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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희 Mar 03. 2024

겹치는 걸음

얼마 전 부고를 전해 들었다. 친구가 아는 분의 부인상이었다. 아직 30대인 부인의 부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걸 아이가 먼저 발견했다고 했다. 그 소식을 전해 듣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남편을 보낸 후부터 나는 부고가 힘들다. 누구의 죽음이든 쉽게 넘겨지지 않았다. 나와 비슷한 나잇대나 그보다 어린 분들의 부고를 들으면 더욱 그랬다. 가족들이 넘어야 할 고비고비를 생각하면 내 일처럼 막막해졌다.

아이는 어떡하나. 남편을 보내고 6년, 지호가 걸어온 길을 가늠하다가 아이가 앞으로 맞닥뜨려야 할 서글픔을 생각하니 괴로웠다. 문득문득 그 아이 생각이 났다. 일을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집에 오는 길에, 잠들기 전에 그 아이 생각이 났다. 지금은 뭘 하고 있을까, 누가 돌봐주고 있을까, 할머니랑 있을까, 이모는 있나. 사람들이 아이를 붙들고 너무 울면 어쩌지. 아이가 무서울 텐데.   

어렸을 때 엄마 옆에 나란히 누우면 좋았다. 엄마 옆에 누우면 이상하게 따뜻하고 안심이 되었다. 연년생 동생이 있어서 엄마와 자주 함께 눕거나 잘 기회는 없었다. 단 몇 번, 그것도 초등학생 때의 기억인 것 같은데, 다만 옆에 누워서 엄마랑 짧게 이야기를 나누거나 엄마가 팔 베개를 해 준 것뿐이었는데도 너무 포근했다. 그 기분은 잊히지 않고 지금까지도 따뜻하고 환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나는 아이를 떠올리며 누군가와 누워 있는 모습을 몇 번이고 상상했다. 다섯 살이라고 했으니까 잠들기 전에 매일 엄마가 재워주었을 텐데, 함께 누웠을 텐데 ‘왜 엄마가 없을까, 이제 엄마는 없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는 마음이 얼마나 무서울까. 속이 상했다.  

한순간에 가족을 잃는 일이 얼마나 큰 충격과 공포를 주는지 나는 경험해 보았다. 그 놀란 마음을 진정하는 데만도 몇 년이 걸린 것 같다. 부고를 듣고 지난 6년을 돌아보는데 잘 되지는 않았다. 안간힘을 써서 지나왔던 그 시간들은 복기 자체가 힘들었고 어느 시기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앞으로 누군가는 내가 걸어온 길을 가게 되겠구나 생각하니 말할 수 없이 안타까웠다. 겹치는 걸음  그 길이 너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마음을 모아 빌었다. 너무 길지 않고 너무 어둡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내게 그랬듯이 그들의 곁에 고마운 사람들이 꼭 있어서 괴로움과 괴로움뿐만은 아니기를 바랐다.

부고를 듣고 이틀째 되는 날 회사를 나와 집으로 가는 길에 이런 기도를 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언젠가 누군가는 나와 지호를 위해 이렇게 마음을 다해 빌어주었겠구나, 내가 모르는 시간, 모르는 장소에서 나와 지호를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 주었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눈물이 났다. 멈칫했다.  잠깐 멈추어 서 있었다.

삼우제를 지내면서 나는 기묘한 경험을 했다. 자려고 누우면 사람들이 나와 지호에게 보내는 염려와 사랑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저 멀리서부터 수많은 별들이 몰려와 쏟아지는 기분이었다. 그 사랑이 나와 지호를 바닥까지 떨어지지 않게 받쳐주는 것 같았다.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묘하게 안심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는 그 마음이 나의 착각이었구나 싶었다. 내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환상 같은 것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낯 모르는 두 사람의 평안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던 순간, 그때 내게 쏟아진 그 염려가, 사랑이 진짜였다는 걸 알았다. 주위의 사람들이, 선희와 지호가 앞으로 잘 지내기를 간절히 바라주어서 그 마음들이 모여서 내게 닿았다는 걸 알았다.

나는 더 간절히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마음이 분명 전해지는 거라면 조금이라도 보태고 싶었다. 그리고 이 밤,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게 나뿐만은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 곳곳에서 마음이 모여들어 그에게 전해지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도 아이와 자신이 한없이 가라앉고 있는 것만은 아니라고 느끼기를 바랐다, ‘이상하다 이 기분은 뭐지?’ 생각하면서 묘하게 안도하기를 바랐다.

내일이면 부고를 들은 지 일주일째. 그 사이 삼우제도 마쳤을 테고 아이는 엄마를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걸 전해 들었을 테지. 이렇게 쓰면서도 심장이 조인다. 그러나 모두에게는 모두의 인생이 있다. 인생은 무자비해서 누구에게나 감당해야 할 몫이 있다. 다섯 살 아이라도 예외가 없다. 그러나 그 몫을 감당할 수 있게, 용기를 잃지 않게 사랑과 사랑의 마음으로 보듬어 주는 건 누군가의 옆에 있는 우리의 몫이다. 우리는 외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사는 일이 무서울 때가 많은데 우리가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어서 서로에게 마음을 보낼 수 있고, 그 마음이 용기가 된다면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자기 몫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데 용기를 잃지 않을 수 있도록 나는 마음을 다하고 싶다. 언젠가 나를 일으킨 그 마음들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모르는 시간 속에서도 당신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고 싶다. 무엇보다 지금의 괴로움이 아이에게 상처로만 남지 않기를, 단단하고 용기 있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게 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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