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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살이-스물세달차(23.7월)

인도살이 60개월을 향하여

by 소전 India Apr 01. 2025

인도살이 2년을 한 달 앞두고 있습니다. 인도는 느리지만, 인도에서 지내는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지난 21년 8월 8일, 코로나가 한참 창궐할 때 10명 남짓의 승객이 탑승한 비행기를 타고 인도에 왔습니다. 위험하고 생소한 나라지만 꼭 살아서 귀국하겠다고 비장하게 결심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근무기간은 3년이었습니다. 2년이 지나면 인사부서와 협의를 거쳐 1년을 더하여 3년 근무를 마치고 돌아가도록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2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는 인도의 중요성이 높아져 파견이 아닌 정식 직제로 변경되었습니다. 지원자를 뽑는 공고문을 보고 돌아갈까, 어쩔까 많은 고민이 들었습니다. 겨울철 스모그와 여름 무더위도 힘들었고 가족,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들이 그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인도에 대한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쌓아 전문가로 거듭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습니다. 가족과 주위 동료들의 의견을 참고하여 3년을 더 근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느림과 기다림의 미학]
느림과 기다림은 제가 처음 배운 인도살이 방식입니다. 인도는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느립니다. 시간은 물론 사람들의 행동도 느립니다. 교통체증이 심한 델리 시내는 기본적으로 30분 이상 느림의 여유가 필요합니다. 회의나 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이상기후 영향으로 갑자기 쏟아진 비로 인해 30분 거리를 두 시간이 넘게 소요된 적도 있었습니다. 뭄바이나 첸나이 등 지방도시에 출장을 가보면 델리가 그나마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황이 열악합니다. 느리다 보니 기다림도 필요합니다. 차에서 기다리는 것도 그렇고 업무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인도 공무원에게 접견신청을 하면 한 번에 응답이 오는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두세 번 연락을 해야만 답변을 받아낼 수 있습니다. 담당부서와 담당자를 찾는 것도 쉽지 않지만 찾았다고 해도 부서 직원이 휴가를 가서 전달이 되지 않았거나, 인사이동이 되어 붕 떠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느림과 기다림으로 얻어지는 의외의 장점도 있습니다. 업무가 정교해지고 필요한 일과 불필요한 일이 분명해집니다. 급하게 진행하다 생기는 실수나 오류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겠지요. 느림과 기다림으로 살아가는 인도살이지만 저와 협업하는 인도 공무원들의 업무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인도 공무원들은 필요한 일을 바로바로 요청합니다. 계속하여 전화와 문자로 독촉하는 것을 보면 느린 것이 DNA에 각인된 것은 아닌가 봅니다.

소나기로 침수가 된 도로 (23.7.14, 인도 뉴델리 구르가온)소나기로 침수가 된 도로 (23.7.14, 인도 뉴델리 구르가온)

