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병원 방문기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마라. (念身不求無病 염신불구무병)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身無病則貪欲易生 신무병즉탐욕역생)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병고로 양약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중국 명나라 승려 묘협(妙叶)이 지은 ‘보왕삼매론’의 첫 구절입니다.
숨 쉬는 공기의 소중함을 잊고 살듯이, 아프고 나서야 비로소 건강의 가치를 절실히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몇몇 동료와 지인들이 인도에서 치료받으면서 들었던 병원의 열악함과 비위생적인 경험담을 자주 들었습니다. 그분들의 생생한 설명과 표정을 보면서 인도병원은 절대 가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인도살이 현실은 녹록치 않습니다.
[치과 방문기]
처음 방문한 병원은 치과였습니다. 한국에서도 치아 관리에 실패하여 아래층 좌우 어금니 4개와 위층 우측 어금니 2개에 대해 이미 임플란트 시술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2024년 5월부터 아래층 좌측 어금니에 통증이 시작되었고, 임플란트가 치아 관리의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일반 치아처럼 잇몸 관리와 정기 검진이 필수였지만, 신경이 없어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 치아가 흔들리고 뿌리가 상하여 결국 다시 시술해야 했습니다. 지인의 소개로 구르가온에 있는 P치과를 방문하였습니다. 동료로부터 큰 기대는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첫 인상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갔습니다.
입구에는 작은 접수대가 있었고, 그 옆으로 7~8명이 앉을 수 있는 대기실이 있었습니다. 내부에는 4개의 진료실과 상담실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이는 인도에서는 좋은 수준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치과는 한두 개의 진료실만 운영하며, 마취 의사를 불러 시술하는 영세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미리 전화 예약을 하고 30분 정도 대기한 후 진료실로 들어갔습니다. 의사는 치아를 살펴보고 두드려 본 뒤 곧바로 3D 엑스레이를 촬영하였습니다. 한국과 비슷한 촬영 방식이었지만, 건장한 남성이 다가와 무거운 방사능 보호복을 건네주어 뜻밖의 세심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엑스레이 결과, 임플란트가 손상된 것으로 나타났고, 의사는 갑자기 손으로 임플란트를 빼버렸습니다. 순간 당황스러웠고, 치아가 빠진 허전함이 온몸으로 전해졌습니다. 기존에 3개를 발치후 양쪾에서 연결하는 브릿지 방식으로 시술받았던 아래턱 좌측 바깥쪽 어금니의 임플란트가 손상되었고, 손상된 이를 발치하고, 결국 중간과 바깥쪽 2개를 다시 심기로 했습니다. 진료는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방문 일정을 잡고, 임플란트를 심고, 잇몸 치료를 받는 과정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4개월 동안 총 7번을 방문하였으며, 마지막으로 임플란트 위에 치아 본을 맞춘 후 치료가 마무리되었습니다. 가격은 한국보다 약 70% 저렴했으며,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오히려 더 정교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휴대용 3D 엑스레이를 활용하여 별도 촬영 없이 치아 본을 뜨고 맞추는 과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만, 청결과 위생 부분에서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치료 도중 여러 번 헹궈낼 수 있었지만, 인도에서는 석션으로 오염물을 제거하는 방식이었고, 치료 후 제공되는 것은 작은 생수 한 병뿐이었습니다. 비록 일부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한국 진료 시 드는 비용과 일정 등을 고려하면 나름 만족스러운 진료 경험이었습니다.
[호흡기 내과 방문기]
치과에 이어 방문한 병원은 호흡기 내과였습니다. 2024년 11월, 한국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후 10일 만에 결과를 확인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흉부 하부 좌측에 3.5cm 크기의 늑막종양이 발견되었고, 대학병원에서 정밀 진단을 받아야 한다는 소견이 나왔습니다.인터넷 검색과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우선 인도에서 CT 촬영과 의사의 진료를 받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인도는 우리나라처럼 건강보험제도가 없으며, 공립병원과 민간병원으로 구분되어 개인이 병원비를 부담하는 구조입니다. 의료진과 병원 시설을 고려하여 뉴델리에서 유명한 M병원을 선택하고 예약 후 진료를 보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엄청난 인파에 놀랐습니다. 입구에서부터 병원 로비, 커피숍까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메인 빌딩 4층으로 가기 위해서는 공항 출국장처럼 대기선을 따라 기다려야 했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릴 때도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대기선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는 사람들로 인해 인도의 혼잡함을 다시 한번 체감하였습니다.
