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직물의 천국 - 인도
인도에도 봄이 왔습니다. 인도 겨울은 석 달 정도로 짧고 영하의 기온은 아니지만 한국 만큼이나 춥습니다. 겨울을 나면 날수록 더 추위를 타는 것 같습니다. 추위와 스모그로 침침했던 겨울이 끝나고 푸른 하늘과 따스한 바람이 불어오는 봄 날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인도의 봄은 2-3주 남짓으로 짧고 바로 여름으로 접어듭니다. 인도의 더위는 정말 뜨겁습니다. 습도가 높지 않아 직사광선을 피하면 조금 서늘하지만, 그래도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는 화끈합니다. 한국에서 가져온 여러 가지 옷을 입어 봐도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인도의 더위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긴팔을 입으면 덥고 땀이 차고, 짧은 팔을 입으면 햇볕에 그을려서 햇빛이 강도나 통풍을 고려한 옷 입기가 힘이 듭니다. 상의가 길게 내려오는 면으로 된 쿠르타와 면 티셔츠를 사서 입어보았습니다. 가볍고 시원하고 통풍이 잘되어 땀도 잘 흡수되어 보송보송합니다. 거기에 화려한 색상과 디자인이 정말 다양해서 또 다른 인도를 느낄 수 있습니다. 편안한 인도의 옷을 보면서 면 직물의 긴 역사를 다시 한번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유럽을 깨운 인도 면직물]
인도의 면직물 사업은 세계 최고의 품질과 역사를 자랑하는 인도의 대표적인 사업입니다. 넓은 토지와 노동력을 중심으로 면화 산업이 일찍부터 발달하였고, 타지마할과 아잔타 석굴을 만든 손 기술을 접목하여 면직물 산업이 꾸준하게 성장하였습니다. 16세기 유럽 중심의 대항해 시대에는 인도의 면직물이 유럽을 거쳐 세계로 진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유럽 사람들이 동양과 교역에서 눈독 들인 것은 다름 아닌 후추와 정향 등 향신료였습니다. 오랫동안 소금으로 먹던 고기가 향신료와 함께 먹는 고기는 새로운 먹거리의 혁명으로 이어졌습니다. 동남아에서 향신료를 판매하는 나라에서는 향신료 판매대금을 인도의 직물로 받기를 원했습니다. 인도에서 직물을 구매해서 다른 나라에서 향신료를 구매하는 발달하면서 자연스럽게 인도 직물이 주된 교역품이 되었습니다. 일본, 태국 등의 왕실에서 디자인이나 문양을 직접 주문 제작 하는 등 기술도 수요자의 니즈에 맞추는 등 계속 발전했다고 합니다. 어떤 상인들은 향신료를 구하지 못해 빈 배로 돌아가던 도중 시장에 널려있는 면직물을 싣고 가서 유럽에 판매를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유럽에 도착한 인도의 면 직물은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당시 유럽은 대부분 양털로 짠 모직으로 제작된 옷을 많이 입었는데 무겁고 세탁, 보관 등 관리가 어렵고 염색도 힘들어 패션 감각을 표현하는데 많은 제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인도 면직물은 가볍고 세탁도 편리하고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이 가능하여 유럽에게 새로운 옷의 혁명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모슬린과 캘리코]
특히 인도 북동부 뱅골지역에서 생산되는 모슬린(Muslin)이라는 직물은 얇고 투명하기로 유명해서 인기가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얼마나 가볍고 얇은지 한 마(약 91cm)에 10g 정도 밖에 되지 않아서 풀밭에 펼쳐놓으면 옷감이 이슬에 젖어 아침이슬, 저녁이슬 등의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그들이 입어온 양모와 달리 가볍고 질기고 세탁도 쉬운데다 다양한 색채에 예쁜 무늬까지 있어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천상의 직물'이라고 감탄할 정도라니 그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상상이 갑니다. 면직물은 유럽인들에게 최상품으로 인기를 얻었고, 프랑스 혁명으로 처형된 마리 앙뜨와네트 왕비도 모슬린을 입은 초상화를 남겼다고 합니다.