[더러움과 청결의 차이]
 인도에서 2년을 살면서 아직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바로 더러움입니다. 거리에 온통 쓰레기 천지에 노상방뇨 냄새가 코를 찌르고, 공중화장실에는 갈 엄두도 나지 않습니다. 한국에 잠시 귀국했을 때 느꼈던 인천공항 화장실의 깨끗함이 지금도 간절합니다. 뉴델리 남동부에 위치한 툴라카바드(Tughlakabad) 컨테이너 야적장(ICD)에 방문한 경험은 이제껏 가장 심도 있는 불결함을 선사했습니다. 툴라바카드 야적장에는 뭄바이 등 항구에 도착한 컨테이너들이 운송되어 수입통관을 하기 위해 대기하는 세관의 장치장입니다. 우리나라 의왕에 있는 ICD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맡은 이상한 냄새에 바깥을 보니 거대한 쓰레기 산이 있었습니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정말이지 처음 맡아보는 비강 안쪽까지 콕콕 찌르는 이상한 냄새와 다양한 크기의 파리들이 여기저기 들끓는 모습을 보고 눈과 코가 깜짝 놀랐습니다. 더운 바람이 불어오면서 비릿하면서 머리가 아파오는 생전 처음 맡는 악취에 정신이 어질어질했습니다. 인도에서는 분리수거를 하지 않습니다. 음식물이든 플라스틱이든 별다른 구분 없이 함께 버려집니다. 뉴델리에 거주하는 2천만 명이 배출하는 쓰레기의 양도 물론 많지만 그 많은 쓰레기가 분리수거되지 않고 섞이다 보니 상상 이상의 결과를 낳은 듯합니다. 걸레를 쓰는 방식도 정말 놀랍습니다. 우리나라는 주방, 화장실, 방 등 장소마다 다른 걸레가 있지만 인도는 하나로 다 사용합니다. 전통시장에 가면 고기를 써는 칼, 점원 손, 도마, 칼도 걸레 하나로 닦고, 시커먼 국물이 줄줄 흐르는 걸레를 손으로 짜는 모습을 보면 시장 갈 마음이 사라집니다. 길거리에서 보는 쓰레기, 소 분비물 등등이 엉켜 있는 것을 보면 정말 정이 쿵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사실 깨끗함과 더러움은 문화적인 차이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인도사람들은 자기 손이 세척한 포크나 나이프보다 깨끗하다는 것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인도 사람들은 깨끗하게 씻어낼 수 있는 표면의 더러움보다는 내적인 오염, 자아의 더럽혀짐에 더욱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고 합니다. 더러움과 아름다움의 차이는 지역과 역사에 따라 상대적입니다. 여성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하이힐은 중세시대 거리에 널려진 오물을 피하기 위하여 발명되었고, 챙이 넓은 아름다운 모자도 투척하는 오물을 피하기 위하여 고안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청결문화도 오랜 역사를 가지지 못했고, 더러움과 깨끗함의 차이가 마음에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더러움에 대한 벽은 쉽게 허물어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인도 뉴델리 동부에 위치한 쓰레기가 산처럼 쌓인 쓰레기 하차장(필자 직접 촬영)인도 뉴델리 동부에 위치한 쓰레기가 산처럼 쌓인 쓰레기 하차장(필자 직접 촬영)


[(, karma)과 윤회(輪回, samsara) 사상]
가끔 차가 정차할 때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납니다. 거지들이 구걸을 할 때도 있고, 어린 남자아이가 올 때도 있고, 갓난애를 업은 어린애가 두드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고가도로에서 이불을 펴고 잠을 자는 사람도 있고, 더운 여름날 뙤약볕에서 삽질을 하며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반면 시세가 1조 원에 육박하는 화려한 집에서 호위호식하는 인도 최고의 부자인 무케시 암바니(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 회장)도 있습니다. 인도가 카스트라는 신분제도에 따라 자기 신분에 맞는 행동이 결정되고 그대로 자식에게까지 세습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카스트는 인도 사람들의 DNA에 각인되어 있고 인도를 움직이는 거대한 축인 것 같습니다. 인도사회는 카스트라는 견고한 계급제 기반 위에 업과 윤회사상이 꽈배기처럼 꼬여있는, 닫힌 사회인 듯합니다. 업(業, 카르마)에 대해 말하자면, 인간이 현생을 살아가며 선업을 쌓으면 내세에는 더 좋은 신분으로 태어나고, 악업을 쌓으면 내세에는 더 비천한 신분으로 태어납니다. 현세의 의미 있는 삶이 내세의 삶을 결정한다는 희망적인 부분도 있지만, 현세의 비천한 삶이 과거 악행의 결과라는 결정론적인 부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영혼이 죽지 않고 수레바퀴처럼 순환한다는 윤회사상도 큰 축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현재 생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음 생을 위하여 오로지 신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보면 이만큼 효율적인 통치 시스템은 없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네가 현재 처한 불행한 상황은 과거에서 나쁜 행동을 많이 했으니 어쩔 수 없으니, 다음 생을 위하여 열심히 네 맡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 카르마와 윤회의 심오한 이론과 철학은 이해할 수 없지만, 인도 사람들은 카르마와 윤회 속에 사는 것을 필연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살아도 한평생, 죽어도 한평생으로 많은 일을 이뤄야 하고,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하여 엄청난 노력을 합니다. 인도에서 삶의 작동방식이 우리와는 완전히 다르고,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철학이 존재하고 있으니 많은 이들이 깨달음의 장소로 많은 인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카르마(윤회) 조각들 ( 출처 : 위키디피아)카르마(윤회) 조각들 ( 출처 : 위키디피아)