간신히 4층에 도착해 접수를 하려 했지만, 외국인은 먼저 1층에서 환자 번호를 등록해야 한다고 하여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습니다. 결국 의사를 만나기까지 한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습니다. 의사를 만나 건강검진 결과를 설명하니, CT 영상보다 종양 상태를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양전자 방출 단층 촬영(PET-Scan)을 추천하였습니다. 촬영을 위해 신장 기능 검사를 해야 했고, 채혈을 진행해야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진료나 검사를 먼저 진행한 후 결제하는 방식이지만, 인도는 철저히 건당 계산을 해야 했습니다. 혈액검사를 위해 대기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새치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며 점점 짜증이 났습니다. 가만히 보니 접수 담당자에게 먼저 서류를 밀어넣고 팔로 막아 새치기를 방지하는 전략도 있었습니다. 수납을 하고 다시 대기, 혈액검사 신청서를 제출하고 또다시 대기하는 반복적인 과정이 이어졌습니다. 한국처럼 번호표를 교부하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을 텐데, 병원 내 혈액검사실을 제외한 대부분의 진료실에서는 번호표 없이 대기만 해야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PET-Scan 촬영을 마쳤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다행히 악성 종양은 아니라는 소견을 받았습니다. 이후 한국에 있는 협력 병원으로 진단 결과를 보내 영상 진료를 받았고, 한국 의사 역시 악성 종양은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다만, 3개월 후 다시 영상 촬영을 통해 진행 상태를 확인한 후 조직검사 및 제거 수술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초기 검진부터 촬영, 한국 병원의 진료까지 총 45일이 소요되었으며, 병원을 약 5번 방문하였습니다. 인도의 의료 시스템이 혼잡하고 비위생적인 부분이 많았지만, 다행히 큰 이상 없이 진료를 마칠 수 있어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사고로 인하여 수술을 받고 장기간 입원을 하여 직접 치료를 받은 분들의 경험에 비하여 제가 겪은 병원체험기는 너무 사소한 것이라 조금 부끄럽습니다. 경험을 들어보면 병원의 위생과 청결에 가장 불만이 많고 불안했다고 합니다. 환자나 보호자 등 사람들이 워낙 많이 이동을 하고 앉아있다 보니 2차 감염에 대한 우려도 많다고 합니다. 실제 복막염으로 인도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지인의 경우에 수술 전에 화장실도 맨발로 다녀오고 중환자실에서도 슬리퍼 없이 다니는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대가족 제도이다 보니, 큰 어르신이 입원한 경우에는 많은 친지들이 병문안을 와서 같은 병실을 쓰는 경우에 불편한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수술시 절개 부위와 봉합도 커서 흉터가 많이 남는 것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보았습니다.
의료허브 국가로 발돋움하는 인도(출처 : www.tejastravels.com)
[인도 의료산업의 오늘과 내일]
인도의 의료 시설과 환경은 정말 열악합니다. 의사 숫자를 보면 1,000명당 0.8명 정도로 적고(한국은 1천명당 2.6명, OECD평균 3.7명, 2021년 기준), 의료시설도 정말 열악한 수준입니다. 제가 방문한 병원은 그야말로 인도에서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병원과 치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시가 아닌 농촌지역이나 서민들이 방문하는 병원은 그야말로 처참한 수준인 것 같습니다. 약을 받는 처방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는 정식 처방전에 의사의 서명을 하여 전산으로 관리를 하고 있지만, 인도는 별도 처방전이 아닌 의사의 소견서란에 쓰고 이를 약국에 가서 받아오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일반 사람들도 약 이름이나 성분을 적어서 가면 사는데 별다른 제한이 없습니다. 이러한 한국 사람들의 마음과는 다르게 인도의 의료사업도 꾸준히 발전하고 있습니다. 23년에는 약 610만명의 의료관광객이 인도를 찾았고, 세계 10위의 의료관광 허브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주로 체중 감량, 모발 이식, 피부 및 미용 시술 등을 위해 많은 외국인 환자들이 인도를 찾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인도는 세계 최대의 제네릭 의약품(Generic Drugs) 생산국으로, 글로벌 제약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 수행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백신 개발 및 생산을 선도하는 국가로 부상, 바이오테크(Biotech) 산업에 대한 투자 증가로 향후 고급 바이오의약품 생산과 혁신 신약 개발을 통하여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합니다.
[음주 총량제와 금주]
지난해 늑막종양이 있다는 소견을 받고 상당히 많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흉막암이나 무시무시한 악성 중피종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있었습니다. 나름 아침 절운동과 수영, 걷기 등으로 관리를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 만족했습니다. 인도의 열악한 환경도 종양 발생에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내 몸에 대한 관점과 방향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첫 단계로 술을 끊게 되었습니다. 살아오면서 마실 충분한 양을 이미 마셨고, 아직 내 몸에서 살고 있는 종양과의 싸움을 위해서 금주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병고로써 양약으로 삼으라”는 말처럼,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데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예정입니다. 모든 분들의 건강한 인도살이를 기원합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2025년 1월, 인도에서 소전(素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