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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희 Mar 10. 2024

지금이 너의 전부일 리 없어

이것이 이 연재의 마지막 글이다. ‘지지 않는 마음’이라는 연재를 하는 동안 나는 행복했다. 자신 있게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행복이 뭔지 나는 분명히 아니까.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고 나는 너그러워졌다. 누구에게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너그러워졌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만족감이 일상 속의 나를 다정한 눈으로 바라보게 해 주었다. 나는 나를 이해했고 봐주기로 했다. 그것 빼곤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데 회사 복도를 오가면서도 자주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너로 충분하다는 말’이라는 첫 번째 글을 쓸 즈음의 나는 너무 힘들어 어쩔 줄 몰라 걸핏하면 눈물이 났다. 종일 목에 뭐가 걸린 것 같았고 누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울 것 같아 몸에 힘을 잔뜩 주고 다녔다. 그 글을 쓰고 며칠 후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는데 어떻게 지냈니 서로 안부를 묻다가 엄청 울었다. 내 이야기를 하다가도 울고 친구 이야기를 듣다가도 울었다. 그날 함박눈이 내렸다. 눈물을 펑펑 쏟으며 더 펑펑 쏟아지는 눈을 보았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울었다. 친구가 ‘그만 좀 울어.’하고 달래도 한번 시작된 눈물은 좀처럼 멈출 줄 몰랐다. 아직도 문득문득 그날 생각이 난다.

울면서도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

고맙게도 글을 쓰면서 천천히 회복되었다. 글을 쓰는 자체가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어딘가에 내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내가 어딘가에서 작동하고 있어.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이상하게 빛났다.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회사가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니 일에 더 몰두할 수 있었다. 집이 전부가 아니라서 가족들에게 더 충실할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나, 그 모습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무엇도 나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일하는 내가 나의 전부일 리 없다. 부모로서의 내가 나의 전부일 리 없어. 인간은 너무 겹겹이 이루어져 있어서 안다 싶다가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이처럼  낯설어진다. 그러니 나도 그렇게 간단할 리 없어. 나는 나에게 실망할 때마다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전부가 아니라 일부야. 지금이 나의 전부일 리 없어. 그렇게 믿을 수 있었던 건 ‘쓰는 나’가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월화수목금 회사에 갔고 월화수목금토일 집으로 돌아왔지만 나는 자주 다른 곳에 머물렀다. 그곳엔 나 외의 다른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한편 모두가 있었다. 지금의 나와 수년 전의 내가 함께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마음을 들여다보았고 말을 골랐다. 골똘히 생각하고 손가락을 움직여 글로 옮겼다. 틈만 나면 문장을 만들었다. 글이 한 편, 두 편 완성되었다.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더없이 좋았다.

이제는 좀 괜찮아졌어 라고 말할 수 있었던 환한 낮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괴로워하는 나를 내버려 두거나 탓하지 않고 마음을 일으킬 수 있는 기회를 준 나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내게 좋아하는 일을 하게 해 주어서, 그 모습을 잃지 않게 해 주어서 고마웠다. 앞으로도 잘 갈 수 있을 거야. 나는 나를 믿기로 했다.

글을 읽어 준 친구들도 고마웠다. 얼굴도 모르는 사이이지만 덕분에 다시 나를 믿을 수 있게 되었다. 민감하게 고통을 감각하고 나면 타인의 고통까지 가늠하게 된다. 그러면 타인의 고통도 남의 것으로만 남지 않고 나의 것이 된다. 우리의 것이 된다. 어쩌면 고통은 우리를 우리로 이어주는 실 같은 것일지 모르겠다. 누군가 나의 글을 읽으며 공감할 때 나는 우리의 괴로움이 이어져 있다고 느꼈다. 우리의 마음에 평안이 깃들기를. 잊지 마, 지금이 너의 전부일 리 없어.

지지 않는다는 건 이기기만 한다는 뜻은 아니다. 져도 다시 일어나고 고통이 덮쳐도 통과해내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살아남는 것 그런 게 내게는 지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살아남는 것만이 목적이 되지 않게 되도록 가볍게, 유연하게, 즐겁게, 아름답게. 그렇게 마음이 저물지 않게 지내고 싶다. 웃음을 잃은 단단함은 슬프니까.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지지 않을 생각이다. 지금도 나의 전부일 리 없으니까 지지 않는 마음으로, 저물지 않는 마음으로 계속 가 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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