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2번의 첫날밤
으허~ 이거지.
바로 이 맛이야!
중국 청두의 작은 국수가게 안. 묘한 향신료 냄새가 진하게 베인 고깃국의 온기가 목구멍을 타고 전해졌다. 우리 맞은편에 앉아 젓가락을 들고서 어찌할 줄 모르는 저 남자와 우리는 자그마치 5분 전에 만난 사이다.
우리는 어쩌다 나이도, 국적도, 심지어는 이름조차 모르는 이 낯선 사람에게 국수를 얻어먹게 되었을까?
허겁지겁 배를 채우면서 들은 그의 사연은 이랬다. 미얀마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곳을 경유하게 되었는데 공항에서 만난 그 누구도 영어를 알아듣지 못했단다. 10분이면 도착하고도 남을 이 호텔에 오기까지 3시간에 걸친 대장정을 하고 나니 드러눕기 직전이 되었다고.
고단한 몸을 이끌고 체크인을 하기 위해 프런트를 찾은 그는 처음으로 영어를 구사하는 중국인을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말을 걸고 보니 배고픈데 돈이 없어 절절 매고 있는 불쌍한 외국인이었다. 마침 주머니에 남은 위안화가 생각난 그는 그들에게 저녁식사를 제안했다. 그들은 구세주를 만난 기분으로 그를 따라나섰다.
첫 번째 첫날밤
통성명을 하다 보니 그는 공교롭게도 나와 동갑내기인 네팔 사람이었다. 그의 이름은 Razz.
우리는 신혼여행 중인 부부이며 내일 당신과 같은 비행기를 타고 네팔로 갈 거라고 소개하자 그는 몹시 놀란 표정으로 반가워했다. 신기한 우연에 대해 이야기하던 우리는 네팔에서의 재회를 약속하고 늦은 밤이 되어서야 헤어졌다.
방으로 돌아온 뒤 잠자리에 누워서야 오늘이 신혼여행의 첫날밤임을 깨달았다. 쌀쌀한 공기가 감도는 중국의 한 호텔, 덩그러니 놓인 트윈 배드에 각자 누워 잠드는 신혼 첫날밤이라니. 거기다 배까지 곯았다면 정말 완벽하게 끔찍한 첫날밤으로 기억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그 덕에(하늘이 내려준 그 천사 덕에) 뜨끈한 국물과 통통한 면발로 든든하게 불러진 배를 두드리며 꽤나 만족스럽게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좋은 인연을 만난 것에 대한 감사함과 더불어 내일이면 도착할 진짜 첫 번째 여행지에 대한 기대감으로.
첫 목적지는 '네팔'입니다
아직 사방이 컴컴한 이른 새벽, 눈을 반쯤 감은 채로 앞섶을 여미며 비행기에 올랐다. 잠시 눈을 붙였다 뜨니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창밖을 내다보니 어마어마한 설산이 우리를 맞았다.
'드디어 네팔에 왔구나'
길게 늘어선 줄을 따라 흡사 시골버스터미널의 느낌을 풍기는 공항에 들어서니 방탄소년단 월드투어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인파가 나를 맞았다.
전 세계 각국에서 날아온 온갖 국적의 외국인이 한데 뒤섞여 아수라장이 된 입국장. 그 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있던 우리는 한참 만에야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비자를 받고, 입국 수속을 밟고, 짐을 찾기까지. 우리는 장장 3시간 가까이 그 아수라장 안을 헤매고 나서야 공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때 한 아가씨가 말을 걸어왔다. 동그란 안경을 끼고 큼지막한 눈망울을 또록이던 그녀는 우리에게 여행자 거리까지 함께 택시를 타지 않겠냐고 물었다. '저런.. 딱 보아하니 여행 초짜인 것 같은데' 이대로 두고 갔다간 저 꼬마 아가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여보, 우리가 도와줍시다.'
눈빛으로 대화를 마친 우리는 딱한 마음에 그녀와 함께 택시를 잡아탔다. 타멜거리에 도착한 우리는 사람 하나 살렸다는 뿌듯함으로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언젠가 연이 되면 또 보자'는 말과 함께 깍듯한 인사를 하고서 멀어져 갔다.
두 번째 첫날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정신 차릴 새도 없이 눈코입으로 밀려들어오는 흙먼지에 급히 마스크를 꼈다. 숙소를 찾아 돌아다니는 내내 쉴 새 없이 울려대는 경적소리를 듣고 있자니 공항에서 겨우 붙잡아 둔 정신이 다시 나가버릴 것만 같았다.
흙먼지 풀풀 날리는 비포장길, 도로 위 이곳저곳 널브러져 있는 소와 사람들, 아직도 복구되지 않은 지진 현장의 잔해들과 보기 아찔하리만큼 덕지덕지 얽혀있는 전깃줄까지. 달리는 차창 밖으로 만난 네팔의 첫인상은 무엇이라 형용하기 힘든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구불구불 골목길을 헤매다 겨우 찾은 숙소로 들어서는 순간, 지난 몇 시간의 일들이 '꿈'처럼 느껴졌다.
'이제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이 동네를 탐색한 다음, 맛난 저녁을 먹고 돌아와, 포근한 이불속에서 잠들어야지..' 한껏 기대에 부풀어 열쇠를 받아 들고 방으로 들어선 순간, 나는 모든 것들이 정말 한낱 '꿈'이었다는 걸 깨닫게 됐다.
바닥 카펫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쿰쿰한 먼지 냄새, 간신히 물체를 식별할 정도의 컴컴한 조명, 꿉꿉하다 못해 축축하게 느껴지는 이불, 그리고 천장 구석에서 인사를 건네는
바. 선. 생. 님.
정말이지 내가 첫 여행의 첫날밤을 그 중국 호텔에서 보낸 게 다행이라 생각하는 날이 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넋이 나간 표정으로 간신히 침대 모서리 끝에 궁둥이를 걸치고 앉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지금 왜 이곳에 있는가?'
놀랍게도 신혼여행 중이었다.
'누가 나를 이곳으로 보냈는가?'
애석하게도 모든 일을 벌인 것은 나였다.
할 수만 있다면 1달 전으로 돌아가 이 숙소를 예약하려는.. 아니 네팔행 비행기 티켓을 클릭하려는 내 두 번째 손가락을 분질러 뜨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욕실에 들어가 간신히 얼굴에 묻은 흙먼지를 씻어내고서 옷을 겹겹이 껴입은 채 이불 위에 몸을 뉘었다.
'오늘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도시에서의 하루가,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갔다..' 강렬했던 오늘 하루에 관한 일기가 막 시작되려던 찰나, 때마침 찾아온 정전이 그나마 희미하게 비추던 한줄기 객실 등을 꺼뜨려버렸다.
그래.. 자자.
어서 자고, 어서 나가자.
그렇게 진짜 첫 번째 여행지에서의 '두 번째 첫날밤'이 저물었다.