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단 한 가지는

내 이름이 적힌 책을 쓰는 것입니다

연신 띠로롱 울리는 문자 소리에 부스스 눈을 떴다.

많은 비가 올 테니 조심하라는 재난 알림 문자였다.


'비라니... 그 지긋지긋한 비가 또 온다고?'

불과 며칠 전에도 집이 떠내려갈 듯 퍼붓더니

가을인지도 모르고 장대비가 쏟아질 모양이다.


약 기운에 못 이겨 오전 내 자고 또 자다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겨우 눈을 떴다.

시계가 벌써 오후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쩐지 방이 어둡더라니 다 비구름 때문이었다.

비 오기 전 눅눅한 공기는 안 그래도 무거운 몸을

더 무겁게 짓누른다. 먹구름은 아마 10톤쯤 될 거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이불 밖으로 나왔다.

티셔츠 한 장 걸치는데 10분이 넘게 걸렸다.


팔 한쪽 넣고 한숨 한 번, 반대쪽 넣고 멍 한 번.

분명 티쪼가리 한 장인데 이상하리만큼 무겁다.


반쯤 넋을 놓은 채로 터벅터벅 걸어 집을 나선다.

등에는 스케줄러와 노트북이 든 가방을 들쳐멨다.

카페에 도착해 앉자마자 쏴하고 비가 쏟아진다.


노트북을 펼쳐놓고 앉아 한참 창 밖을 바라봤다.

침대에서 눈감고 듣는 빗소리는 서글프고 적막한데

카페에 앉아서 보는 비 오는 풍경은 나쁘지 않았다.



남편이 돈을 보내줬다.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큰돈이

난생처음으로 통장에 꽂혔다.  


'이거 나 가기 전까지 다 써. 너를 위해서.

여행을 가든 백을 사든 하고 싶은 거 다 해'

그 좋아하는 여행도, 그 어떤 산해진미도

생의 욕구가 사라진 나에겐 의미가 없었다.


그 돈이 어떻게 번 돈인지 알고 있던 나는

남편의 땀과 눈물을 받고서 맘이 시큰했다.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결코 그 돈으론 어느 것도 쉬이 할 수 없었다.



혼자서 가만히 누워 생각했다.

만약 내가 올해까지만 살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이 하고 싶을까?


어떤 것이든 산타에게 받을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선물을 받고 싶다고 말할까?

큰 망설임 없이 내 이름이 적힌 책이 떠올랐다.

  

내가 유일하게 하고 싶은 것이자

지금의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

그것은 글을 쓰는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남편에게 그 돈을 보태 책을 내겠다고 했다.

처음으로 무언가 하고 싶다는 나에게 남편은

자신이 편집 기술을 배워서라도 도와줄 테니

원하는 책 쓰기를 맘껏 해보라고 했다.


4년 전부터 이곳에 쓰기 시작한 글들을 모아

매번 입버릇처럼 '책을 쓰고 싶다'말하고 다니며

올해 내내 마음의 짐처럼 지고 있는 그 책 쓰기를

이번 크리스마스 전까지 어떻게든 해내고 싶었다.


원고는 첫 번째 여행에서 멈춰 선 지 반년 째고

내 몸과 마음은 생기를 잃고 매일 말라가지만

내가 유일하게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그 일을

어떻게 해서든 완수해내고 싶어졌다.



사실 잘 해낼 자신은 없다.

아직 콩알만 한 약 한 알을 어쩌지 못해 휘청대고

하루의 반나절을 침대 위에서 죽은 듯 보내기에


글을 쓰고 책을 찍고 펀딩을 하는 모든 과정들을

과연 내가 이 몸과 마음으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간절히 하고 싶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단 한 가지 일이

내 이름이 적힌 책 한 권을 갖는 것이기에

어떻게 해서든지 그 책을 만들고 싶다.


올해 말이 오기 전까지 결과는 알 수 없다.

그저 오늘처럼 꾸역꾸역 침대에서 일어나

억지로 자리에 앉고 어떻게든 원고를 펼쳐

내 글을 적어나갈 뿐이다.


기대해도 될까? 기다려도 될까?

세상 아무도 내 책을 기다리지 않는데도

적어도 나 하나만큼은 기대해줘야하지 않을까?


해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내가 나 자신을

미워하지 않았음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 기일엔 행복하기로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