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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방장 양조장 Aug 01. 2020

[월간 주방장 2020] 7월호

특명, 여름 탁주를 찾아라! 


"가게에 술은 어떤 기준으로 고르시나요?"

"보통은 저희가 좋아하는 술들이고, 계절에 따라 어울리는 술을 추가하는 편입니다."

"그럼 이번 여름에 어울리는 술은 어떤 술인가요?"


여름술 블라인드 테스트를 앞두고 미리 테이스팅 ⓒ주방장


주방장양조장을 찾은 분들이 종종 궁금해하시는 점. 바로 한국술들을 보면서 수많은 술들을 누가 고르는 건지, 정말 다 마셔본 건지(당연하죠!), 이 술과 어떤 인연이 있어서 선택한 건지 등 '한국술 선정의 배경'을 자주 여쭈어보세요. 어느 공간에서 질문이 많다는 건 공간 운영자로서 당황스럽거나 귀찮기보다는 오히려 반갑고 감사합니다. 그만큼 어디서도 잘 볼 수 없었던 처음 보는 술들이 많다는 것이고, 내심 고심해서 고른 이유와 배경이 담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최근엔 술과 가까운 바(Bar) 자리를 일부러 찾으시고 주방장과 술 이야기를 깊게 나누는 손님들도 종종 생기셨는데 정말로 바라던 바라 즐겁습니다. 가게와 술에 관련된 질문은 언제나 두 팔 벌려 환영해요. 


하지만 7월의 여름은 두 팔 벌려 환영했다가 바로 후회했어요. 생각보다 여름이 덥지 않다고 생각하려는 찰나에 그래도 여름은 여름이라고 알려주는 것처럼 장마와 더위가 찾아왔습니다. 끊임없는 장맛비 세례와 엄청난 습기가 주변을 감싸서 마치 물속에서 생활하는 한 마리 물고기가 된 것 마냥 아가미가 절실해지더라고요. 더우면 덥던지, 습하면 습하던지 하나만 했으면 좋겠는데... 둘 다 시작되니 시원한 술 한 잔 역시 절실해집니다! 여름에 어울리는 술을 찾아야 하는 특명이 생겼어요. 그리하여 혼자 찾기보단 이제는 한국술에 조예가 꽤 높아지신 '주주총회' 멤버들의 도움을 받기로 했어요. 마지막 모임의 안건이 바로 '여름 막걸리 찾기 블라인드 테스트'였습니다. 주방장의 취향도 중요하지만, 모두의 취향을 충족하는 여름술을 발견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주주들이 선정한 2020년 여름에 어울리는 술은 어떤 술이었나면, 마지막 술 소개가 끝난 후에 공개하겠습니다. 






1. 휴동 막걸리

휴동 막걸리는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인생의 쓴맛을 봤을 때 마시면 ‘그래... 인생은 역시 씁쓸한 거야’라고 위로해 줄 수 있는 술"입니다. 라거 맥주처럼 시원하게 벌컥벌컥 마시는 술이 아니라, 오히려 위스키처럼 인생이 고되고 힘들 때 음미하고 싶은 탁주예요. 드라이함과 씁쓸함이 마치 송명섭 막걸리를 연상시켜서 전라도에 송명섭이 있다면 경기도에는 휴동이라고 할 만큼 드라이 탁주계의 투 탑이라고 생각합니다. 경기도 여주쌀을 이용해 휴동 막걸리를 만드는 양조장 명주가에서는 실제로 싼 술을 지양하고, '쉼'의 의미를 담은 고급 탁주를 지향하셨다고 합니다. 도수는 8% 이지만 깔끔함과 끝에 느껴지는 쌉쌀함에 알코올감이 더 느껴지는 편입니다. 처음 마실 때는 몰랐는데 왜 이 술이 많은 애주가들에게 사랑받는지 알겠더라고요. 평양냉면처럼 막상 처음 맛보면 '응?' 싶지만, 다음날에 갑자기 문득 생각 난달 까요. 




2. 다랭이팜 생막걸리

이름은 귀여운 다랭이팜이지만, 맛은 귀엽기보다는 오히려 담백하고 드라이한 매력을 지닌 탁주입니다. 경남 남해의 랜드마크인 다랭이팜에서 생산되는 다랭이팜 생막걸리는 무농약 눈쌀과 유기농 현미까지 좋은 재료만이 쓰였고, 앉은뱅이 밀누룩으로 빚어 특유의 누룩향도 감도는 편입니다. 원래 드라이한 술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마셔본 결과 씁쓸해도 너무 써서 약간 은행의 쓴맛까지 느껴졌어요. 그래도 끝에 쌀의 단맛이 돌아서 시작과 끝에 다른 재미를 주는 술임은 분명해 고진감래 막걸리라는 평가가 이어졌습니다. 도수는 6도로 깔끔하고 담백해서 어느 음식과도 페어링 하기 괜찮지만, 단 맛을 기대하던 사람들에게는 약간의 진입장벽이 있는 탁주입니다. 자주 언급되던 산미는 이번 술에서는 크게 느껴지지 않아 다음엔 꼭 양조장에 방문해서 마셔봐야 겠어요. 