캘리코(Calico)는 인도 남서부 캘리컷(Calicut) 사람들이 사용하는 옷감이라는 뜻입니다. 캘리코는 면화를 원료로 실을 짜 옷감을 만드는 인도산 목면입니다. 영국 동인도회사가 인도에서 싼 면직물을 배에 실어 런던에 갖다 놓으면 날개 돋친 듯 팔렸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저가의 인도산 캘리코를 커튼이나 식탁보로 사용했지만, 왕실에서 캘리코가 의복으로 사용하면서 일반 시민들에게도 유행으로 퍼졌습니다. 캘리코 가운데 꽃무늬 같이 밝고 다채로운 무늬를 채색한 인도 고유의 친츠(chintz)라는 면직물이 가장 인기를 끌었고 영국인 신사들은 칙칙한 모직 외투를 버리고 밝은 무늬의 친츠로 갈아 입었다고 합니다. 여자들도 화려한 색상의 캘리코 옷을 입고 새로운 유행을 주도해나갔다고 합니다.
[산업혁명과 식민지]
이러한 모슬린과 캘리코의 열풍으로 영국의 모직 산업은 큰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우선 인도의 면직물을 수입을 막기 위해서 관세를 부과하고 심지어는 매춘부에 인도 옷을 입혀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킬려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거대한 욕망의 흐름은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식민지 인도에서 착취해온 면직물로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되어 새로운 혁명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영국은 증기기관을 이용하여 모직산업에 쓰이던 방적기를 이용하여 면 방적기와 직조기를 연결하여 새로운 형태의 면직물 산업 클러스터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인도에 철도를 건설하여 질좋은 인도산 면화를 가져오는 경비를 줄여서 나름 대량 생산체계를 갖추었으나, 인도의 오랜 전통과 경험을 가진 숙련공의 품질을 따를 수가 없었습니다. 영국은 잔혹하게도 인도 기술자의 엄지 손가락을 자르는 등 갖은 방법으로 탄압을 하였고 면화 수탈을 하기 위해 건설한 철도를 통하여 영국의 값싼 면직물이 인도로 물밀듯이 들어왔습니다. 유럽을 뒤흔든 면직물 종주국 인도가 수입국으로 변한 비극을 발판으로,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기틀을 다지게 되었습니다. 인도 독립 운동사를 보면 마하트마 간디가 물레(차크라)를 돌리는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영국에서 수입한 옷을 사 입지 말고 물레를 돌려 옷을 짜서 입어야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스스로 물레를 돌렸다고 합니다.
[자이푸르 아노키 박물관]
라자스탄 주를 대표하는 자이푸르에 가면 인도 면직물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아노키 의류 박물관이 있습니다. 저는 지난 23년 4월에 방문을 하였는데, 자이푸르 암베리 포트 입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3층 건물로 큰 규모는 아니지만 라자스탄 지역의 다양한 면직물과 의류를 볼 수 있고, 박물관 2층에 가면 핸드 프린팅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우선 핸드 프린팅을 하는 목판을 만드는 아저씨가 있습니다. 나무와 끌, 망치 등 도구를 이용하여 고유한 문양의 목판을 제작합니다. 목판이 완성되면 천연염료를 묻혀서 흰 천에 도장을 찍는 작업을 직접 체험할 수 있습니다. 가로 세로로 도장을 찍고, 중간 중간에 색을 바꾸면서 계속하여 반복하고, 말려서 다림질을 하면 인도 직물에 나만의 색깔과 디자인으로 된 손수건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인도 면직물의 다양한 색감과 목판의 정교함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인도 섬유산업의 미래]
현재 인도의 섬유와 의류산업은 4,500만 명의 직접 고용 인원과 1억 명 이상의 관련 산업 종사자로 구성되어 농업 다음으로 두번째 중요한 산업으로 인도 전체 산업 생산의 14%를 차지합니다. 1987년에 섬유부(Ministers of Textiles)라는 별도의 장관급 부서를 편성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2022년 기준으로 약 1,650억 달러가 국내에서 생산, 거래되고 있으며, 400억 달러를 해외로 수출하고 있습니다. 2030년에는 국내 시장규모가 약 3,500억 달러에 이루고, 수출도 1,000억불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면직 사업의 종주국의 지위를 누리다가, 200여년 영국의 식민지로 착취를 당하고 시장을 내주었습니다. 1947년 독립한 이래 인도 특유의 거대한 국내시장과 디자인, 기술로 섬유산업을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인도와 영국의 면직물의 역사를 보면서 역사는 성공에서 자만하는 순간부터 쇠락이 시작되고, 실패의 절박함에서 새로운 기회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더위가 오는 길목에서 시원하고 화려한 인도 옷을 한 벌씩 구입하는 것은 어떨런지요?
2024.2월 인도에서 소전(素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