말 분위기가 없더군요. 또한 추운 날씨와 스모그로 인하여 야외행사나 모임이 그리 활발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호텔이나 상가에는 크리스마스 트리와 캐롤도 울려퍼지고, 젊은 층들은 나름 파티도 하고 모임도 하면서 성탄절과 신년을 즐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도 겨우살이는 스모그로 숨쉬기도 힘이 들지만 추위 또한 만만치가 않습니다. 영하를 밑도는 강추위는 아니지만 대략 8도에서 15도의 싸늘한 날씨의 연속입니다. 40도가 넘는 여름철 혹서기를 대비하여 대리석을 바닥에 깔고, 보일러나 난방시설이 전혀 없다보니 싸늘함이 추위로 바로 이어지고 뼛속까지 추워져서 오히려 집 바깥이 집안보다 더 따뜻한 경우도 있습니다. 가끔 빈민가에서 동사자도 나오고 있고 한국의 겨울처럼 두꺼운 패딩을 입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따뜻한 차 한 잔이 간절한 겨울입니다. 인도에 와서 좋은 것들 중의 하나가 바로 차 문화입니다. 남녀노소, 신분을 모두 떠나 차 마시는 일이 일상입니다. 우선 차라는 것이 오랜 역사와 기간과 역사, 그리고 나라마다 먹는 종류나 방식이 다르다 보니 웬만한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서는 아는 체 하기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책, 너튜브, 인터넷에서 찾은 지식을 배경으로 설명해보겠습니다.
우선 문헌을 근거로 차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8세기경 중국의 육우가 지은 ‘다경’이라는 책에서 5천년 전인 기원전 2,700년 경에 '신농'이라는 사람이 물을 끓이다 찻 잎이 떨어지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마시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Tea의 어원은 중국 샤먼지역(남쪽 푸젠성 인근)의 Tay/te(테)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중국이 차의 원조이고 가장 많은 차를 생산하다보니 육안과편, 동정벽라춘, 서호용정, 황산모봉, 안계철관음, 군산은침, 기문홍차, 신양모첨, 도균모첨 등 10대 명차가 있고, 그 밖에도 지역별로 약 200여 종류의 차가 있습니다. (중국 240만톤, 인도 125만톤 생산/전 세계 6백만톤 생산)
일찍부터 차는 기호식품으로 동․서양 교역의 주된 품목이었고 서양에서 느끼는 중국의 차는 그야말로 신약과 같은 존재로 고가이면서, 사치품으로 폭발적인 인기였다고 합니다. 역사를 차분히 되짚어 보니 서양의 차 문화는 '정복의 역사'이고 동양은 '나눔의 역사'인 것을 느꼈습니다. 또한 차가 관세행정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어 차나무와 씨앗이 세관의 통관절차를 거치지 않고 관세 국경의 빈틈을 헤집고 밀수에 성공하여 여러 나라로 퍼지게 되어 세계화에 기여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14세기경 몽고의 확장으로 비단길이 막히자 15세기부터 새로운 무역과 탐험을 시작하는 대항해 시대가 시작됩니다. 조금 더 설명 – 지역별 거점,아메리카 스페인, 포르투칼, 네덜란드, 영국 등 열강들이 각축을 벌이다가 영국이 스페인과 칼레해전(1588년)에서 승리하면서 해가지지 않는 나라인 대영제국으로 발전을 하게 됩니다. 영국은 고가의 중국산 차를 수입하며 생긴 무역적자를 메우기 위하여 중국에 아편을 수출다가 2차례의 아편전쟁(1차 1840, 2차 1856)을 벌이게 됩니다. 전쟁결과 영국이 승리하여 난징조약, 베이징 조약, 텐진조약 등의 불평등조약을 맺으면서 중국과의 무역에서 우위를 점하게 됩니다. 또한 청나라가 영국에 의하여 무너지는 사건이 동 아시아 국제정세의 판이 크게 바뀌게 되었고 중화사상이 흔들리면서 본격적인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중국에 대한 영국의 통상압력만큼 인도에 대한 식민지 정책과 수탈도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영국은 인도 아쌈 지역에 차가 생산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안정적인 수급을 위하여 브루스라는 사람을 보내어 대규모 현지생산과 제조계획을 추진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차의 중요성을 감안, 인도 현지화 실패를 우려하여 중국 차나무를 인도로 몰래 들여오는 플랜B를 추진하였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자그마치 2만 그루가 넘는 차 묘목을 세관의 수출신고를 하지 않고 인도로 몰래 반입하여 다즐링 지역에 이식하였고, 이중 일부가 뿌리를 내리며 플랜B 또한 대박을 쳤고 영국은 명실상부한 차의 글로벌 공급망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이에 비하여 한국과 일본은 나눔의 역사로 볼 수 있습니다. 예전부터 차가 고가이고 건강에 좋다는 생각과 중국의 발전된 차 문화를 보면서 상류문화로 자리를 잡았을 것입니다. 제사 이름도 차례, 다례라고 붙인 것을 보면 차가 상당한 위치의 음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 불교와 함께 차 문화가 전래되었고 차 나무와 씨앗도 들어와서 우리나라의 하동이나, 벌교 등으로 퍼졌고 거의 2천년 이상을 자생하여 우리의 입맛에 맞는 차 문화로 자리매김 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 백제와 신라가 일본에게 차와 차문화를 전달하게 되었고 지금도 말차(가루녹차)라는 형태의 차와 다도문화를 왕성하게 유지하였다고 합니다.