3. 기다림25

부산 동래에 위치한 '기다림 양조장'의 기다림25는 효모가 좋아하는 온도인 25도에서 100일간 발효시킨 탁주입니다. 처음 보면 도수가 25도인지 알고 놀라는 분들이 많은데, 발효 온도라는 점! 첫 한 모금을 마시고 나면 굉장히 부드러운 술임을 알 수 있어요. 약간의 텁텁한 흙 맛이 느껴지다가 끝 맛은 고소하게 끝납니다. 블라인드 테이스팅 술 중에서 가장 쓴맛이 적어서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초반에는 술에서 기름진 견과류 맛과 향(마치 땅콩기름을 짠 것 같은)이 강하게 다가왔는데, 잔에 따르고 시간이 지난 후에 마시니 차분해지고 느끼함도 사라져서 '기다림의 가치'가 있는 술이 맞는구나 싶었습니다. 디켄팅까지는 아니지만 잔에 따르고 기다리면서 천천히 마시면 더 좋을 술임은 분명하네요. 기다림25는 흑미로 만든 보라색 술도 출시되는데 백미와는 다른 어떤 재미를 선사해줄지 꼭 마셔봐야겠습니다. 





4. 아리랑 생막걸리 

구수한 누런 색깔이 눈길을 사로잡는 아리랑 생막걸리는 시골에서 할머니가 만들어준 식혜 같은 빛깔을 띄고 있어서 정겨운 느낌이 먼저 듭니다. 가장 우리나라의 전통 막걸리 같은 술 같은 느낌의 아리랑 생막걸리는 강원도 원주 삼봉표 아리랑 생막걸리 양조장에서 출시되는 6.5도의 탁주입니다. 원주산 토토미와 앉은뱅이 누룩을 사용해 강렬한 누룩 풍미와 산미가 특징인데 연륜 있는 막걸리라는 평가가 공통적이었어요. 황금빛 색깔처럼 실제 맛이 진하거나 무겁지는 않았는데 혀끝에서 느껴지는 콤콤한 묵직함이 있었고, 예전에 마셨던 아리랑은 더 산미가 강했는데 확실히 그때보다 이번 아리랑 생막걸리는 편안하게 마실 수 있었습니다. 듣기로는 이 탁주는 생산되고 일주일 사이가 제일 맛있다고 하는데 꼭 신선한 막걸리를 마시고 다시 비교 평가해봐야겠습니다.






5. 구름을 벗삼아

오미자 막걸리로 유명한 문경주조에서 출시되는 구름을 벗삼아는 이름처럼 가볍고 기분 좋은 약간의 탄산 감이 특징인 탁주입니다. 이 술은 마치 하얀 구름 맛처럼 밀키스의 알코올 버전 같기도 하고, 갈아 만든 배 음료처럼 달달함과 청량감을 함께 갖추고 있습니다. 아스파탐이나 감미료가 첨가되어 있어 최근에 탁주 트렌드인 완벽한 무감미료 막걸리는 아니지만, 누구나 달달하게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6도의 술이라 대중성에 가장 부합하지 않을까 싶어요. 오렌지나 레몬의 시트러스함이 약한 탄산과 함께 느껴지지는 편이고, 호가든이나 블랑 맥주처럼 가볍고 과일 풍미가 나는 맥주와 비슷하기도 합니다. 대신 위에서 소개한 기다림25와는 다르게 잔에 따르고 오래 두면 씁쓸함이 끝에 올라오는 편이라 시원하게 따서 바로 마시는 걸 추천드려요. 




6. 시향가

'향기를 베푸는 집'이라는 뜻의 술, 시향가는 처음 보면 이게 술인지 아니면 요플레나 무항생제 우유인지 착각할 만큼 귀엽고 독특한 탁주입니다. 이 술을 더 특별하게 만드는 사실은 바로 '토란' 막걸리라는 점이 아닐까 싶은데요. 끈적이는 토란을 어떻게 술에 부드럽게 녹여냈을지 신기함을 유발하는 이 술은 8% 도의 탁주입니다. 토란국이나 토란대 반찬에만 쓰이는 줄 알았던 작물 토란은 곡성의 특산물이라고 하는데, 지역 특산물을 이용해 술을 빚은 시도와 노력에 맛보기 전부터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어요. 하지만 높았던 기대와는 달리 약간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당도가 꽤 높은 편이어서 달달한 밀가루 반죽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탄산감이 전혀 없는 편이어서 한 병을 다 비우기보다는 나눠서 마시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무감미료에 토란이 약 20%나 함유되어 있어서 토란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탁주였습니다. 








주주총회 시즌1 최종회 : 여름술 찾기 관능평가


여름에 어울리는 탁주를 찾기 위한 주주총회 블라인드 테이스팅은 꽤나 진지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외관과 맛, 향, 감촉까지 평가하는 관능평가에서 술의 모든 방면을 느껴보고 주관적인 평가를 내렸어요. 그 결과 가장 높은 총점을 기록한 술은 바로 "구름을 벗삼아"였습니다! 호불호 없이 누구나 편하고 가볍게 마실 수 있는 술이라는 평가가 대다수였고, 여름이라는 계절에 어울리는 청량하고 시원한 매력을 지녔기에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하지 않았나 싶어요. 혼자 마셔보고 내리는 평가와는 달리, 여러 사람들과 관능평가를 공유하니 놓치거나 부족했던 부분이 채워지는 것 같았고 한국술을 풍부하게 즐긴 것 같았어요. 이처럼 주방장양조장의 새로운 여름술로는 '구름을 벗삼아'가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며(비스트로*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모두 습하고 덥고 폭우까지 걱정해야 하는 이 여름 건강하고 시원하게 나시길 바랍니다. 다음 달 월간 주방장으로 돌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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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장양조장 비스트로는 한국술을 안주와 함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한국술집입니다. 

매주 수요일-토요일 저녁 17:30-23:00까지 열려있으며 계절별로 어울리는 술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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