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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인데 왜 패딩을 입냐고요?

겨울 비건 패션

by 현우 Feb 02. 2025

완벽한 비건은 없다. 그래서 최대한 동물성 재료를 사용하지 않되, 어쩔 수 없다면 사용하자는 게 7년 차 비건 지향인의 지혜다. 비건 지향인은 식생활을 전환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뿐만이 아니라 손에 닿고 발을 감싸고 몸을 덮는 모든 것들에서 동물성 재료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비건은 단순히 채식주의자만을 뜻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물성 음식뿐만 아니라 동물성 원료로 만들어진 상품 소비를 제한한다.


비건을 지향하기로 결정한 이후 식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되자 옷과 신발 등까지 신경 쓸 여유가 생겼다.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고자 하는 생활이 식탁뿐만 아니라 옷장까지 이어진 것이다. 겨울이 되면 인간은 동물의 털과 가죽을 몸에 칭칭 감는다.


비건은 모두 '착한 패딩'을 입을까


인류는 오래전부터 동물을 사냥해서 먹고 남은 가죽과 털로 옷을 만들었다. 오늘도 동물 희생사(史)는 지속되고 있다. 겨울 옷을 보자. 니트, 양모바지, 패딩 재킷, 코트까지 온통 동물의 털로 만들어진 옷이다. 얼마나 많은 동물이 인간을 위해 희생되고 있는가. 보통 오리털이나 거위털 패딩 한벌당 10~15마리의 털이 들어간다. 산 채로 털이 뜯기는데, 이는 분명한 동물학대이자 착취다.


마침 등장한 게 '착한 패딩'. 착한 패딩이라는 이름으로 마케팅하는 다운 제품은 재사용한 거위털이나 오리털을 사용하거나 동물성 재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RDS 인증은 동물복지인증이라고 할 수 있다. RDS 인증 다운 제품은 동물복지기준을 갖춘 농장에서 거위나 오리의 털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방법이 어떻든 인간의 옷을 위해 사육되고 털이 뽑힌다는 것은 일반 패딩과 다르지 않다.


최근 비건 문화가 확산되면서 비건 보온재도 개발되고 있다. 웰론, 신슐레이트, 프리마로프트가 대표적이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폴리에스테르, 솜도 비건 보온재다.


가지고 있던 가죽이나 털 제품을 처분하는 비건 지향인도 있다. 동물의 털이나 가죽을 입는다는 게 불편한 마음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동물의 고통에 민감하다면 패딩을 입으며 거위나 오리의 고통이 상상되지 않겠는가. 울부짖는 환청이 들린다면 절대 입을 수 없다. 또한 2차 구매를 우려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타인이 논비건 제품을 입은 내 모습을 보고 비슷한 제품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난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비건 지향인 입장에서는 이런 염려가 모두 이해된다.


비건 지향인 옷장에는 어떤 겨울옷이 있을까. 몇 년 전 자주 입지 않는 패딩 몇 벌을 처분했다. 한 단체가 겨울옷을 기부받고 있었고 필요한 겨울옷을 남겨두고 기부했다. 여전히 그때 남겨둔 거위털 패딩 코트, 거위털 경량패딩, 양모 스웨터 등을 입는다. 새로운 비건 패딩이나 동물복지인증 구스다운을 구매하는 것보다 기존에 갖고 있던 옷을 오래 입는 게 낫다는 생각 때문이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가죽은 세련된 상품이 아니라 동물의 피부다


패딩만큼이나 우리 생활에 익숙한 동물성 재료로 만들어진 것이 있다. 바로 가죽이다. 상품으로 만들어진 가죽가방, 가죽재킷, 가죽지갑은 세련되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로 가죽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게 된다면 쉽사리 가죽을 구매하지는 못할 것이다


동물권단체에서 비질 활동을 할 때 도살장에서 벗겨진 소의 피부가 겹겹이 쌓여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말 그대로 가죽은 동물의 피부를 그대로 벗겨내어 만들었다. 정말 끔찍하고 아찔했던 기억이다. 업튼 싱클레어의 소설 <정글>에서 '돼지는 비명 빼고는 전부 쓸데가 있다'라고 말한 것처럼, 인간은 소의 살을 먹고 소의 피부를 입는다.


그럼에도 이미 사둔 가죽 제품이 있다면 수명이 다할 때까지 쓰자는 게 필자의 신념이다. 다행히 약 10년 전에 사둔 논비건 로퍼는 아직 신을만하다. 로퍼가 다 닳더라도 걱정은 없다. 새로운 비건 구두 제품을 찾는 게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흔히 알고 있는 인조가죽은 비건이다. 물론 가격은 저렴한 편이나 내구성이나 착용감이 떨어진다는 게 단점이다.


요즘은 다양한 소재로 비건 가죽 상품이 개발되고 있다. 프랑스에서 유학생활했던 친구가 사과껍질로 만든 본인의 가방을 보여준 적이 있다. 예쁘기도 하고 튼튼해 보이기도 했다. 이 외에도 선인장, 버섯, 파인애플, 코르크, 마이크로파이버 등을 활용한 비건 가죽 상품이 간간히 출시되고 있다. 동물과 공존하는 방식으로 기술이 개발되며 진보하고 있다는 희망이 보인다.


그러나 아직 국내에서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전문 비건가죽 브랜드는 발견하지 못했다. 특히 남성을 위한 제품은 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수요층이 워낙 얇아서 경제성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비건 지향인이 많아져서 시장이 좀 더 성장하길 두 손 모아 기도할 뿐이다. 


이미 있는 물건을 오래 쓰는 것도 비건 아닐까


'완벽한 비건이 되려면 죽어라!' 간혹 비건이나 환경과 관련된 인터넷 뉴스 기사를 읽다 보면, 차라리 죽는 게 환경과 동물에게 도움이 되니까 살지 말라는 댓글을 보곤 한다. 인간이 숨을 쉬고 살아가는 한, 지구와 동물에게 이로움보다 해로움을 끼친다는 의미일 테다. 모든 것을 내다보는 현자의 가르침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구와 동물과 더불어 살겠다는 마음을 짓밟는 것 같아 속상하다. 동물과 환경에 해가 된다면 차라리 죽어버리라는 말에는 조금이라도 나은 삶, 공존하는 삶을 향한 여지는 눈곱만큼도 없어 보인다. 완벽할 게 아니라면 마음껏 죽이면서 살자는 것인가.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았다. 동물과 환경을 위해 새로운 제품을 구매하는 것보다는 이미 있는 옷과 신발을 오래 사용하고 재활용하는 건 어떨까. 만약 반드시 새로운 패딩을 구입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비건 패딩이나 RDS 인증 패딩을 구매하자. 그런데 구매 전 한 번만 더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이 옷이 꼭 필요한가. 물론 인간은 꼭 필요한 옷만 사지 않는다. 예쁘고 편한 옷을 소유하고 싶은 그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다. 필자도 가끔 굴복하고 말아 버리니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다. 비건은 나침반과 같이 삶의 방향을 나타내는 가치관이다. 비건을 지향하면서도 조금씩 후퇴하는 사람도 있고 매일 조금씩 전진하는 사람도 있다. 기존 논비건 패딩을 소용이 다할 때까지 오래 입는 것도 한 보 전진하는 일이라 믿는다.


* 비건 옷을 확인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 옷의 섬유표를 보고 확인한다. 동물 가죽, 스웨이드, 양모(wool), 캐시미어, 알파카, Fleece, 솜털, 깃털 등으로 만들어진 제품이 대표적인 논비건 제품이다.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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