[잘못 입금된 월세 돌려받기]
  아직 인도에 2년밖에 살지 않았고, 직장과 집을 다니면서 책을 많이 읽지도 않고 넓고 넓은 인도의 반에 반도 가보질 못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아직 인도의 좋고 나쁨을 평가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인도도 사람이 사는 땅입니다. 나쁜 사람들도 있지만, 의외로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인도에 살면서 황당했던 사건은 “잘못 송금된 월세 돌려받기 사건”입니다. 인도는 전세가 아닌 월세로 임차료를 내는데, 저는 3개월 선불로 주고 있습니다. 한 번에 주는 월세가 1천만 원이 넘다 보니 개인수표를 발행해서 주면 은행에서 확인전화가 오는 번거롭습니다. 수표책 쓰는 것이 익숙하지 않고, 숫자나 영문 글자도 서로 다르게 이해를 하다 보니 추심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반환되는 경우도 있어 주로 인터넷 뱅킹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날은 무엇에 씌었는지 집주인의 계좌와 영문이 비슷한 인터넷 회사계좌로 잘못 클릭해서 입금한 것이었습니다. 보름쯤 지나서 집주인으로부터 임차료를 달라는 연락이 왔고, 송금증명서를 보내놓고 확인을 해보니, 엉뚱한 곳으로 입금이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거래은행에 연락을 해보고, 상대방 은행에 연락을 해보았지만, 이미 이체가 끝난 거래라 아무런 조치를 할 수 없다고 하고, 계좌주인이 나 몰라라 해도 반환소송을 해서 찾아야 한다는 불길한 말만 하더군요. 부랴부랴 인터넷 회사 본사를 찾아 현지인 변호사를 대동하고 한 시간 넘게 차를 타고 불안불안 협상을 하러 갔습니다. 한참을 기다리니 회계 담당자가 나오고 변호사가 자료를 들이밀며 경황을 설명했습니다. 직원은 여러 사람을 불러 통장내역을 확인하고 절차를 상의하더니 바로 송금을 해준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아마 개인이 아닌 회사 통장으로 회계처리에 문제가 있었는지 그다음 날 바로 입금이 되었습니다. 집주인에게 입금을 해주고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그래도 인도에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
지금도 인도에 대하여 많은 관점과 이야기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뛰어가는 코끼리라는 사람도 있고, 여성비하가 심하고 강간천국이라는 사람도 있고, 더러운 나라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2년을 살면서 느낀 점은 정말 인도를 잘 아는 사람들이 많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도에서 20년 이상 살고 있는 분들도 한결같은 이야기가 잘 모른다는 답변이 많았습니다. 저는 인도가 우리와는 다른 환경, 역사, 종교를 가진 나라이고 너무 큰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우리는 인도의 정치가나 기업가 등과 교류할 기회가 적었습니다. 외교적으로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라고 상당히 밀접한 나라이기는 하지만, 문화, 공연, 연구 등 다른 분야에서 교류는 초기 단계인 것 같습니다. 인도에 여행을 와서 남기는 유튜브 동영상에 나오는 사람들이 인도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현재 인도는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초기 경험을 공유하는 정도인 것 같습니다. 코끼리의 상아를 만진 장님과 꼬리를 만진 장님의 입장은 완전히 반대가 되겠지요. 또 논쟁을 해봐야 자기의 경험에 한정되기 때문에 올바른 결론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많은 장님들이 코끼리 만진 경험이 많아진다면 얘기는 달라질 것 같습니다. 반복이 되고 더 많은 정보가 생성되면서 후대의 사람들이 인도를 더 쉽게 알아가는 방편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아마 제가 외람되지만 3년을 더 있겠다고 한 것도 이러한 경우의 수를 늘려서 저도 장님이 되어 여기저기 만져본 소감을 알리고 싶습니다. 장님들의 정보가 쌓여서 인도라는 거대한 코끼리를 여기저기 상세하게 알아서 교류에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인도 살이 36개월에서 60개월로 늘어나서 부담은 되지만, 한 달, 한 달 서두르지 않고 소와 같은 뚝심으로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2002년 인도라는 거대한 나라를 우리나라에 알린 류시화 시인의 ‘지구별여행자’에 나오는 시 한 구절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내 인생의 황금기는 여행에 있었으며,
특히 인도 여행은 그 황금기의 열매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삶을 배웠고, 세상을 알았다.
"굿모닝 인디아!'
 
2023년 7월, 인도에서 소전(素田) 드림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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