또 한 가지 우리나라, 인도와 교역의 역사에서 빠뜨릴 수 없는 허왕후 이야기가 있습니다. 서기 48년에 인도 아유타국의 허황옥 왕후가 가락국으로 시집을 와서 김수로왕과 혼인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때 인도에서 차를 가지고 와서 전파를 했다고 하는 설도 있습니다. 참고로 허왕후를 기리기 위하여 지난 2018년에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 아요디아에 한-인도 합작으로 황후 기념관 착공식이 있었고 조만간 완성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인도로 와서 차의 단상을 보면 거리나 시내에는 수많은 찻집이 있습니다. 커피도 일부 생산되어 현지 전문점도 있고 미국계의 별 다방도 있고, 영국의 찻집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도를 대표하는 차로 북인도의 짜이와 남인도의 커피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짜이는 인도를 대표하는 국민차이자 전통차입니다. 인도에 있는 대한민국 대사관에서도 현지 직원들의 요청으로짜이왈라(짜이 배달부)가 오전, 오후 두번, 직접 사무실로 방문하여 방마다 돌면서 제공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짜이도 알고 보면 영국 침략의 역사중 하나였습니다. 좋은 차는 다 영국으로 가져가고 남은 저급의 찻잎을 이용하여 향신료와 우유를 첨가하여 만들었고 영국식 티타임처럼 인도의 노동자에게 제공한 것이 지금의 짜이를 즐기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남인도 커피는 자생하는 커피를 볶아 팔팔 끓여서 여기에 설탕 등을 넣어 만든 것으로 단맛이 무척 강합니다. 북인도의 짜이처럼 아침부터 찐한 커피를 마시고 하루를 시작하는 일과가 일상입니다. 알고 보니, 남인도 커피도 역시 밀수로 시작되었습니다. 17세기경 무슬림 사제 바바부단이라는 사람이 7개의 커피원두를 몰래 들여와서 심었고 이것이 번성하여 현지화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길고 긴 역사 속에서 수많은 차와 커피가 공존하는 인도를 보면서 다시 한 번 다양성에 놀랐습니다. 또 문화를 수용하는 방식이나 즐기는 것에 대한 자율성도 부럽기도 하구요. 북인도 짜이가 영국 차 문화를 전달받은 수동적인 역사에 대비하여 자생하는 커피를 현지화하여 즐기는 남인도 능동적인 커피문화도 색달랐지만 재미있었습니다. 덥고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누구나 여유있게 즐길 수 있는 차 문화를 만들고 차를 마시며 고단한 삶의 무게를 이겨내며 살아가는 풍경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덕분에 저도 한 잔의 차를 마시면서 글을 정리하는 여유도 있네요. 머나먼 인도에서 코로나로 어려운 때에 한 잔의 차가 저를 지탱해주는 힘이자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한국도 날씨도 춥고 코로나로 어려운 시기에 따뜻한 한 잔의 차를 벗 삼아 마음을 달래시면 어떨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호랑이의 포효처럼 승승장구를 기원합니다.
22년 1월, 인도에서 소전(素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